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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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대가의 펜으로 써야 깊이가 확보되는 주제들(여자의 삶, 남녀의 이별 등)이 있다. 한트케는 연인이 떠난뒤 방랑을 거듭하는 한남자의 마음그늘과 충동적 정서를 꽉짜인 문체로 표현한다. 결국 이상적 재결합도, 파국적 사고도 아닌 희망적 결별로 마무리가 되는 서사는 현실적이면서, 탁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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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4-2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비슷한 시기에 쓰인 ‘소망 없는 불행(1972)‘이나, 훗날에 쓰인 ‘아이 이야기(1991)‘에 비하면 후반으로 갈수록 맥락이 부실하고, 난해하게 여겨지는 대목들이 출현한다. 해설자는 이러한 난해함을 일러서 문학적 깊이 추구에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가치라고 본 듯하나 나로서는 (장편을 쓰는 과정에서) 글쓴이의 집중력 저하와 피로감 증가에서 찾아온 결과가 아닐까 짐작된다. 그래서 별 하나를 깠다.

2018-04-26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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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집이후로 한책에 실렸던 모든작품들이 좋았던 경우는 이번이 두번째다. 실험적인 스타일을 자랑하건, 디테일의 무게감을 강조하건 인물의 ‘닫힌내부‘를 조망하면서도 타자라는 이름의 ‘열린외부‘에도 집중하는 작품들이 많다. 젊음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글들의 광도가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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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4-0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소설들에 대해서 거칠고 짤막한 주관적인 평을 달자면 다음과 같다
ㅡ 박민정 ‘세실, 주희‘: 좀 더 지적이고 젠더적인 21세기의 임철우
ㅡ 임성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지적 사기와 포장술과 돈지랄로 얼룩진 현대 예술의 내장
ㅡ 임현 ‘그들의 이해관계‘: 대의보다는 일리一理에 더 빚지고 있는 듯한 오늘의 윤리 의식
ㅡ 정영수 ‘더 인간적인 말‘: 현실적 사건 앞에 서면 무력하고 초라해지는 지적/논리적 언어들
ㅡ 김세희 ‘가만한 나날‘: 가치 생산의 노력이 기호 양산의 헛수고로 변질되는 순간
ㅡ 최정나 ‘가만한 나날‘: 가족이라는 이름의 끔찍하고 구린내 나는 공동체
ㅡ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와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날것의 문장으로 그려낸 성소수자들의 ‘진짜‘ 현실

기적인데요! 2018-04-0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의 글을 자주 챙겨봅니다만, 우리나라 문학, 더욱이 수상작품에 이렇게 상찬을 하시다니... 구매안할 수가 없겠네요.

p.s. 이번이 두번째면 첫번째는 책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수다맨 2018-04-05 10:15   좋아요 0 | URL
제 1회 이상문학상 수상집으로 대상작은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상 수상작보다도 우수상 수상작들(조세희의 ‘난쏘공‘,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선정 작품들 밀도와 무게감이 아주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이 책은 너무도 오래전에 출간된 것이어서 지금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十年寒窓 2018-04-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두번째라 하셔서, 1회 이상문학상과 2018 젊은 작가상 사이에 경우 하나가 더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님이 인정하는 수상작품집이라니 상당히 기대가 되네요.

수다맨 2018-04-05 11:28   좋아요 0 | URL
제가 인정한다고 해서 다른 분들도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ㅎㅎ 어쨌거나 근년에 읽었던 수상 작품집들 중에선 가장 월등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8-04-05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5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상의양식 2018-04-2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한번 댓글 단 이후 꾸준히 이 페이지를 방문하고 있는 팬(?)입니다 ㅎㅎㅎ 최근 젊은작가상 작품집은 실망스러운 작품이 많아 올해는 패스하려고 했는데...........무조건 사서 읽어야겠네요ㅋㅋㅋㅋ 수다맨님 혹시 김애란 ‘바깥은 여름‘은 어떻게 보셨는지 조심스럽게 의견 여쭈어도 될까요?????

수다맨 2018-04-27 10:03   좋아요 1 | URL
어디선가 ˝입동˝과 ˝침묵의 미래˝라는 단편만 우연히 읽어본 적이 있고 그 소설집 전체를 통독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김애란에 대한 저의 인상 비평을 말하자면 ‘시류성과 사회성을 담아내는 모범적인 단편을 쓰는 솜씨‘는 젊은 작가들 중에서 가히 일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저는 김애란의 소설을 어디까지나 ‘솜씨의 차원‘에서만 괜찮게 읽은 경우가 많을 뿐 ‘전율적 경지‘에 도달할 만큼의 작가적 저력을 느꼈던 적은 그다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김애란이 ‘괜찮은 작가‘인지, ‘좋은 작가‘인지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가 위대한 반열에 들만한 작가냐고 묻는다면 저는 답변을 주저할 것입니다.
김애란이 특정 작품 내에서 인물/주제/서사를 세공하는 솜씨는 분명히 탁발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김애란이 우리 삶의 균열적인 부분, 모순적인 지점, 부조리적 측면들을 집중적/저돌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때때로 평론가들이 좋아할 만한 웰메이드 소설을 창작하는 데 좀 더 중점을 둔다는, 이를테면 문창과 소설의 최고 완성본을 만드려는 데만 공력을 들인다는 인상을 받곤 합니다. 극언을 하자면 저는 조세희나 손창섭의 글에서 느꼈던 인간 내면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려는 불온한 시선과 극한적인 열정을, 김애란의 글에서 보았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상의양식 2018-04-27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아, 정말 공감합니다. 좋은 작가지만, 위대한 작가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씀도요ㅎ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바깥은 여름‘이 ‘비행운‘에 비해서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동시대 소설가들도 하나같이 바깥은 여름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ㅜㅜㅋㅋㅋ 김애란 외에도 김금희 황정은 최은영 김경욱 같은 한국 작가들과 필립 로스나 코맥 매카시, 부코스키, 존 윌리엄스 등등 외국 작가들에 대한 평도 아주 정확하신 것 같아 매번 크게 공감하고 갑니다 ㅎㅎㅎ 응원합니다^^

수다맨 2018-04-27 15:36   좋아요 0 | URL
이곳은 저의 사견을 올려놓는 조촐한 서재일뿐입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좋은 말씀 남겨주시니 저 또한 감사합니다.
 

 

 

 

 

 

 

 

 

 

 

 

 

 

"신문은 성직이 되는 대신 당파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네. 그리고 수단에서 장사가 되었어. 모든 장사나 마찬가지로 신념도 법도 없네. 모든 신문이 블롱드가 말한 것처럼 대중이 원하는 색깔의 말만을 파는 가게이지. 곱추들의 신문이 존재한다면, 그 신문은 아침저녁으로 곱추의 아름다움, 선의, 필요성 등을 증명할 것이네. 신문은 이제 여론을 계몽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거기에 영합하기 위한 것이네. 그래서 얼마간 시간이 가면, 모든 신문은 비굴하고, 위선적이고, 파렴치하고, 허위적이고, 살인적으로 될 것이네. 사상, 제도, 인간을 말살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꽃피어나게 될 것이네. 신문은 모든 이성적 존재의 특전을 지니게 될 거야...... 이런 도덕적인 혹은 부도덕적인 현상에 대해 나폴레옹은 국민의회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탁월한 말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집단 범죄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울 수 없다'라는 것이었네. 신문은 가장 잔혹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그 때문에 손이 더럽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ㅡ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 352~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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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6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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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발랄과 도발을 지향하던 이기호의 소설 역정도 중반기에 다다른 듯하다. 아마도 (레비나스를 의식해서)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의 허구를 고발하려 한듯한데 내용과 주제가 식상하다. 무엇보다 윤리자(작가본인)와 비윤리자(한정희)를 나누어 전자에 무게를 두려는 작의는 민망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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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3-0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서 감각과 글발이 쇠해질 수는 있다. 언제나 경쾌하고 재미진 문체로 글을 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내가 이기호의 작품에 아쉬움을 느꼈던 것은 작가를 여전히 윤리의 담지자로 여기면서, 공동의 윤리에 반하는 하나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집필 과정이 지나치게 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까지 17회를 이어온 황순원문학상 수상작들 중에서 내 기억에 뚜렷이 남은 작품은 하나다. 그것은 제 2회 수상작인 김원일의 ‘손풍금‘이다.
 

 

1. 희곡 작가인 배삼식은 십여 년 전에 연극계의 원로였던 故 장민호(1924~2012)와 故 백성희(1925~2016)의 연극 편력과 업계에 미친 공로를 기리고자 한 편의 희곡을 헌정했다. 그 작품이 '3월의 눈'이다. 

 

2. 노부부는 형편이 어려운 손자 내외를 위하여 평생토록 살았던 한옥을 팔고 요양원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연극의 줄거리는 이것이 전부이다. 작가는 이처럼 단순한 줄거리 안에서 우리 일상의 갖가지 세목들과, 변화하는 세속에 대한 나이 든 이들의 만감을 섬세한 필치로 형상화한다.

 

3. 무대에 설치된 한옥에는 화분, 장독대, 약탕관, 빨래판, 섬돌과 같은 물상들이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 관객들 눈에 띄는 것은 들보에 매달아 놓은 흰 끈이다. 거동이 어려운 노부부는 신을 신거나 벗을 때 흰 끈을 손으로 붙들고 몸의 균형을 잡는다. 일상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4. 팔순의 노부부는 오딧빛 툇마루에 앉아서 냉기와 온기가 섞인 삼월의 볕을 받으며 대화를 나눈다. 아내인 '이순'은 자신의 서툰 뜨개질과 남편의 머리 모양을 탓하고 남편인 '장오'는 나른한 표정으로 침묵을 하거나 가볍게 단답으로만 대꾸한다.

 

5. 다시 말하자면 이들의 대화에는 이른바 '필수적'이거나 '실용적'인 성격을 띤 부분이 없거나 드물다. 노부부는 의미와 쓸모가 엷은 얘기들(문풍지 바르는 법, 전쟁 통에 준치를 구해서 먹었던 기억, 겨울이면 아들이 눈을 쓸던 모습, 이발소 사장이 가게를 처분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풍문 등등)을 하는 데만 집중한다. 더러는 '이순'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종적을 감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장오'가 종주먹을 흔들며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이 연극에서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6. 누군가는 이 연극에 대해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정겨움을 담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리얼리즘적인 전통 내에 이 작품을 위치시켜서 그만한 위의와 경의를 부여하려 한다. 이러한 평가들은 모두 조리와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수차례 떠올렸다.

 

7.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은 다층적이고도 다면적인 의미를 지향하는 '열린' 텍스트이기에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여지를 가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고도를 기다리며"는 시간의 전방위적 공격에 버티고, 버티는 우리 인간들의 우습고도 서글픈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8. 시간은 무한하나 인간과 인공품은 유한하다. 사람은 언젠가 무덤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며 인공품은 (인간보다 수명이 더 길 수도 있으나) 본래의 모습을 잃어서 마모되고 해체되는 수순을 밟는다. 부언하면 '장오'는 하루가 지나면 요양원으로 가야 하고 한옥은 조만간 개발업자들의 손에 무너지게 된다.

 

9. "3월의 눈"은 시간의 공격에 버티는 방법을 두 가지로 보여준다. 하나는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러했듯이)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을 통하여 시간이 가하는 압박을 한시적으로나마 잊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부부는 다음 날이면 한옥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살아야 함에도 문풍지 바르는 법을 얘기한다. 또한, 그들은 노인의 머리 모양과 위생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당장은 구하기 어려운 생선(준치)의 맛도 품평한다. 말하자면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작품의 주된 내용(집이 헐리고 그 집의 거주자는 다른 곳으로 떠난다)과는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음에도, 역설적으로는 상관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효과를 낳는다. 즉, 이들은 조만간 도래할 착잡한 순간을 잊고, 견디고자 의미와 쓸모, 소통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기 자체'에 열성을 쏟는 것이다.

 

10. 그러나 '말하기'만으로 자기 마취적인 효과는 있어도 자기 치유적인 결과를 얻기란 어렵다.

 

11. 극의 말미에서 '장오'는 집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섭섭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어. 이젠 집을 비워줄 때가 된 게야. 그래도 이 집이 나보다 낫군. 흩어질 땐 흩어지더라도 뭐가 되도 된다네. 책상도 되구, 밥상도 되구.' 이 대목에서 시간의 공격에 버티는 두 번째 방법이 나온다. 그 방법은 인정과 달관의 자세로, 후손과 후세에 대해서 무조건적/영원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12. '장오'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손(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종적을 감춘 아들, 한옥을 팔아서 빚을 갚으려는 손자 등)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노부부의 주거지에 침입해서 이익을 챙기는 외부자들(대청의 마룻장을 뜯어가는 개발업자들, 관광객들에게 한옥을 보여주는 통장 등)을 탓하지 않는다. 부언하면 그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선악의 시선으로, 이분법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거부한다. 그는 한옥을 이루었던 재료들이 또 다른 편의품이 될 것이며, 한옥이 머물렀던 자리에 노인의 자취가 사라지더라도 그곳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마련되고 번성할 것임을 믿는다.

 

13. '장오'의 위와 같은 믿음은 허상과 오류에 기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세파와 노화에 지쳐서 크게 마음을 다치고는 '속 편한' 믿음으로 자신을 위안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장오'의 믿음은 노인의 마음바탕에서 비롯하는 '어떤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다. 시간의 공격을 받으면서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하여 모든 것들은 해체와 소멸의 경로를 따라간다, 그럼에도 인간과 그의 인공품 속에 깃든 '특유한 성질'은 다른 형태로 이월되어서 잠시나마 보존될 것이다, 이러한 이월과 보존의 지난한 연속적 과정'만큼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요컨대 3월의 눈은 시간의 공격성과 영원성에 버티는, 어느 초연한 노투사의 헛될지도 모를 기대와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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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8-03-14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3월의 눈>이 눈眼인가요 눈雪인가요. 제가 늙은이라 혹하며 읽었습니다.

˝이들은 조만간 도래할 착잡한 순간을 잊고, 견디고자 의미와 쓸모, 소통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기 자체‘에 열성을 쏟는 것이다 ˝

이 부분에서 들이대고 싶기도 하지만,

3월의 바람부는 오후에 좋은 글이네요.

수다맨 2018-03-15 09:54   좋아요 0 | URL
초원님,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눈은 아래 곰곰발님의 댓글에서 나오는, 하늘에서 내리는 그 눈이 맞습니다.
이 연극은 매해 3월이면 국립극단에서 했는데 최근 삼년 동안은 소식이 없다가 올해 2월부터 다시금 명동극장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감명 깊게 보았던 연극이어서, 알라딘 서재에 감상평을 몇 글자 성마르게 적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3-14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원 님, 雪입니다. 제가 속초에서 1년 살았는데 강원도 분들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강원도에서 폭설이 내리는 때는 12월이 아니라 3월이라고...

수다맨 2018-03-15 09:59   좋아요 0 | URL
저도 2년간 강원도 양구에서 군복무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3월에도 기운이 낮고 폭설이 내리더군요.
이 연극의 연출가인 손진책은 ‘3월의 눈은 내릴 때 그 모습이 찬란하나 땅에 떨어지면 가뭇없이 녹으며, 이는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다‘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코멘트에 크게 공감을 한 적이 있는데, 곰곰발님 댓글을 읽고 제 경험을 돌아보니 어쩌면 강원도나, 그보다 추운 지방에서 사는 분들은 연출가의 말에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