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행복했어
지니 로비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731부대에서 인간으로 마루타 실험을 했던 일, 나치가 유태인들을 해부했던 일 등은 인간이 동족을 얼마나 잔혹하게 살해할 수 있나를 보여준 예였다.  그때 살아남은 의사들은 그래서 의학의 발전을 도왔다고 입을 꼬매버리고 싶은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내뱉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 이야기는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짐승만도 못한 생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가끔 보여지는 동물을 향한 학대나 실험등을 볼때도 같은 감정이 들곤 했다.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아래 대화를 할 수 없는 동물들의 울부짖음에 귀닫아야하는 인간은 사실 같은 동족인 인간에게도 메스를 대는 존재였으니 애초 인간을 위해서라는 말조차 그 정의로움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럴때면 정말 인간만큼 추악한 생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져 울고만 싶다!!!!

양철북 출판사는 아주 오래전 [로빙화]라는 작품으로 나를 울린 적이 있다. 심금을 울리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눈물이 차오르게 만드는 책을 골라낸 매의 눈을 가진 출판사가 이번에는 가슴이 아니라 숫제 발바닥 밑에서부터 차올라오는 눈물로 샤워하게 만들었다. 

[네가 있어 행복했어]는 인간으로 태어나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어릴 적 친아버지의 구타로 청각장애인이 되어버린 조이는 그녀를 정상인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엄마의 욕심으로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채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입술이 수염으로 뒤덮인 새 아버지와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고, 엄마의 "안된다"는 소리에 친한 친구마저도 멀리 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 외롭고 쓸쓸했던 지니는 우연히 버섯을 따러 갔다가 할아버지 의사를 만나게 되고 그가 키우는 어린 침팬지를 통해 수화를 배우게 된다. 

수화로 자신의 감정과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전달하는 특별한 침팬지 수카리. 태어나자 마자 엄마를 밀렵꾼들에게 잃고 자칫 삶아먹힐뻔한 삶에서 구조되어 이름과 대화법을 갖게 된 수카리는 엉덩이가 하얘서 스와힐리 어로 "설탕"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여졌다. 사랑으로 자라던 수카리와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조이의 특별한 우정이 소녀의 삶을 변화시켰고 결국 수화를 반대하던 엄마의 고집도 꺾어버렸다. 

하지만 곧 할아버지가 죽고 수카리와 이별해야했던 조이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대학자금까지의 신탁금을 남겨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사후 준비를 해 놓은 점과 또 다른 신탁을 받은 수카리를 조이에게 남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엄마의 반대로 유언을 들을 수 없었던 조이는 1년이 지난 이후에야 수카리를 찾아 헤매었고 동물원을 전전하던 수카리가 결국 동물 실험에 이용되며 독약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그곳으로 날아갔다. 

"아파 싫어"
"나 착해. 안아줘"
:살려 줘. 제발."

끊임없이 수화로 인간들에게 의사를 전달했지만 묵살당한 채 실험대상으로 이용되고 있던 수카리. 인간과 유전적으로 98퍼센트 일치하는 침팬지보다 더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의 손에서 구해졌지만 돌아오는 길에 수카리는 계속 "더러워. 아파"라며 목욕을 원했다. 사실 잔인하게 뼛속까지 문신을 해 놓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 상처를 수카리는 더럽다며 계속 씻고 싶어했다. 

조이를 만나 안아달라고 표현하는 부분, 더럽다며 계속 씻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만 눈물은 몸을 뚫고 세상밖으로 계속 분출되어 버렸다. 이 순간 정말 인간이라는 사실이 너무 미안해졌다. 분명 실험실의 그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이 준 상처를 내가 꼬옥 껴안아서라도 보듬어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평균 수명보다 1/5밖에 못살고 살충제 실험의 후유증으로 간암판정을 받고 죽은 수카리는 마지막엔 조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며 떠났다. 앞으로 세상을 더 살아도 이보다 더 슬프고 이보다 더 미안해지는 이야기와 마주하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장담하는 걸 참 싫어하는 편인데도 나는 이 소설을 앞에 두고 감히 장담하고 있다. 그만큼 큰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야기는 캘리포니아에서 앵무새와 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미국의 작가 지니 로비에 의해 쓰여졌다. 

양철북 출판사에서는 정말이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책들만 펴내는 모양이다. 이 책 또한 소중히 서가에 간직하면서 내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거나 인간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 덕목들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 즈음마다 꺼내볼 작정이다.  그때마다 책이 나를 가슴 따뜻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등불을 밝혀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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