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집으로 들어오려는 게 아닌가요....?"
p10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던 '집'을 더이상 안전하다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나 영화가 개봉될때마다 '봐야하나?','말아야하나'의 고민에 휩싸인다. 결론적으로 다 보고나서 너무나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공포심을 배가시켜주는 스토리가 하룻밤 자고 일어난다고 머릿 속에서 떨쳐질리 없기 때문이다. '장산범'을 보고 열린 화장실 창문으로 어둠이 보일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기 일쑤였고, 샤워 후 김이 서린 거울을 닦기 무서웠다. 그런데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를 읽으면서 가장 익숙한 목소리들이 무서워졌다. 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 가족의 목소리가 이토록 낯선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니....
12월에 개봉하는 일본영화 <온다>의 원작소설인 <<보기왕이 온다>>는 제 1장 방문자 / 제 2장 소유자 / 제 3장 제삼자 로 나뉜 채로 화자를 달리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쓴 소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외출한 할머니를 대신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 히데키에게 이상한 손님이 찾아왔다. 할머니의 이름, 죽은 외삼촌의 이름, 할아버지의 이름을 연달아부르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 대답을해서도 문을 열어주어서도 안된다는 당부를 듣게 된 히데키를 그 존재가 다시 찾아온 건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이후였다. 마침 아내가 임신을 한 무렵이었는데, 둘만 아는 아기태명을 대며 그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노라며 회사직원이 여자의 방문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퇴직후 첩거해있다가 죽었다고 했다. 무서워진 히데키는 부적을 사모으기 시작했지만 어느날 집으로 돌아와보니 부적들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아내와 딸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가족을 찾아왔다. '보기왕'이라 불리는 무서운 그것.
지인을 통해 오컬트 작가와 퇴마사를 소개받았지만 화자이자 주인공처럼 보였던 히데키가 죽으면서 단편처럼 1장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2장에서는 머리와 얼굴이 씹힌 채 발견된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아내의 시각에서 시작되는데,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히데키의 기억과 달리 2장에서 그는 독불장군에 폭력에 가까운 가부장적 인물로 그려지며 앞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뒤집어 버린다. 남편의 독선에 억압되어 있던 아내는 어느날 부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면서 그 화를 폭발시켰고 이는 남편을 공포로 몰아넣는 행위가 되고만 동시에 집으로 그것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된다. 커다란 입이 달린 기다란 검은 머리가 흉측하게 다가와 딸을 데려가버렸고 그녀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오컬트 작가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퇴마사 마코토는 연인사이. 애정을 쏟았던 의뢰인의 딸은 납치되었고 그 엄마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장을 달리하여 화자가 바뀔 때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변해도 이야기를 되새김질 하지 않아 속도감은 빨랐다. 따라서 지루할 틈없이 빠져들게 되는데, '보기왕'이 목소리를 흉내내서 사람을 산으로 유인한다는 점에서는 '장산범'과 비슷했지만 유괴된 아이가 다음 보기왕으로 변한다는 설정은 달랐다. 다만 한 가족을 노린다는 것과 목소리로 유인한다는 점은 똑같이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나를 쫓는 어떤 존재....사람이든, 요괴든 무섭지 않을 리 없다.
제 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이자 작가 미야베 미유키와 기시 유스케의 극찬을 받은 <보기왕이 온다>는 평소 표현되지 않았던 누군가를 향한 억눌린 미움이 이용된다는 점에서 더 섬찟하게 느껴진 소설이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될지... 12월을 기다리고 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