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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랑 사는 건 너무 슬퍼
최은광 지음 / 좋은땅 / 2022년 12월
평점 :
고양이 사진보다 고양이 그림이 더 많은 책이다. 저자의 첫째냥이 '빤이'도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삼색이구나" 했다.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평론가, 수필가, 교수까지.... 프로필만보면 화려한 길만 걸어왔을듯하지만 빤이를 만날 당시 그는 다섯 평의 자취방에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삶이 바빠 애초에 고양이가 끼여들 틈이 없는 일상이였지만 묘연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고 태어난 지 두 주쯤 되는 고양이를 만나 초보집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앵이, 뽕이, 자두까지 고양이 식구들도 늘고 아내와 처제까지 사람 식구들도 늘게 되지만 그의 책 속 팔할의 지분은 빤이다. 그만큼 소중했고 또 그만큼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서였을까. 빤이는 여덟 살에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고 그 다음 해 11월에 고양이별로 돌아갔다고 한다. <야옹이랑 사는 건 너무 슬퍼>를 함께 읽은 울 호랑이 나이가 올해 11살인 것과 비교하면 빤이는 너무 빨리 가버린듯하다. 책 읽는 고양이집사 독자도 이렇게 아쉬운데 당사자인 빤이 집사는 얼마나 더 아쉽고 그리울까.
한 쪽 신장이 쪼그라든 상태라는 것을 알고 '신장 질환을 이긴 고양이'카페에 까지 가입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방법을 찾아봤지만 빤이는 신장 질환을 이겨내지 못한 듯 했다. 다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식구들과 생활하며 마음만은 평온하지 않았을까. 빤이로 인해 절에 다니게 된 부부는 빤이의 인등을 봉은사에 걸었다고 한다. 평소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이 대목을 보면서 언젠가 고양이들과 이별하게 되면 절에 등을 걸어야겠다 싶어졌다. 15살, 13살, 11살의 고양이들과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는 녀석들을 보면 이별은 먼나라 이야기 같았는데 또 고양이 집사들이 쓴 책을 읽다보면 성큼 앞으로 다가와 있는 듯 해서 좀 더 신경써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애잔했던 빤이 스토리와 달리 똥꼬발랄한 앵뽕이는 꼭 우리집 다람이 같아서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웃음부터 터져나온다. 안 봐도 선~하게 보이는 그 장면,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휘리릭 눈 앞을 지나갔기 때문에.
고양이를 반려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를 케어하는 것에 낫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결코 가볍게 결정해서는 안된다. 접종비, 치료비 외에도 매달 소비되는 모래 비용, 사료 비용, 간식 비용 등이 있고 스크래쳐와 장난감도 필요하며 나이가 들수록 챙겨야 하는 영양제가 많아지는 건 사람과 똑같다. 예전보다 반려동물용품시장이 더 다양해져 캣타워, 캣워커, 이동장, 급수기 등등 여러 브랜드 제품들이 쏟아져나온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다는 말, 점점 실감하고 있다.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하는 일도 그러하다. 이불에 오줌테러를 하는 앵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저자의 아내는 물 그릇을 집 안에 열할 개까지 둔 적이 있다고 한다. 108종의 음식물 알러지 반응검사를 하면서 맞춤 사료를 찾는가 하면 고양이용 발바닥 보습제를 수시로 발라주기도 하고 기호성 좋은 유산균을 찾기 위해 여러 제품들로 테스트 해 보기도 한다. 고양이 집사들의 공통점인걸까. 나의 일상을 누군가가 들여다 본듯 아주 비슷했다.
책을 통해 만난 고양이 '빤이'는 세상 순하고 착한 고양이였다. 첫 고양이가 빤이 같은 고양이였다니 행운인 셈이다. 비록 함께한 시간이 짧았고 마지막에 아프다 간 기억이 남아 안타깝긴하지만 집사를 제 손으로 고른(?) 녀석인만큼 끝까지 용감했으리라 생각된다. 또 입양하기로 한 날 동물보호소에서 사망한 꿈이에 대한 씁쓸함도 남는다. 꿈이와의 이별로 인해 동물보호소가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 점도 공감된다. 고양이 집사가 아니었다면 이름만 듣고 '보호하는 곳'이라는 상상을 했을지 모른다. 나 역시도.
<야옹이랑 사는 건 너무 슬퍼> 라는 제목은 인간에 비해 생이 짧은 고양이에 대한 슬픔이 묻어나는 문장이다. 하지만 되돌려 생각해보면 이별은 슬프지만 함께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즐거움과 행복, 안정감을 나누었고 이후에도 계속 그리워할만큼의 추억을 잔뜩 남기고 떠나는 녀석들이다. 반려동물은. 그래서 너무 슬프지만 또 반복하게 된다. 저자가 빤이를 잃고도 '꿈이'와 '자두'의 입양을 실행한 것처럼.
살면서 함께 행복해지는 존재를 만나는 행운을 고양이가 가져다 주니까. 그래서 모르고 사는 사람과 알게 된 사람의 행복지수는 그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사이인데 무엇이 그리도 반가운지 모를 노릇이다
가끔은, 약간은 어두운 듯 했던 빤이의 표정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큼 살아 있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세월은 흐르고, 사랑은 지금 한순간 머물고는 곧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축으로 소나 돼지를 기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선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야옹이와 살아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이들이 누리는 삶의 속도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고양이를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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