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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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 속에서 살고 있는 13개의 인격...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다. 그 중 가장 먼저 읽었던 시드니 셀던의 2권 분량의 소설이 가장 재미있게 기억되는 건 아마 처음 읽었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우선 선점권을 갖나보다. 기억에서조차도.

[검은집]의 작가 기시 유스케도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했다. 제목이 [13번째 인격]이었는데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나서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이야, 재미있다"였기 때문이다. 

제3회 일본 호러 소설 대장 장편부 가작인 [13번째 인격]은 호러성 공포를 안겨주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오츠이치의 섬찟한 비린 공포를 맛보았기 때문인지 기시 유스케의 치히로는 그저 병을 앓고 있는 소녀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유체이탈과 그 13번째 인격인 이소라의 실체도 M정도의 놀라움 정도라고나 할까. 

마지막에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잔혹성에 대한 잔재도 그랬구나 싶을 정도로 반전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류의 반전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식스센스 이후의 왠만한 반전은 이제 반전으로써의 힘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훌륭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막힘없이 술술 읽혀졌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게 놓아두질 않았다. 그런면에서보면 소설의 재미는 탁월했다. 다만 신선도 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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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원숭이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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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는 독특하다.  흡사 외계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주적인 상상력을 뻗쳐 우리는 사로잡는다. [마왕]이 그랬고 [사신치바]가 그랬다. [종말의 바보]나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쪽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더니 끝나버렸다. 

최근에 [그래스 호퍼]를 보면서 감동받았는데, 후작인 [sos원숭이]를 읽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대체 이 작가 정신상태는 괜찮은 것일까 하고. 일반인들의 정도라든가 한계치 라든가 도덕적 관념이나 사회적 통념을 통해 그어놓은 선 따위는 가볍게 무시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없애 버리는 작가. 

그래서 가전제품을 파는 엔도 지로가 히키코모리인 마사토의 엑소시스트를 떠맡을 수 있고, 20분 동안 300억 엔의 손실을 낸 주식 오발주 사고가 난 현실 속에서도 서유기의 손오공이 나타나 활보할 수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와 손오공 이야기로 이분법화 되어 있는 듯 한 시점 속에서도 우리는 이야기의 전반 줄거리를 다 훑어내릴 수 있다. 이런 혼잡한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잘 조합되는 이야기를 짜낸다는 점에서 이사카 고타로의 필력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인간이란 존재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였던가. 자신도 완벽하지 못하면서 남을 구할 수 있을까, 과연. 이라는 의문.

역자의 표현대로 소설은 요란하다. 현란하고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요란스럽다. 그런 소설 속에서 진심이 전해지기 보다는 엉뚱함이 전달되는 것은 왜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기대를 한다는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게 만드는 작가 고타로. 그의 작품을 두고 미루어 짐작을 해 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진다. 절대 짐작할 수 없는 길을 향해 소설은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sos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지로. 그는 신호를 보내는 모든 이를 구할 수 있을만큼 뛰어나거나 영웅적이지 못한 인물이다. 돕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쉽사리 어쩌지 못할때가 많은 우리와 닮은 그가 평범하지 못한 사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어쩌면 재미는 이 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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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박준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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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소설 속에서 보아왔던 매점매석이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쩐의 전쟁]에서 보여준 돈의 흐름도 속에서도 우리는 돈 자체 보다는 그가 지닌 가치에 대해 쫓고 있었다면 [악화의 진실] 에선 당백전 자체부터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당백전 한 닢. 고리짝적 동전 하나가 소설의 발단이 될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지만 당백전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그 속에 스며들어버린 그들의 삶은 굵은 선이 되어 소설의 줄기를 형성해냈다. "화폐의 타락"이라는 무거운 주제 속에서 그 숨은 비밀을 밝혀내는 것도 재미의 요소였지만 당백전 발행으로 급변하는 조선 사회의 사회생활을 엿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주로 왕조에 그에 따른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이 이루어지는 사극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돈의 역사와 함께 흐르는 인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읽은 페이지가 쌓여가면서 스토리 속 이야기들이 옥수수알마냥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작가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면서 써내려갔을지 눈 앞에 고스란히 보였다. 역사적 고증없이 역사소설에 발을 담갔으랴 만은 그래도 이토록 문장문장에서 공을 들였을 흔적들이 찾아지는 책을 읽게 되는 것이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소설의 소재가 된 당백전은 분명 실패한 화폐전이다. 상평통보 같은 양화에 비해 악화로 결정되어 발행한지 채 1년도 되지 못한 시점에서 발행이 중단되는 비운도 겪었다. 게다가 화폐로써의 가치가 떨어지자 놋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전락하기에 이르른다. 그로인해 누가 손해를 보고 피해를 본 것일까. 두말할 나위없이 가장 타격을 받은 층은 양반이 아닌 서민들이었다. 화폐로서 지불교환 능력을 상실한 당백전을 폐하면서 통용마저 금하다보니 백성들의 손에 쥐어진 그 화폐는 어느 순간 구리 조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십원짜리 동전이 변할때도 1원짜리가 사라질때도 5만원권 신권이 나타났을때도 우리는 그저 새로운 화폐개혁이 일어나나 보다 정도만으로 구경하고 있지 않았던가. 과거 당백전의 폐혜를 읽어나가면서 나 스스로도 사회 전반, 경제 전반의 변화에 너무 무심하지 않았었나 싶어졌다. 변화에는 분명 좋든 나쁘든 결과가 뒤따르는 법인데, 현재의 화폐 변화를 뒤따른 그 변화에는 눈을 가린 채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비떨어지는 대로 좋은 것만 보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어져서 반성의 물고를 트고 있다. 

[화폐의 진실]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복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과거의 일이 답습되어 우리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수 많은 징조를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하는 것. 그저 동전 하나에 불과한 돈에 관한 역사소설로 읽힐수도 있겠지만 좀 더 파고들면서 읽게 되면 우리는 이 소설의 어마어마한 무게에 눌릴지도 모르겠다. 

화폐의 타락사를 살펴보았지만 그 화폐의 타락이 누구의 타락을 가지고 왔는지도 눈여겨봐야할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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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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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5년.
인도인 남자친구가 집안 살림과 함께 어느날 아침 사라져 버린 사건을 겪다.
이런 황당 시츄에이션을 겪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들이 안 겪는 특이한 사건을 겪게 되는 것은 경험상 행운일까. 불행일까. 

결국 열 다섯 봄에 등진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표현이 엄마의 집에 "실례"를 했다가 아닐지. 10년 만에 들어가는 집의 감흥은 그다지 달콤해보이지 않았다. 애인과 전재산을 몽땅 함께 잃어버린 주인공이 엄마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소통의 도구로 문자를 골랐다는 것도 평범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런 딸에게 맞춰 종이에 답장을 써두는 엄마도 정상적이진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말았다. 

엄마의 창고를 빌려 달팽이 식당을 개업하고나서는 손님들과의 대화도 필담노트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연의 손님들이 식당을 거쳐갔다. 그 사이 평생 그리워한 첫사랑의 남자의 부인이 되었던 엄마는 겨우 몇주만에 저세상으로 가 버렸고 딸은 필담용 노트를 관 속에 넣는다. 이건 또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일까. 엄마와의 이어지는 소통? 엄마와의 화해? 

딸은 왜 엄마와 아웅다웅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책 속 모녀도 엄마의 죽음 뒤에 발견된 편지를 통해 서로의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대상이면서도 가까이 있으면 서로 상처입히고 마는 존재. [애자]에서 잘 풀어냈던 모녀관계의 엉겅퀴가 이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계속 하렴"이 담긴 엄마의 유언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매일매일도 그녀에겐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달팽이 식당은 잔잔하면서도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와는 또 다른 인간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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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1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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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을 읽기 전에 나는 표지에서부터 가슴저린 슬픔을 느껴야 했다. 
새끼 손가락과 길이가 같은 넷째 손가락. 그 손가락의 분단처럼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조국의 미래를 알지 못한 채 그는 젊은 생을 조국을 위해 바쳐야 했다. 

그저 눈 감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견딘 민초들도 있다. 그 기회를 틈타 조국을 팔고 이웃을 팔아 부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민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워버린 청년도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엔 다양한 선조들의 모습이 있다. 조국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운 이들을 제외하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할 권리는 없다.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리도 어떤 선택을 했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동지를 팔고 민족을 팔아 여전히 큰 소리 치며 제 뱃살 찌우기에 여념없는 그들의 면상에는 침을 뱉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 비겁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 비해 30년 6개월 남짓 살다간 한 투사의 삶은 애닯고도 숭고했다. 30년. 10대에 읽으면 참 많이 산 세월같겠고, 20대에 읽으면 적당히 산 세월 같겠지만 30대가 지나서 읽게 되면 너무나 짧은 세월을 살다간 삶의 길이. 안중근의 삶은 딱 그랬다. 

동학에 뜻을 두고 민투에 뜻을 두었던 부친의 아들이지만 그는 아비가 천주교도가 되는 것에 불신과 의혹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례를 받으면서 그는 그런 마음을 버렸다. 도마 안중근. 무슨 한자로 된 호이거니 생각했던 그의 이름 앞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세례명이었던 것이다. 토마스 안중근 즉 도마 안중근이었다. 

1권은 도마의 삶을 천천히 걸어가듯 답보하고 있는데, 그 끝은 대구에서 일으킨 국채보상운동 에서 멈춰진다. 민족의 수탈이 자행되는 일제강점기 사에 대해 우리는 역사시간에 속속들이 배울 시간이 충분치 않다. 하지만 이렇듯 훌륭한 작가들의 선 굵은 역사 소설 속에서 그 시절을 눈으로 읽으며 수업시간과 연계해서 떠올려지는 단어들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찾아보는 학습을 하면서 역사는 조금씩 덧입혀지기도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을 집필해온 이문열의 선 굵은 필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심장 속 넷째 손가락의 주인공 도마 안중근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심심하면 장난질하듯 공론화 하려고 애쓰는 일본의 만행 앞에 우리는 그의 넷째 손가락을 다시금 떠올리며 도마의 정신과 의지를 잊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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