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 속에서 살고 있는 13개의 인격...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다. 그 중 가장 먼저 읽었던 시드니 셀던의 2권 분량의 소설이 가장 재미있게 기억되는 건 아마 처음 읽었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우선 선점권을 갖나보다. 기억에서조차도. [검은집]의 작가 기시 유스케도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했다. 제목이 [13번째 인격]이었는데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나서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이야, 재미있다"였기 때문이다. 제3회 일본 호러 소설 대장 장편부 가작인 [13번째 인격]은 호러성 공포를 안겨주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오츠이치의 섬찟한 비린 공포를 맛보았기 때문인지 기시 유스케의 치히로는 그저 병을 앓고 있는 소녀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유체이탈과 그 13번째 인격인 이소라의 실체도 M정도의 놀라움 정도라고나 할까. 마지막에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잔혹성에 대한 잔재도 그랬구나 싶을 정도로 반전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류의 반전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식스센스 이후의 왠만한 반전은 이제 반전으로써의 힘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훌륭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막힘없이 술술 읽혀졌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게 놓아두질 않았다. 그런면에서보면 소설의 재미는 탁월했다. 다만 신선도 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