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레인보우 - 리에's 패션 다이어리
아키바 리에 지음 / 이비락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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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수다를 통해 유명해진 그녀. 아키바 리에.

인형처럼 커다란 눈망울과 똑똑 부러지는 말투 때문에 그녀는 도쿄 깍쟁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푸근한 인상의 캐서린이나 에바와는 달리 그녀는 약간 새침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저마다의 매력이 다르듯 리에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대로 또 멋져보이는 여인이었는데, 어느날 그 친근감이 반감되어버린 것은 그녀의 한 발언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 일본인이었다. 친근한 가운데 그녀가 일본인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호의적이라고 해도 외국인인 그녀에게 내국인인 우리의 감정을 닮아달라고 바라는 것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무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랫만에 그녀를 만났다. TV가 아닌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쿄 여행을 소개했다. 그 소개법은 직업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고, 여행이나 테마 혹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에 따라 분류되기도 했지만 외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직접 소개해주는 도쿄는 또 남달랐다.

 

도쿄 레인보우는 그렇게 남다름에서 출발한 책이었다.

 

꼬마 계집애에서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녀를 지나 어른이 되기까지....라고 말하는 그녀의 소갯말에서 나고자란 지역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고 그 정겨움은 우리까지 색색깔로 물들이고 있었다.

 

무지개의 일곱색으로 나뉘어진 시부야, 하라주쿠,오모테산도, 시모키타자와, 다이칸야마, 롯본기등등과 미츠이 아루렛 파크까지...그녀가 소개하는 길은 패션을 따라걷는 길이었다. 때론 알록달록하게, 때론 심플하게, 때론 우아하게 입고 걸칠 수 있는 것들을 소개받으며 리에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쯤은 더 잘 알게 되었달까.

 

나라를 느끼러 왔다가 한국이 좋아져버렸다는 그녀. 우리가 알고 있던 미수다의 리에 외에 또 다른 리에의 매력에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책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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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들의 귀환 - 지구 종말론의 실상
에리히 폰 데니켄 지음, 김소희 옮김 / 청년정신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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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폰 데니켄은 [신들의 전차]로 이미 유명한 작가였다. "반지의 제왕"팀이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는 더 유명해지겠지만  그의 전작을 읽지 못한 채 나는 [2012 신들의 귀환]을 읽게 되었다. 

2012년이라는 헐리우드 영화도 있었고,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룬 바가 있는 소재지만 2012년은 둥글둥글한 그 이미지와는 달리 왠지 엄숙하게 느껴지는 숫자의 조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기말에나 어울리는 세계 종말설과 맞닿아 있는 해이기 때문이다. 무엇때문에 완전하게 보이지 않는 저 숫자에 마지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여러 책들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소해보려했지만 더 모호해져버린 가운데 데니켄의 시선에서 또 다른 증명들을 바라본다. IT기술이 날로 발전되고, 산업화를 거쳐 이젠 거의 우리가 꿈꿔왔던 영화 속 세상들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서 있지만 여전히 몇천년전의 건축에 대해 우리는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다.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표현은 어쩌면 잘못된 표현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고대인들의 기술과 건축. 그들이 해를 세는 방식조차 현대의 그것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누가 잉카의 장인들이 만들어놓은 블록들을 석기시대의 것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 놀라운 섬세함은 현재의 공구로도 만들어내기 힘들 것이다. 찍어만든 것 같은 그 블록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재어 만들었던 것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또한 조각 속 "담배피는 신들"의 모습하며 티베트 사원 앞의 도르제 모형에 이르기까지...고대인들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절대 믿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현대의 그 어떤 것으로도 증명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 가장 신빙성 있게 들리는 가설 중 하나가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주장인데, 사실 [X파일]을 보면서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내게 책이 던져준 외계문명설이 가장 현명한 답처럼 보이는 까닭은 그 고고학적 증거들의 나열에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과학과 기술과 수학이 날로 퇴보해왔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기에 황당한 이야기는 이처럼 증명의 힘을 가지고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마야력인 쫄킨력과 그 외 모든 증거들을 믿는다면 과연 2012년 12월 22일이 지난 23일엔 무엇이 올까. 또한 마야력의 그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그들의 약속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떠난 그들이 돌아온다는 것도 반갑지 않았지만 돌아와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2012년은 나와 지인들이 살아갈 또 다른 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었던 수수께끼들을 증명하는데 고고학적 증거들이 이용된 것은 아주 현명한 방법처럼 보였다. 수천년을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믿음과 그 훌륭함을 이루어낸 문명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 어떤 문명적 변화가 일어날지, 고대 문명이 정말 어느 뛰어난 문명인들에 의해 이룩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만 가지고 읽어도 충분히 재미난 이 책 속에는 그 외에도 재미난 구석들이 숨겨져 있었다. 단 한번의 읽음으로 다 찾아낼 수는 없었기에 나는 다시 야금야금 읽으며 애벌 독서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구석지식들을 찾아헤매기 시작했다. 

옳다 그르다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것. 탐구하고 모험심으로 그것을 파헤쳐 나간다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신나는 일임을 [신들의 귀환]을 통해 다시금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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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세운 여인, 소서노 2
이기담 지음 / 밝은세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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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세운 소서노의 일대기는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소설의 첫장부터 그녀는 이미 주몽의 아내였으며 아비가 다른 비류의 어미이자 주몽과의 사이에서 온조를 낳고 난 다음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아비가 다른 두 아들의 장성을 바라보던 소서노에겐 주몽의 뒤를 이을 아들로 온조가 아닌 비류로 점찍어두고 있었는데, 주몽의 생각은 또 달랐다. 그는 소서노의 아들이 아닌 자신이 떠나온 땅에 두고 온 예씨의 아들 유리를 후사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그래서 부부간의 비밀은 불신이 되어 역사속 가장 큰 스케일의 이혼으로 이어졌다. 

고구려를 함께 세운 통큰 여인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떠나 또 다시 나라를 세우는데 그 나라의 이름이 백제였다. 그리하여 소서노는 두번이나 나라를 세운 여인이 되었으며 그 나이도 적지 않은 마흔부터 예순까지 정정하게 호령하며 살아남았다.

탁월한 리더쉽과 판단력, 그리고 소소한 것까지도 눈여겨보는 자상함. 여성 리더로서 그녀는 왜 스스로 왕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미실은 감히 꿈꾸어보지 못한 길이었기에 왕후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소서노는 그 아비가 왕제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왕의 길에 오르지 않았다. 그녀, 고구려를 떠나면서 그 옛일이 후회되진 않았을까. 

배신을 뒤로하고 떠난 땅에 대한 미련보다는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미련이 더 컸을 그녀앞에 백제는 또 다른 희망을 땅이었을 것이다. 역사상 이보다 큰 스케일의 왕가의 이혼이 있었을까. 나라를 빼았기고 다시 나라를 세운 여걸의 인생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단 한 권으로 읽혀진 그녀의 이야기는 더 많은 목마름을 가져다 주었다. 대륙을 호령했고 건국을 좌지우지했던 여인의 역사. 나는 또 다시 소서노의 바람이 일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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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세운 여인, 소서노 1
이기담 지음 / 밝은세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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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라는 이름을 제일 먼저 발견했던 곳은 만화책 속이었다. 김혜린의 만화 "불의 검"속에서 소서노는 사랑받는 자 인 동시에 사랑하는 자이기도 했지만 어느쪽과의 사랑도 이룰 수 없는 여인이었다. 신을 받들고 있는 신녀이기에 남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되었고 한 남자에게 받칠 사랑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향해 담아야할 사랑의 그릇을 가진 여인이기도 했다.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소서노라는 인물의 이름을 작가는 주몽의 아내에게서 차용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인터뷰에서 들으면서 역사속 소서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소서노가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미실이나 선덕보다 사실 더 큰 스케일로 조명되어야 할 인물이 바로 소서노가 아니었나 싶다. 갖추어진 왕권을 계승한 이도 아니면서 한 나라도 아닌 두 나라의 창업을 함께 도모한 여인이자 어리거나 처녀도 아닌 과부의 몸으로 시국을 헤쳐나간 불굴의 여인이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 그녀에 대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진다. 

누군가의 옆자리를 지키는 여인이 아닌 소서노 그녀 자체로만 드라마화 되긴 어려운 일일까. 이 멋진 소재의 스토리를 가지고도 아직 드라마화 된 적이 없다니....우리는 고구려는 물론 백제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한 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나 스스로조차 조선과 신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어왔으면서도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역사는 뜬구름처럼 머릿속을 헤매고 다니게 그냥 방치해 두고 있었기 떄문이다. 

대륙을 호령한 여인의 야망.
소설에서 나는 소서노가 꿈꾼 역사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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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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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는다. 그는 1900년대 작가지만 2010년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그 작품들을 읽으며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플룻의 완벽함과 재미의 완벽함 게다가 시시하거나 올드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이야기 세련미까지....

사실 그가 만든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전혀 멋지지 않다. 아니 오히려 상상하면 할수록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더벅머리에 촌스러운 옷차림에 가끔 더듬는 말투하며 어딘지 모르게 시골스런 풍모가 느껴지는 탐정같은 예리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 

샤프한 홈즈나 세련된 루팡, 하다못해 깜찍한 코난에 비해 긴다이치 코스케는 할아버지 내지는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는 조사원 같은 탐정이다. 하지만 이 아저씨가 등장하는 순간 우리의 가슴은 두근거리지 시작한다. "무언가 풀리겠구나~"라는 실마리와 희망을 함께 던져주기 때문이다. 수수한 탐정은 묘하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사건의 반전을 이끌어오고 우리의 앎에 대한 욕구를 120% 충족시킨다. 그래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번역되는 족족 손에 넣고야 만다. 절대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음으로...

[삼수탑]은 이름 그대로 머리 세 개가 모셔진 탑이다. 풀이만으로는 무섭기 그지 없지만 실제 머리가 아니라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 탑은 꽤 큰 건축물인지 사람 여럿이 들어서도 되는 방이 있고 그 아래엔 비밀 우물도 있다. 이 삼수탑에 신분 증명서가 있는 남자와 사랑하나 때문에 타락의 길을 걸어도 후회 없다며 사건 속에서 허우적대는 여자가 있다. 

어린 시절 양친을 잃은 오토네가 바로 그 아가씨다. 아름다운 아가씨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막대한 유산을 건네받게 되는데 조건은 단 하나, 다카토 슌사쿠와 결혼하라는 것. 한번도 본 적 없는 남자인데 그는 오토네의 약혼자라는 이유로 사체로 발견되고 이어 함께 유산을 받기로 한 친척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오토네는 이상한 남자에게 반하고 만다. 

본래의 이름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신분이 여럿인 남자와 살인 게임 속에 던져진 오토네는 범인으로 오인받아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고 결국 삼수탑까지 오게 된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중 애인과 우물에 갇히게 된 오토네를 구해준 것은 바로 어리숙해보이던 탐정 긴다이치. 

그 긴다이치를 통해 애인의 정체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오토네는 해피엔딩의 인생을 살게 된다. 

최악의 연쇄살인은 처음 시작된 삼수탑에서 그 끝을 맺게 되는데, 고생 끝 행복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 작품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속에는 인간이 어쩜 이리 추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탐욕적인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과 대조적으로 선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적인 결말로 이어져도 시시하지 않은 까닭은 탐미성에 있다. 반전과 트릭은 발전해왔다해도 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찾기 힘든 것일까. 그가 자아낸 재미는 다작하면서도 전혀 허술해지지 않았고 같아보이는 작품 또한 단 한 작품도 없다.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 한정적이라는 것이 슬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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