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7 - 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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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2일 일요일부터 8월 13일 월요일까지 이틀간의 이야기가 <레벨7(상)>에 수록되어져 있다.

 

p11 레벨 7까지 가면 이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밑도 끝도 없이 레벨 7이라니...시작부터 이상하지만 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서부터 느끼는 혼돈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지금 깨어난 이 곳은 어디인지,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여성은 누구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은 채 8월 12일 일요일, 잠에서 깨어났다. 기억이 없다는 것. 이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소설을 통해서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주인이 없는 맨션. 낯선 여자와 함께 깨어난 아침. 이웃조차 아무 답변도 해 줄 수 없는 가운데 가장 큰 일은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내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팔에 왜 '레벨7'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는 것일까.

 

카운슬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받던 학생이 사라졌다. 그것도 갑자기. 일기장에는 "레벨7까지 가 본다,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만 적혀 있는데, 레벨 7이 장소를 의미하는 것인지 어느 범위를 얘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조차 없다. 기억을 찾는 것과 사라진 사람을 찾는 일. 어느 쪽이 더 쉬운 일일까. 단 나흘 동안 찾아내야 하는 것들 치고는 이야기는 약간 무거운 편인다.

 

첫번째 권을 읽고 있다보니 아무것도 밝혀진 바 없이 의문만 증폭되어 더 답답할 따름이다. 자면서 쉬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게 될까. 사회소설을 주로 집필해온 미야베 미유키의 <레벨7>은 좀 묘한 구석이 있는 소설이다. 의문투성이면서 단서들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기억'에 의존할 수도 없다. 이 소설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데 1984년 한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그 실태가 폭로된 '우쓰노미야 병원 사건'을 모티프로 해 구성되어졌다고 한다. 또한 1982년 '호텔 뉴재팬 화재'도 함께 구성되어졌다는 것을 보면 평소 글을 써 오던 그 범위내의 소설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미여사의 다른 소설보다는 착착 사건이 진행되는 맛이 적어 약간은 재미 부분에서 가감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미미 여사의 소설이라 중간에서 끊지 못하고 2권을 꺼내들며 그 마지막 결론에 좀 더 재미나게 도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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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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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모의재판이지만 강도나 수위는 꽤 높았다. 어른들의 그것만큼이나.

애초에 cctv가 설치되었던 것도 아니고, 그날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히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군가가 죽었다. 그 사건을 두고 살인사건이니 자살이니를 두고 분분한 의견이 갈렸지만 살인사건이라면 누가? 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단 5일 동안 아이들은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까.

 

교사와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학부모, 형사, 기자, 변호사 등등 관계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된 재판이기에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짊어질 어깨의 짐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한 남학생의 죽음. 가시와기는 12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날 밤.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문제는 그가 등교거부생이었다는 점. 전 달인 11월 14일에 과학준비실에서 교내 불량 학생 셋과 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살인사건으로 몰고갈 증거가 없던 찰라 교장,담임,검사를 맡은 료코에게 각각 목격자로부터 서신이 전해졌던 것이다. '고발장'의 형식으로. 이에 료코는 법정에서 이 부분을 밝혀 불량 학생이자 죽은 학생과 다툼이 있었던 오이데 슌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슌지의 변호를 맡은 도토대 부속 중학교 3학년인 간바라 가즈히코는 료코의 증거, 증인, 주장을 숟가락 뒤집듯 뒤집어 보이며 사건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고 만다. 간단하거나 시시할 것만 같았던 학생들의 재판은 점점 논리적이고 진지한 분위기를 띄며 어른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고 종국엔 진실을 시원스레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사법제도는 죄형법정주의를 기본으로 한다고 한다. 법률에서 규정하지 않은 죄를 국민에게 물을 수 없다는 거다. 고의성이 동반된 가해, 누군가가 죽을 줄 알면서도 방치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의' 의 경우는 '살인'으로 간주된다는 점은 우리네 법과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믿고 있는 주장의 근거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사실 오이데 슌지는 학교내에서 누구나 알만한 불량한 학생이었다. 폭력을 휘두르고 금품을 강탈하고 여학생을 빈 교실로 끌고가 커터칼로 위협하며 속옷을 벗기려 한 적도 있는 소위 '나쁜 학생'의 표본처럼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의심하는 쪽이 생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쪽이 생겨났다.  8월 20일 장장 5일간의 법정 공방이 마무리 되고 교내재판이 폐정되는 기간 안에 진실은 밝혀졌다.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의 재판이지만 이 소설은 미미여사의 치밀한 짜임새 아래, 일본의 재판정 풍경이 담겨 있어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절대 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루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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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2 - 결의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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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아침, 한동안 등교거부로 학교에 오지 않았던 가시와기 다큐야가 교정에서 눈에 파묻힌 채 발견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하던 중 학교 폭력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소문은 와전되고 급기야 '졸업작품'대신 "우리의 힘으로 알아내자"라는 의견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료코는 다카기 선생에게 체벌을 받았고 계속 조사하던 중 누군가가 보낸 고발장의 수상쩍음과 학교 측에 책임을 추궁하는 언론,의문의 방화사건까지....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위치한 다쿠야의 죽음을 교내재판을 통해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p 15   너 같은 학생이 이런 얘길 꺼낼 줄이야.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얌전히 모른 척하고 있으면 아무 문제 없이 지망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네가.

         누구보다도 학교에 쓸모 있는 학생인 네가.

 

 

조용히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다카기 선생의 말처럼. 어른들의 생각은 대부분 이러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드라마 <여왕의 교실>이 떠올려졌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상 속 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신의 일은 자신의 힘으로 견디고 알아내고 버티는 힘을 갖길 원했던 마녀 쌤의 바램처럼 미미여사 역시 옛 2학년 A반 아이들에게 같은 것을 희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3학년이 되기 전 이 반에서는 세 명의 학생이 사라졌다. 가시와기 다큐야와 아사이 마쓰코는 죽어 버렸고 미야케 주리는 등교 거부 중이다. 친구가 죽거나 사라지거나 할 것 없이 학교생활을 충실하고 즐겁게 보내기엔 청소년기는 너무나 순수한 시절인 것이다.

 

결국 8월 15일 오전 아홉시, 가시와기 다큐야 살해 사건을 심의하는 교내재판이 열린다. 이노우에가 판사를, 료코가 검사를, 다큐야의 옛친구인 가즈히코가 맡았고 다케다, 오야마다,야마노,가마타,미조구치,구라타,가쓰키,유키오가 배심원이 되어 재판을 지켜보게 되었다. 과연 이 학생들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까?  중학생들의 법정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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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3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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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새까만데다가 얼어붙을 것처럼 추운 곳에서 열 두살 와타루는 대체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

 

탄식의 늪에 다다른 와타루는 아버지의 애인인 다나카 리카코와 닮은 여인을 만나고 흠칫 놀라고 만다. 슬픔의 복장을 줄곳 입고 있었다는 그녀는 아버지의 애인처럼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그녀의 이름은 리리얀느. 사랑을 잃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마음의 상처가 깊고 슬픔의 자국이 짙은 사람들이 모여 '티어즈 헤븐'(슬픔의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 마을에서 쫓겨난 리리얀느는 다른 사람의 남편을 가로챈 벌로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와 바람난 남자가 가끔 들른다고 하지만 그 남자의 얼굴이 아버지와 똑같음을 확인한 순간 소년의 분노게이지는 폭발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게다가 그 남자는

 

p71  원래 부모한테 받은 생명이다. 아무 대가도 없이. 공짜로 받은 목숨이야.

       고맙게 생각하고 얌전히 버림받는 것이 제 분수를 아는 길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 대체 어떤 어른이 열 두살 아이에게 이런 말을 건낼 수 있을까.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부모의 도리를 저 버려도 좋다는 이야기인데, 곁에 있다면 대신 멱살을 잡아도 시원찮을 상황이었다. 애초에 와타루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판타지의 세상으로 넘어왔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거나 비전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건너온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증오가 있고 파괴가 있고 질투가 있었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차지하기 위해 어머니와 자신에게 폭언을 일삼던 여자를 닮은 비전 여인 리리를 보고 리리와 그의 남자 야콤을 죽이는 자신의 환영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진실이든 아니든 그 마음 속엔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속여도 스스로의 마음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니까.

 

박사의 말처럼 완벽하게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는 와타루에게 여신을 만날 수 있는 운명의 탑에 도착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충고한다. '바른 길을 걸어라'면서.

 

비전은 우리의 현실 세계와 그리 많이 달라보이지 않았다. 마음 먹기에 따라 우리는 어느때고 좋은 사람도 될 수 있고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도 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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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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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르별로 썼다하면 다 베스트셀러가 되고마는 행운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글만 잘 쓰는 작가가 아니었나보다. 만능 스포츠맨에 뛰어난 스노보더이기도 하다니 한 인간에게 신이 내린 달란트는 절대 공평하지 않은 듯 해서 기분이 살짝 나빠지려고까지 한다. 게다가 이 소설을 다 읽고나니 더 이상 입을 뗄 기운도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스키장을 무대로 "협박"과 "진실"이 뒤섞인 가운데 누가 범인인지 모르게 트릭을 써 나가는 그의 미스터리 요리 능력은 <백은의 잭>에서 그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인 '백은의 잭' 은 은색 설원을 의미하는 "백은"과 납치를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그 네이밍을 따와 조합된 이름으로 스키장을 팔고자하는 사장과 스키장에 묻힌 폭탄을 찾고자 하는 직원들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며 협박범의 요구대로 돈이 건네질때마다 설원에서 멋진 추격전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어느 미스터리보다 스피드하게 눈을 제치는 역동적인 모습들이 눈 앞에 그려지면서 스키장을 내려오는 속도만큼이나 재미는 가속도를 붙이며 마지막 장을 놓치기 전까지 독자의 가슴을 두근반세근반 뛰게 만든다.

 

범인이 밝혀지고 그의 목적이 드러나면서 인간의 욕심과 추악함이 왜 더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지 가감없이 들춰지고 그 과정에서 실수로 빚어졌던 과거 사건에 대한 고백까지 얹어지며 이야기는 단선이 아닌 두 개의 이야기가 함께 포장이 벗져지듯 함꺼번에 밝혀지며 종결맺는다. 깔끔하고 말끔하다. 그래서 읽고나서 그 어떤 잔앙금이 마음 속에 남겨지지 않는다.

 

감정의 곡선을 타고넘기 보다는 사건이 기차 지나듯 스쳐지나가며 이성적으로 읽게 만드는 힘.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 힘이 좋아 나는 그의 소설을 손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깔끔한 이런 소설읽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머릿 속이 복잡할 수록, 마음이 심난 할 수록 정신을 놓고 몰두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할 때다. 지금처럼.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은의 잭>을 읽으며 나는 잠시 심난한 마음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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