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 - 안니바오베이 장편소설
안니바오베이 지음, 서은숙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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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2    어떤 사람들의 인생은 발생한 어떤 일로 인해 바로 하나의 문이 영구히 닫혀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상처입니다.


[연화]는 좀 특이한 인연의 남녀를 다루는 소설이다.  주목받고 있다는 중국의 여류작가의 작품을 읽는 도중 문득 우리 문학소설 제목이 하나 떠올랐다. 박범신 작가의 [외등]. 드라마로 먼저 접하고 원작을 읽었던 그 소설은 드라마와 원작 모두 훌륭했으며 개츠비보다 더 절절하게 한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 희생한 남자의 절절한 사연이 가슴메이게 만든 작품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평생 사랑하며 놓치지 못했던 그들 사이의 인연의 끈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어진다. 

하지만 [연화]에서 남자가 여자를 평생 놓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찾아나선 매듭은 '사랑'보다는 '공감'의 이름으로 설명되어져야 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난 지샨셩은 모범생이었다. 어머니가 바라는 길 외의 그 어느 것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소년 샨셩은 단 한 사람 네이허와의 친분은 어머니의 뜻과 달리 끊어내지 못했다. 모든 면이 그와 달라 보이는 그녀에게서 그가 발견한 것은 공감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외삼촌의 집에 더부살이형태로 얹혀사는 소녀, 네이허는 모든 면에서 자유분방했다. 공부에 연연하지도 외무나 청결에 연연하지도 심지어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조차 초연했는데, 단 한 사람 샨셩과는 죽이 잘 맞아 늦은 밤 아무도 몰래 그의 방에서 자고 가는 일도 허다했다. 

두 사람 모두 타인과 관계맺기에는 서툴고 귀찮은 인간형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독을 그림자처럼 붙여 다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내면속 같은 동굴을 갖고 있어 위안과 위로를 받으며 함께 성장해나갔다. 적어도 네이허가 유부남 선생과 불륜관계에 빠져 낙태와 정신병원 감금의 수순을 겪기 전까진. 


p.37   우리에게는 사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전혀 없어요

이후, 샨셩은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가 헤어졌고 네이허 역시 여러 남자를 전전하다가 티베트의 외지 마을에 정착해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그런 네이허를 만나러 모퉈로 가기 위해 동행을 찾던 샨셩 앞에 여류작가 칭자오가 나타났다. 

칭자오. 티베트 낡은 여관, 르마 307호 투숙객이며 1년반째 매일 아침 복도에서 한약을 달이며 체류중인 병든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샨셩과 함께 동행하여 도보로 나흘이 걸리는 모퉈로 향하는 동안 그들의 지난 과거를 다 듣게 된다. 그녀 역시 그들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도 적합한 통로를 찾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기에 향해가는 내내 그들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그들을 기다리던 것은 네이허가 아니라 그녀가 남긴 유품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2년 전에 사망한 상태였고 모든 것을 알면서도 네이허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에 와 봐야했던 샨셩의 추억 여행이 바로 [연화]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의 방에서 자고 일어나며 ' 나 여기 있어. 아직 안 갔어."라고 말했던 것처럼 어쩌면 그녀는 죽어서 육신만 사라진 채 오래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외로움은 다른 사람으로 덮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만든 소설, 연화.

외등처럼 철저하게 자기 희생적이면서도 진국빛 사랑이 아닌 잔잔하면서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던 그들의 인연은 강렬한 기억과 함께 영원히 남아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매혹되었으면서 단 한 번도 그녀의 손목을 잡지 못했던 샨셩. 언제나 다가설듯 가까운 거리에서 애만 태우던 네이허, 병든 시간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병과 함께 살아내던 칭자오.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이들의 삶은 연화라는 제목과 함께 꽤 오랫동안 기억속에 머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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