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가족 무라카미 류 셀렉션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장정일 해설 / 이상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손창섭의 "삼부녀"에서 19금적 요소만 쫙 뺀 듯한 소설이다. 손창섭이 딸뻘인 여성들을 데려와 유사가족을 만든다면, 류는 독자적인 1인 주체만이 최후의 가족형태라고 역설한다. 가족이란 이름의 환상과 굴레를 파괴하고 개인 주체의 행복과 자유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문학적인 쌍둥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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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12-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손창섭이 얼마나 대단한 글쟁이였는지 다시 깨닫게 된다. 그가 이런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고, 중장년에 썼던 연재소설들이 오늘날까지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10 08:26   좋아요 0 | URL
손창섭 대단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손창섭만한 이 없습디다. 문장력만 보면 김승옥이 짱 먹겠지만, 그 어떤 불온한 상상력과 아우라를 생각하면 저는 손창섭이 짱먹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개같은 개 어떻게 이런 작가를 전집 형태도 아닌, 그냥 이 출판서 저출판사 떠돌이처럼 출간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박한 출판 혹은 문단이라면 아마도 손창섭 원고 싹싹 글어서 양장본으로 전집이 출간되었을 겁니다.

수다맨 2015-12-10 10:59   좋아요 2 | URL
저는 김승옥의 문장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정확성과 미려함이 돋보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별로 감응한 적이 없어서요. 반면에 문장이 쉬이 읽히지 않고, 일견 거칠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지요. 칼 맑스나 오에 겐자부로, 슬라보예 지젝이나 손창섭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데 (장르는 제각기 다르다 할지라도) 이들 글에는 그만의 깊이가 아우라가 있다고 봅니다.
무라카미 류나 손창섭은 제가 보기에는 가족 공동체(나아가 국가라는 거대 집단)를 혐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과감히 해체를 감행하지요. 차이가 있다면 손창섭이 계약을 통하여 가족의 재구성을 꾀한다면, 무라카미 류는 극단적으로 1인 단수 가족의 형상화를 시도합니다. 둘 다 복수 가족 자체가 누군가(신경숙 류의 억척어멈)의 희생을, 남성 가장의 권위주의적 지배를, 국가와 사회를 위한 노동력 재생산 기능을 공고히 하는 집단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5DOKU 2015-12-10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자에 <인간교실>을 읽었습니다. 수다맨님께서 말씀하신 손창섭의 `가족 해체` 작업이 무엇인지 알 것 같더군요. 아직 <삼부녀>는 읽지 못했습니다만, <최후의 가족>과 겹쳐 읽으면 괜찮을 듯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앤드루 포터의 <어떤 날들>도 읽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저자 또한 가족 해체 작업을 감행합니다만 그 대상이 오늘날의 미국 중산층 가정이라는 게 다르긴 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해 드립니다.

수다맨 2015-12-11 11:00   좋아요 0 | URL
앤드루 포터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손창섭과 류의 작업과 유사한 면모를 지닌 듯한 작가인가 봅니다.
사실 가족 해체라는 것 자체는 이제 아주 독특한 서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이 보다 새로운 성격을 띠려면 `가족 만들기`라는 차원으로까지 도약을 감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렇기에 계약(손창섭)과 1인 가족(류)과 같은 설정이 나와야 하는 것일 테지요. 좋은 책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DOKU 2015-12-11 16:36   좋아요 0 | URL
네 물론 손창섭과 같은 빼어난 작가들이야 문제 제시 차원을 넘어 작가 나름의 해결책이나 어떤 실험을 감행하겠지요. 그런데 이것도 어디까지나 손창섭 같은 사상가적 기질을 가진 위대한 작가들의 능력인 것이고, 도약을 감행하며 `무엇을` 보여주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를 `어떻게` 보여주었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봅니다. 그 문제의 작동 양상이나 병리적 현상을 어떤 보편성에 실어 서사 내에 펼쳐 보이고 공감을 얻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요. 사실 여기까지도 도달하지 못하는 작가도 많고요. 그렇게 보면 앤드루 포터는 수다맨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 만한 작가는 아닌 듯합니다. 문체도 남성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중성적인 게 특징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하루키의 냄새가 나기도 하거든요.

수다맨 2015-12-12 14:04   좋아요 0 | URL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를 `어떻게` 보여주는가도 아주 중요하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과감히 실험을 감행하는 작가도 있는 반면에 병리적 현상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도 있는 법이지요. 무엇을 하든 간에 저는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작가`를 좋아하지,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한쪽에 가중치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하루키 역시도 (그동안 비판적으로 말한 적은 많지만) 저는 솔직히 깊이 존중합니다.
자꾸만 이런저런 일정이 생겨서 오늘도 답글을 늦게 달았네요. 말씀하신 앤드루 포터의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으니, 조만간 구입해서 읽으려고 합니다 ㅎㅎㅎ
 

나는 애초부터, 특정 소설책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부질없는 수고로움이라는 뜻도, 내가 보기에는 들이는 공로에 비해서 결실은 적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말에는 다분히 비아냥과 아쉬움이 깔려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책과 작가에 대한 불만을 거슬리다 생각했는지, '~밖에 볼 줄 모르는 늙은 독자'라고 비난을 먼저 내게 가했던 사람은 코르타사르님이다. 이 분은 나를 팔로우하고 있었다고 하던데, 그거야 나로선 알 길이 없다. 설사 알았건 몰랐건 간에, 님은 나를 먼저 조소하고, 그 정도 빈정거림은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그런데 나로선 책에 대한 불만을 마치 자기를 향한 불만처럼, 이해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사정이 그렇다면 (긴 설명까지는 덧붙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책이 왜 좋은지 애초부터 한두 마디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소설이 유사 현실을 만들고 있으나, 그것이 나에게 그다지 실감이 없으며 자신이 읽어온 텍스트에만 너무 얽매여 있다고 여겨서 짧고도 박한 평가를 했다. 물론 님은 이것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괜찮은 소설이란 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설사 빈정거림이 있을지라도) 할 말은 하셔야지, 내 취향이나 시선을 남에게 납득시키고 싶지는 않다고, 뭘 가르쳐 달라는 거냐고 하면서 '늙은 독자' 운운은 좀 오버 아닌가. 빈정거림을 듣는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왜 님에게 '먼저 까닭 없이'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나는 질병이란 말을 썼고, 그 다음에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폭력적 행위 정당화, IS라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에는 빈정거림만 남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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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오니 정말 신기하게도 집에 반오징어 하고 마침 어묵탕이 준비되어 있더군요. 주눅들지 마시고 앞으로도 주욱 솔직한 독설 가감없이 내품으십시오. 그게 수다맨 님의 장기입니디ㅏ.

수다맨 2015-12-05 10:11   좋아요 0 | URL
어제 진종일 밖에 있었던지라 오늘에 와서야 댓글을 다네요. 저도 아침부터 어묵탕에 소주가 생각나는군요.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다면, 저처럼 삐딱한 사람도 어디에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곰곰발님의 말씀,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ㅎㅎ

5DOKU 2015-12-04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마다 살아온 곳이 다르니 세계관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제가 참 재밌게 읽고 극찬을 했던 책을 누군가가 혹평하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씁쓸한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특히 <의인법>에 대한 수다맨님의 리뷰가 좀 더 가혹했던 게 사실이고 질병을 언급한 부분도 사람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걸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인 듯합니다. 만약 수다맨님께서 어떤 작품이 왜, 어떻게 나빴는지 짚어내지 않고 단지 혹평만 늘어놓는 식의 리뷰만 하셨다면 제가 수다맨님 블로그를 찾아 올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잖습니까. 저는 수다맨님이 그 송곳 같은 날카로움으로, 그리고 수다맨님만의 그 일관된 시선으로 작품을 논평하시는 게 좋아서 이곳을 찾습니다.
저분이 어떤 분인지는 제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어떠한 논리를 가지고 작품을 평가한다는 전제 하에서 저분의 발언은 수다맨님 말마따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그저 빈정거림에 그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뜬금없긴 하네요. 저분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굳이 IS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표현까지 꺼내 가면서까지 할 얘긴 아닌 듯합니다. 이런 표현의 남발은 도리어 진짜 IS와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을 무시하는 행위겠지요.

수다맨 2015-12-05 16:42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하루 늦게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제 첫발을 내딛은 사람에게 제가 너무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서른인 분이던데 날선 비판을 하기보다 미덕과 강점을 말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도 드네요.
하지만 100자평이라는 것은 사실, 세밀한 분석보다 즉각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 좀 더 부합하는 글쓰기 틀입니다. 그렇다면 앞뒤 조건을 따지기보다는 제가 이 글을 보면서 느꼈던 것을, 가감 없이 말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 작가가 이 글을 쓰느라 읽었던 책과 공부의 양을 `수고`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고와 상상은 제가 보기에는 문학이라는 틀에 갇힌 듯하며ㅡ이 소설에 나오는 단편들의 다수 화자들은 대체로 `쓰는 자`를 지향합니다ㅡ좀 더 두꺼운 삶의 실감과 실재를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유머와 재치도 저는 왠지 울림 없이, 공허하게 느껴지더군요. 달리 말하자면 그는 짜깁기의 명수를 자처하는 듯한데, 안타깝게도 그 짜깁기가 별다른 흥미를 저에게 전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독해력이 얕고 성마른지라 이 작가의 진가를 못 보았을 수도 있지요(저는 어쨌거나 이 작가가 대성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고픈 말을 100자평에 다 욱여넣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 규격은 상술했듯이 세밀함보다는 즉각성을 지향합니다. 결국에 저는 낮고도 야유 어린 평가를 내렀고, 주제넘게 너무 박하게 대우를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박함과, 제 생각의 짧음에 대해서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저 역시 길게 말해볼 용의가 있습니다. 빈정거림도 들을 수 있구요. 하지만 그 빈정거림에 일정한 논변이 없거나, 자극적인 표현만을 반복해서 쓰는 데 그친다면 저로선 할 말이 없습니다. 이틀 전의 싸움은 저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이 싸움을 종내에는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몰고 간 데에는 그분의 책임도 얼마큼 있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그분에게도 지금에 와서는 미안한 감정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맨 님, 이 참에 함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튼 이 소설 함 읽어봐야겠는데요.. ㅎㅎㅎ

수다맨 2015-12-06 01: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려면 이 책을 다시 한 번 정독해야 할 텐데,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는 않네요. 긴 글을 작성할 기회는 나중에 다시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외 2015-12-1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시의 말마따나 서로의 인생관이 너무나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100자평에는 형식상 감정적인 평가가 앞서기 마련이지만 수다맨님 서재에서 100자평 뒤에 이어지는 논변을 읽고 항상 도움받아왔던 저로서 앞으로도 님의 많은 논평 기대합니다.

수다맨 2015-12-11 10:51   좋아요 0 | URL
ㅎㅎ 어디 논평이랄 게 있나요. 그저 여기에 모인 글들은 독자의 주절거림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초라한 서재를 자주 찾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특정 책이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내 독서 역량이 낮고 감식안이 낙후된지라 책의 진가를 못 봤을 수도 있고, 반면에 작가의 내공이 높지 않아서 작품의 성취도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르타사르 님(나로서는 처음 뵙는 분이다)은 내가 자신의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다르지 않다고 평한다. 그런데 님은 (본인이 말씀하신) 폭력적 행위와 과연 얼마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차라리 이 책의 읽을만한 지점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얘기해 주었다면, 아무리 성마른 나라고 할지라도 일정한 공감대를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님이야말로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자라면 누구에게나 늙은 독자니, 이슬람 근본주의자니, IS와 같은 부정적 표현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것도 사사키 아타루라는 사상가(그런데 이 사람을 꼭 모셔와야 했나)까지 데려와서 말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님 역시 지금 독서 취향이 다른 누군가에게 악의적 칭호를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습고, 우습다. 내가 소세키의 한 구절을 따와서 지고지순의 문학적 가치인 양 떠받든다 하는데, 반대로 님이야말로 지금 작가와 저서를 최상단에 올려놓고, 감히 일개 늙은 독자 따위가 누구누구를 진단하느냐고 훈계조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로서는 IS라는 강도 높은 표현보다 이 모습이 더 희극적으로 보인다.

 

님이 쓴 글의 패턴을 보자면 텍스트는 신성한 것→ 오독되거나 비난받아서는 안 될 것→만일 오독하는 이가 있다면 늙고 무지한 부류→유명 사상가를 데려와서 악의적으로 비꼬기, 이렇게 보인다. 님은 내가 언어 폭력을 휘두른다고 말하지만 (댓글에 단 질병이란 표현은 나 역시 심했다고 생각하며 이것에 상처를 받았다면 송구하다는 말을 드린다) 님 역시 여과되지 않은 표현을 타인에게 사용하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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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

수다맨 2015-12-03 15:07   좋아요 2 | URL
http://blog.aladin.co.kr/jmisland
아래에 나온대로 어떤 책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100자평을 썼는데, 제 되도 않는 불만이 이분의 생각에 거슬렸나 봅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5:22   좋아요 0 | URL
오호..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ㅎㅎㅎㅎㅎㅎㅎ 오늘 유독 오징어에 땅콩을 씹고 싶은 날이네요.. ㅎㅎ

수다맨 2015-12-03 15:27   좋아요 0 | URL
날씨도 추운데,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괜찮지 않을까요 ㅎㅎ
시간이 있으시다면, 연말에 언제 한 번 뵙도록 하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참석하겠습니다.

수다맨 2015-12-03 16:17   좋아요 0 | URL
넵. 연말에 블로그에 댓글 남기겠습니다 ㅎㅎ
 
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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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소설이란 말에는 다분히 과장이 깔린듯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확인한 것은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문학밖에 없는, 그래서 다른 삶과 세계에 접속하지 못하고 텍스트의 분절과 조합만을 통해 실감 없는 유사 현실만을 만들려 애쓰는, 젊은 작가의 부질없는 수고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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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12-03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는 `문학서를 읽고 문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피로써 피를 씻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소설집은 그러한 소세키의 언명에서 과연 얼마만큼 벗어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별점을 네다섯 개씩 주는 사람들은 뭔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편집자 2016-01-04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첫 책이니 앞으로 좀 더 지켜봐주심 어떨까요?
기왕 책도 읽으셨는데 작가와의 만남 행사 오셔서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눠 보심 좋을 듯한데 어떠세요?
댓글 달아주심 초대하겠습니다.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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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와 명사를 기괴하게 결합시켜서 문장을 빚어 가는 글들의 모음이다. 요령부득의 인공적 산문이라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김훈만의 개성으로 봐주려 한다. 그의 신작 산문은 밥에의 예찬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점차 넘어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 김훈은, 제법 괜찮게 늙어가는 산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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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2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