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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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 드라마 [메이의 집사]는 상류층 아가씨들만이 다니는 여학교에 그들을 담당하는 일류 집사들이 콤비가 되어 볼거리를 제공하는 드라마다. 부모의 죽음으로 부자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메이. 그녀를 담당하게 된 집사는 일류 중에서도 일류. 그들 사이에 신뢰와 애정이라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면서 드라마는 소녀들의 로망으로 가득찬 드라마로 발전되어 나갔다. 마지막 편만을 보지 못한 채 보기를 그만 두어버린 드라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랬다. 

아가씨와 집사라. 우리의 문화와는 사뭇 달라 보이는 그들 관계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으로 쓰여진 또 다른 책이 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라는 제목마저도 수상하기 짝이없는 소설은 미스터리 사건들을 다룬다. 부츠를 신은 채 살해된 독신 여성, 장미밭에 널부러져 있던 전직 물장사 경력의 여인, 결혼식날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밀실상태에서 등을 찔린 채 발견된 신부, 알몸인 채로 살해된 노인 등등 이야기는 죄다 살인사건을 다루고 범인지목을 원하고 있지만 관전포인트는 추리에 있지 않았다. 

범인보다 더 궁금하게 만드는 추리천재 집사의 정체와 재벌 2세 여형사와의 관계발전 정도를 기대해보는 것이 더 흥미로웠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주인공 호쇼 레이코는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호쇼 그룹'의 총수 호쇼 세이타로의 외동딸이지만 일류 대학 졸업 후 경찰관이 되었다. 몇몇을 제외하곤 그녀의 출신을 모른다. 그저 젊고 아름다운 여형사로만 여길뿐. 그런 아가씨의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겸, 집사인 가게야마가 레이코를 향해 뿜어내는 것들은 정중함을 가장한 독설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진 집사는 아가씨를 향해 이렇게 내뱉곤 했다. 

"아가씨는 멍청이이십니까?"  내지는,

"이런 간단한 것도 이해하지 못하시다니, 솔직히 아마추어보다 수준이 낮으십니다." 혹은,

"아가씨, 눈을 멋으로 달고 다니십니까?"

정도는 서스럼 없이 쏟아부어댄다. 사건 하나하나도 재미있었지만 수위를 조절해가며 아가씨를 보살피기보다는 연애하듯 밀당을 하는 집사의 유쾌함이 더 인상적었다. 그간 집사라하면 굽실굽실하거나 주인을 향한 충성심을 보여온 바에 비해 레이코의 집사는 소신발언을 하며 자신의 머리를 굴려 형사보다 더 빠르게 사건의 포인트들을 집어낸다. 영리하면서도 똑부러지는 집사. 아가씨는 왜 이런 집사를 눈여겨보지 않는 것일까? 역시 아가씨는 바보?

2011년 일본서점 대상 1위의 소설 [수수꼐끼 풀이는 저녁식사후에]를 읽다가 만약 한국에서 원작을 각색했을때 어울릴만한 인물들이 곧바로 떠올려졌는데, 시크한 집사 역엔 하정우가, 여형사역엔 하지원이 맡으면 정말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보다 인물의 재기발랄함에 눈길을 두게 만든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라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다음 작품 역시 설레임을 가지고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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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행복했어
지니 로비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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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에서 인간으로 마루타 실험을 했던 일, 나치가 유태인들을 해부했던 일 등은 인간이 동족을 얼마나 잔혹하게 살해할 수 있나를 보여준 예였다.  그때 살아남은 의사들은 그래서 의학의 발전을 도왔다고 입을 꼬매버리고 싶은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내뱉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 이야기는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짐승만도 못한 생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가끔 보여지는 동물을 향한 학대나 실험등을 볼때도 같은 감정이 들곤 했다.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아래 대화를 할 수 없는 동물들의 울부짖음에 귀닫아야하는 인간은 사실 같은 동족인 인간에게도 메스를 대는 존재였으니 애초 인간을 위해서라는 말조차 그 정의로움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럴때면 정말 인간만큼 추악한 생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져 울고만 싶다!!!!

양철북 출판사는 아주 오래전 [로빙화]라는 작품으로 나를 울린 적이 있다. 심금을 울리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눈물이 차오르게 만드는 책을 골라낸 매의 눈을 가진 출판사가 이번에는 가슴이 아니라 숫제 발바닥 밑에서부터 차올라오는 눈물로 샤워하게 만들었다. 

[네가 있어 행복했어]는 인간으로 태어나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어릴 적 친아버지의 구타로 청각장애인이 되어버린 조이는 그녀를 정상인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엄마의 욕심으로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채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입술이 수염으로 뒤덮인 새 아버지와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고, 엄마의 "안된다"는 소리에 친한 친구마저도 멀리 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 외롭고 쓸쓸했던 지니는 우연히 버섯을 따러 갔다가 할아버지 의사를 만나게 되고 그가 키우는 어린 침팬지를 통해 수화를 배우게 된다. 

수화로 자신의 감정과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전달하는 특별한 침팬지 수카리. 태어나자 마자 엄마를 밀렵꾼들에게 잃고 자칫 삶아먹힐뻔한 삶에서 구조되어 이름과 대화법을 갖게 된 수카리는 엉덩이가 하얘서 스와힐리 어로 "설탕"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여졌다. 사랑으로 자라던 수카리와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조이의 특별한 우정이 소녀의 삶을 변화시켰고 결국 수화를 반대하던 엄마의 고집도 꺾어버렸다. 

하지만 곧 할아버지가 죽고 수카리와 이별해야했던 조이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대학자금까지의 신탁금을 남겨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사후 준비를 해 놓은 점과 또 다른 신탁을 받은 수카리를 조이에게 남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엄마의 반대로 유언을 들을 수 없었던 조이는 1년이 지난 이후에야 수카리를 찾아 헤매었고 동물원을 전전하던 수카리가 결국 동물 실험에 이용되며 독약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그곳으로 날아갔다. 

"아파 싫어"
"나 착해. 안아줘"
:살려 줘. 제발."

끊임없이 수화로 인간들에게 의사를 전달했지만 묵살당한 채 실험대상으로 이용되고 있던 수카리. 인간과 유전적으로 98퍼센트 일치하는 침팬지보다 더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의 손에서 구해졌지만 돌아오는 길에 수카리는 계속 "더러워. 아파"라며 목욕을 원했다. 사실 잔인하게 뼛속까지 문신을 해 놓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 상처를 수카리는 더럽다며 계속 씻고 싶어했다. 

조이를 만나 안아달라고 표현하는 부분, 더럽다며 계속 씻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만 눈물은 몸을 뚫고 세상밖으로 계속 분출되어 버렸다. 이 순간 정말 인간이라는 사실이 너무 미안해졌다. 분명 실험실의 그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이 준 상처를 내가 꼬옥 껴안아서라도 보듬어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평균 수명보다 1/5밖에 못살고 살충제 실험의 후유증으로 간암판정을 받고 죽은 수카리는 마지막엔 조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며 떠났다. 앞으로 세상을 더 살아도 이보다 더 슬프고 이보다 더 미안해지는 이야기와 마주하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장담하는 걸 참 싫어하는 편인데도 나는 이 소설을 앞에 두고 감히 장담하고 있다. 그만큼 큰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야기는 캘리포니아에서 앵무새와 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미국의 작가 지니 로비에 의해 쓰여졌다. 

양철북 출판사에서는 정말이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책들만 펴내는 모양이다. 이 책 또한 소중히 서가에 간직하면서 내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거나 인간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 덕목들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 즈음마다 꺼내볼 작정이다.  그때마다 책이 나를 가슴 따뜻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등불을 밝혀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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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 - 안니바오베이 장편소설
안니바오베이 지음, 서은숙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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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2    어떤 사람들의 인생은 발생한 어떤 일로 인해 바로 하나의 문이 영구히 닫혀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상처입니다.


[연화]는 좀 특이한 인연의 남녀를 다루는 소설이다.  주목받고 있다는 중국의 여류작가의 작품을 읽는 도중 문득 우리 문학소설 제목이 하나 떠올랐다. 박범신 작가의 [외등]. 드라마로 먼저 접하고 원작을 읽었던 그 소설은 드라마와 원작 모두 훌륭했으며 개츠비보다 더 절절하게 한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 희생한 남자의 절절한 사연이 가슴메이게 만든 작품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평생 사랑하며 놓치지 못했던 그들 사이의 인연의 끈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어진다. 

하지만 [연화]에서 남자가 여자를 평생 놓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찾아나선 매듭은 '사랑'보다는 '공감'의 이름으로 설명되어져야 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난 지샨셩은 모범생이었다. 어머니가 바라는 길 외의 그 어느 것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소년 샨셩은 단 한 사람 네이허와의 친분은 어머니의 뜻과 달리 끊어내지 못했다. 모든 면이 그와 달라 보이는 그녀에게서 그가 발견한 것은 공감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외삼촌의 집에 더부살이형태로 얹혀사는 소녀, 네이허는 모든 면에서 자유분방했다. 공부에 연연하지도 외무나 청결에 연연하지도 심지어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조차 초연했는데, 단 한 사람 샨셩과는 죽이 잘 맞아 늦은 밤 아무도 몰래 그의 방에서 자고 가는 일도 허다했다. 

두 사람 모두 타인과 관계맺기에는 서툴고 귀찮은 인간형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독을 그림자처럼 붙여 다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내면속 같은 동굴을 갖고 있어 위안과 위로를 받으며 함께 성장해나갔다. 적어도 네이허가 유부남 선생과 불륜관계에 빠져 낙태와 정신병원 감금의 수순을 겪기 전까진. 


p.37   우리에게는 사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전혀 없어요

이후, 샨셩은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가 헤어졌고 네이허 역시 여러 남자를 전전하다가 티베트의 외지 마을에 정착해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그런 네이허를 만나러 모퉈로 가기 위해 동행을 찾던 샨셩 앞에 여류작가 칭자오가 나타났다. 

칭자오. 티베트 낡은 여관, 르마 307호 투숙객이며 1년반째 매일 아침 복도에서 한약을 달이며 체류중인 병든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샨셩과 함께 동행하여 도보로 나흘이 걸리는 모퉈로 향하는 동안 그들의 지난 과거를 다 듣게 된다. 그녀 역시 그들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도 적합한 통로를 찾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기에 향해가는 내내 그들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그들을 기다리던 것은 네이허가 아니라 그녀가 남긴 유품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2년 전에 사망한 상태였고 모든 것을 알면서도 네이허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에 와 봐야했던 샨셩의 추억 여행이 바로 [연화]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의 방에서 자고 일어나며 ' 나 여기 있어. 아직 안 갔어."라고 말했던 것처럼 어쩌면 그녀는 죽어서 육신만 사라진 채 오래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외로움은 다른 사람으로 덮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만든 소설, 연화.

외등처럼 철저하게 자기 희생적이면서도 진국빛 사랑이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던 그들의 인연은 강렬한 기억과 함께 영원히 남아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매혹되었으면서 단 한 번도 그녀의 손목을 잡지 못했던 샨셩. 언제나 다가설듯 가까운 거리에서 애만 태우던 네이허, 병든 시간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병과 함께 살아내던 칭자오.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이들의 삶은 연화라는 제목과 함께 꽤 오랫동안 기억속에 머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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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하는 골짜기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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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편지]에 등장했던 작은 간이역은 KTX의 거대 역사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대형 할인마트보다 가끔은 동네 작은 점빵(?)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처럼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곳이 왠지 귀엽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도 활성역이 되어 있을지 궁금한 그 역만큼이나 작은 역이 있다.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뜻의 별어곡은 정선행 산골역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사람들의 역사와 추억이 어린 곳이었다. 그런 곳이 폐해져 간혹 그곳을 찾던 사람들은 물론 일터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조차 쫓겨났다. 하지만 오롯이 홀로 남아 추억을 지키는 그 별어곡의 사연을 "이별하는 골짜기"는 풀어내고 있다. 

역은 본디 머무는 사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렇다보니 발걸음마다 줄줄이 흘려지는 사연들이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아 역에 저금하듯 차곡차곡 쌓여갔다. 

제초제를 먹은 아들 때문에 울고불고 하던 누군가의 모친의 이야기나 병들고 귀찮아져 역에 버려진 애완견들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은 물론 티켓을 파는 빨강머리 레지에서부터 제자식을 제 손으로 묻은 아비와 산기슭의 외딴집에 이사온 외지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사연이 몰려드는 곳이 역인 것이다.  스캔들과 가정사가 수다로 풀어지는 곳이 미용실이라면 역은 남녀노소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털어놓는 역사드라마 같은 역할을 오랜세월 톡톡히 해냈다. 

그 중 외지에서 이사온 두 여인의 사연은 나는 짐승이다. 나는 개다. 나는 고양이고 닭이다 라는 과격한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데, 의붓 아비에 의해 480원에 팔리고, 아이를 임신한 채 죽어갈수 밖에 없었던 정신대 여인들이 해방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들듯 찾아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산기슭 외딴집에 이사온 두 여인의 정체는 몸과 마음 모두 멍이 든 채로 살아온 정신대 할머니들이었고 그들은 생의 마지막 의탁을 이곳에 맡기러왔다. 

반면 늙은 역무원 신태묵은 8살 피난 길에 가족을 잃어 외롭게 살아오다 자신의 과실로 남편을 잃은 여인과 그 딸을 거두며 살았다. 결국 그 사실이 밝혀져 아내는 자살하고 딸에겐 의절당한 채 살고 있어 이래저래 외로운 노인으로 늙어가는 곳, 별어곡이다. 늙은 역무원이 있다면 젊은 역무원도 있을 터. 스물 일곱의 막내 역무원 정동수는 역 맞은 편 제과점에 홀로 사는 여인 때문에 그 아비의 과거까지 밝혀지며 별어곡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역에 두고 떠남으로써 이야기와도 이별하는 역으로 남는다. 

역이 사라지면서 이야기가 담긴 지구 한 조각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사연이 많이 담겼을 법한 사라진 작은 역들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구구절절 사람냄새가 진하게 배여있는 이야기만큼 그리워지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이별하는 골짜기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묻어놓은 이야기들의 무덤 같이 느껴지는 곳이라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곳이다. 

정말 있을까. 이 작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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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집 - 임형남.노은주의 건축 진경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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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는 시간이 담깁니다'

근래 들었던 그 어떤 카피보다 가슴을 울리는 문장이다. 건축에 시간이 담기다니. 건축을 두고 이보다 더 시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있을까. 건물은 그저 사람들이 필요해 의해 짓고 살아가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람이 담기는 그 공간에 시간도 담겨 있음을 이 멋진 문장으로 깨우치게 되었다. 

책은 제목까지 예뻐서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라는 이름으로 두번째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나무를 이용해 지은 집이 어째서 나무처럼 자란다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일까. 아마 건축가의 바램이 담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시간이 담기고 예쁜 이름이 붙여진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세번째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다. 바로 그림~!! 건축 서적의 대부분이 사진인데 비해 이 책은 예쁜 수채화로 그려진 집들 투성이다. 간혹 몇몇 컷에 사진이 붙여져 있긴 하지만 그외에는 모두가 다 그림 일색이다. 그래서 더 자연친화적으로 보이고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책은 같은 전공에,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건축가 부부가 만들었다. 

p.47 건축은 향기로워집니다 / 건축에는 시간이 담깁니다

2001년 시작했다는 책이 엮이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2011년이 되어서야 출판되었으니.시간이 건축을 만들듯 고심한 시간만큼이나 아름다워진 내용이 우리를 사로잡는 까닭도 그 숙성에 있을 것이다. 인곡리 신선생댁, 통의동 옛집, 병산서원,송광사등등 앞으로 우리가 건축물을 바라볼때 어떤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아야 좋은지 감탄 포인트를 집어주면서도 자신들이 갖게 된 전문가적 개념과 신념들도 함께 동조하게 만든다. 

부끄럽게도 양동마을을 몇해전 다녀왔지만 사진만 찍다왔을 뿐 심수정의 아름다움을 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저자가 조목조목 집어준 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아 다시 한번 다녀올까 싶다. 이처럼 알고 보는 이에겐 보이는 것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이에겐 별다른 감동을 남기지 못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알려주었더라면 그 아름다움을 눈여겨 볼 수 있었을텐데......뒤늦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고치러 다녀와야겠다. 이런 깨우침은 정말이지 고마운 깨우침이 아닐 수 없다. 

예전과 달리 추위와 더위나 막아주는 기능을 떠나 편리하면서도 아름다움과 개성을 함께 지녀야 하기에 요즘의 집들은 고민들이 많을 것만 같다. 의인화 할 수 있다면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다. 사실 오랜 시간 아파트 생활을 하다보니 주택에서의 생활은 약간 무서움이 일기도 한다. 도둑의 침입이 더 쉽지 않을까. 잡상인이 더 자주 들락거리지 않을까. 넓은 공간에 난방은 잘 되나? 벌레는? 등등의 괜한 걱정들로 주택에서 살 기회를 만들지 않아왔던 일이 책을 구경하면서 참 많이 후회되기도 했다. 

아파트가 주지 못한 삶의 넉넉함과 고즈넉한 어우러짐은 주택에서 살면서 맛볼 수도 있었을텐데, 나의 편협한 생각이 선택의 기회조차 박탈해버렸던 것이다. 이젠 기회가 된다면 주택의 삶을 한 번 꿈꿔보고 싶다. 내 손으로 직접 집짓기에 참여하면서 내 필요에 의한 공간을 짜가며 획일화된 공간분할에서 벗어나 볼 날을 꿈꾸고 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p. 46  사실 건축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생활을 담다보니 구차해지기도 하지만 
           표현하기 힘든 사람들의 생각이나 잡히지 않는 시간의 흔적들이 담길 때는 고상하고 우아해지기도 합니다. 

상상을 했더니 벌써부터 집이 자라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50줄에 들어서도 여전히 땅이 좋고, 집이 좋아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는 저자에게서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에 대한 건강함을 배워나가본다. 인간에게 깨달음이 주는 축복은 어제와 다른 삶을 살게 만든다는 점인데, 시각부터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결국 삶이 변하게 된다는 진리를 이 책을 통해서도 나는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부터 머릿속에서 자라고 있는 집을 부수고 짓고 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 시켜보려한다. 현실로 옮겨지기 전까지.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부터,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어떤 것을 먹고 싶고, 어떤 영화를 보고 싶고 어떤 물건을 갖고 싶다는 바램들에 추가해서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아주 기본적이지만 어제엔 꿈꿔보지 못한 꿈을 나는 꾸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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