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 제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 스웨덴판
다니엘 알프레드손 감독, 미카엘 뉘크비스트 외 출연 / 버즈픽쳐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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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illennium - the film part3 - 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 Nest/ Luftslottet som sprangdes,Luftslottet som sprängdes, 2009

  감독 - 다니엘 알프레드슨

  배우 - 누미 라파스, 미카엘 뉘크비스트




  10부작이 되어야하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안타깝게 3부로 끝나버린 슬픈 작품. 리스베트와 미카엘이 파헤치는 사람들의 치부와 사회악 그리고 그런 자들이 벌을 받는 것을 더 보고 싶지만, 이번 작품으로 끝이 났다.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를 보는 순간에는 '이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영화가 짜임새가 허술한 것도 아니고, 배우들의 연기가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두 시간 이십분 가량의 상영시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영상물을 볼 때 내 한계는 한 시간 삼십분이다. 소설은 두 시간도 읽을 수 있는데 말이다.


  2부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은 리스베트. 그렇다고 이번 편에서 편하게 노느냐? 그렇지 않다. 2부 결말에서 그녀가 한 행동이 우리가 보기엔 정당방위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살인이었기에,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 가두려는 세력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숨기는 걸까?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미카엘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정부 도처에 은밀히 암약해있는 비밀 조직의 음모에 맞서는데…….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기적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많이 나빴다.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린 여자아이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의사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소녀를 유린했다. 그리고 그것이 발각 날까 두려워 정상인 소녀에게 정신병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그것도 행정부와 경찰은 물론이고 각계각층에? 무기밀매라든지 인신매매, 마약밀매, 폭력 등등을 저지르면서? 추악하다, 진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더니, 나쁜 짓도 해본 놈이 잘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걸 밝히려는 미카엘과 밀레니엄잡지사를 막으려고 압력을 가한다. 미카엘이나 리스베트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은 거의 한두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협박메일은 기본으로 미행, 가택습격에 무차별 총격까지. 그 뿐인가? 2부에서 나왔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여전히 리스베트를 노리고 있다.


  영화는 미카엘이 경찰 특별수사팀과 함께 비밀 조직 섹션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과 리스베트의 재판 과정 그리고 섹션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2부에서도 그랬지만, 각각의 사건들은 상당히 짜임새가 있고 빨리 진행된다.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게 하나로 모이면……. 너무도 긴 상영 시간이 문제인가 보다. 아니면 내 체질적인 문제일지도.


  보면서 생각하니, '벌집을 발로 찬 소녀'라는 제목과 영화 내용이 잘 맞아떨어졌다. 열 두 살이었던 리스베트는 벌집을 찼다. 그런데 그건 비어있는 게 아니라, 구석에 처박혀서 30년이 넘게 오랜 시간동안 묵은 벌집이었다.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오래된 벌들이 붕붕거리면서 주위를 더럽혔다. 그녀도 벌에 쏘이는 피해를 입었다. 누군가 그것을 치우고 깨끗이 청소를 하며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야했다. 그것을 해낸 것은 바로 미카엘을 비롯한 밀레니엄 잡지사의 직원들이었다. 물론 경찰도 같이 도왔지만.


  꼭 목숨을 걸라는 건 아니지만 언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권력이 부패하면 어떤 인권유린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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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아포리아 - 뻔한 도덕을 이기는 사유의 정거장
사토 야스쿠니 & 미조구치 고헤이 엮음, 김일방.이승연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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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뻔한 도덕을 이기는 사유의 정거장

  저자 - 사토 야스쿠니,미조구치 고헤이 공편




  '모럴 아포리아'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모럴 Moral은 도덕적이라는 뜻이고, 아포리아 aporia는 하나의 명제에 대해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그 진실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양쪽의 의견이 너무 팽팽해서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명제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역시 책도 그런 내용이었다.


  이 책은 특이하게 한 명이 다 저술하는 것이 아니라, 19명의 일본 교수들이 각각 한 개의 난제를 담당해서, 여러 가지 예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총19개의 도덕적 난제와 그에 대한 명제(여기서는 테제)와 반대 명제(여기서는 안티테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딱 잘라 말하지는 않는다. 읽는 사람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드라마로 따지면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간혹 어느 쪽에 더 힘을 준다고 적거나 현재 세계적으로 어떤 추세를 따르는지 덧붙이기도 한다.


  책에서 다룬 것들 중에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난제들이 있었다. 간혹 온라인 게시판이나 실제 생활에서도 다툼이 일어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거리들이다.


  예를 들면, 6장 '종의 보존인가, 아니면 인간의 삶인가'라는 명제가 있다. 이의 테제는 '모든 생물은 동등한 생존권을 가진다.'이고, 안티테제는 '인간 이외의 생물의 생존보다 인간의 생존 또는 이익이 우선한다.'이다. 이 문제는 8장 '생명은 어떤 경우라도 존중받아야 하는가?'와 묘하게 맞물리면서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의 테제는 '생명은 어떤 경우라도 존중받아야 한다.'이고, 안티테제는 '그렇지 않다.'이다.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면, 다른 생물의 동등한 생존권을 보장해야한다고 할 수도 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면서, 인간의 생존권만 우선한다면 말이 안 되지 않을까? 문득 개고기 논쟁이 떠올랐다.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무분별한 자연 훼손도 생각났다. 인간의 주거지와 농경지를 얻기 위해 다른 동물들의 주거지를 파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문제가 기억났다.


  또한 11장 '신앙은 시민생활을 넘어설 수 있는가'는 요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이다. 경전에 적힌 법과 인간의 법률이 충돌될 때, 어느 것을 따라야하는 건 문제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당연히 경전에 적힌 대로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이상 국가의 법을 따라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13장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가'도 예전부터 계속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고 한다면, 자살 방조죄 같은 것은 당연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아마 저자들은 이런 문제를 통해 개인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어느 쪽으로든지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해서, 남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기 주관을 갖는 인생을 살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서 논쟁을 해도 밀리지 않는 철학적 학문적인 생각의 배경을 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들과 연관 지어 읽으니까, 글이 조금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걸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느 대목은 도대체 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예를 들어서 쉽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냥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만 접근해서 난이도가 느껴졌다. 도덕적 사고란 어렵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좀 더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고, 사회적인 시야를 넓히며, 철학이나 사회사상 쪽으로 견문을 더 넓히면 그 때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지금은 반 정도밖에 받아들이지 못한 책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나온 명제들은 싸움나기 딱 좋은 것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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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안병기 감독, 장희진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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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안병기

  출연 - 고소영, 강성진, 장희진, 박하선



  만화가 강풀의 웹툰 ‘아파트’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만화가 모 포털 사이트에 연재될 당시에, 매주 업데이트되는 날짜를 기다리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랬으니 당연히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으로 영화를 접하게 된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여러 가지 위험부담을 안기 마련이다. 원작과 거의 똑같이 만들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원작을 제대로 잘 표현했다고 극찬을 받을 수도 있고, 영화감독이 원작의 인기에 숟가락만 얻는다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원작에 여러 변화를 주면, 감독의 창의력이 돋보인다고 좋은 평을 얻을 수가 있지만 역으로 원작을 훼손했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럼 이 영화는 어땠을까? 강풀의 웹툰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 원작을 이렇게…….’라고 화가 날 수 있다. 만화가 보여줬던 긴장감이나 아슬아슬함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 뼈대만 몇 개 차용한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요즘 음악에서 유행하는 샘플링을 했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물론 그것 말고도 아쉬운 점이 여러 개 있긴 하다.


  우선 영화의 대충 줄거리를 살펴보자. 고소영이 맡은 세진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자기가 하는 일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여성이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겨울날,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하는 여자를 눈앞에서 목격한다. 더군다나 그 여자는 세진을 붙잡고 같이 죽으려고 했다. 그 충격으로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게 된 세진은 급기야 죽은 여인의 환영까지 보게 된다.


  집에만 있게 된 그녀는 우연히 맞은편 아파트에서 매일 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밤 9시 56분, 아파트의 불이 갑자기 꺼지면 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또한 다리를 못 쓰는 고아 소녀 유연을 돌봐주는 맞은 편 아파트 사람들의 추악한 비밀도 알게 된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돌봐주는 것 같지만, 몰래 그녀를 학대하고 성적으로 유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주장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녀를 정신이 나간 여자로 취급할 뿐. 과연 그녀는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고 유연을 구해낼 수 있을까?


  투신자살한 여인이 세진의 집에서 배회하는 장면은 으스스했다. 소리도 그렇고 조마조마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은 흐음. 그 당시 한국 공포 영화계는 사다코앓이 중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모든 귀신들은 무조건 산발하고 꺾기 댄스. 거기다 등장할 때는 예외 없이 끼기긱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귀신들은 관절염이 심하거나 이를 가는 모양이다. 영화 ‘링 リング: The Ring, 1998’의 영향이 확실히 크긴 컸다. 그래서 으스스하지도, 오싹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딱 보자마자 ‘또 사다코네’라는 불만 섞인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왜 붉은 옷의 여인이 갑자기 동반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왜 세진의 집을 맴도는 지 이유가 궁금하다. 영화가 끝나갈 때까지 죽은 여인의 신원이라든지 사정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걸 맥거핀이라고 하던가? 그런 거라면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겠다.


  결말은 공포 영화의 흔한 법칙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바로 직전의 상황이 너무 뜬금없어 보여서 고민스럽다. 왜 세진이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자의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타의로 그런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아마 결말 장면으로 추측하건대, 타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연과 그녀를 둘러싼 아파트 주민들의 행위는 화가 났다. 뭐 그딴 XX들이 있는지, 아주 그냥! 그래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히키코모리를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비협조적인, 극도로 위험한 정신병이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도대체 왜 그런 설정을?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그냥 방구석에 처박혀서 공포에 질려 매일을 살아간 죄밖에 없는데? 차라리 대낮에 활보하고 다니는 아파트 주민이 더 위험한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파트가 기초 공사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내장 공사에 무리수를 둔 느낌이었다. 특히 마무리 인테리어는 대충 벽지를 바르고 만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움이 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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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화양연화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송정림 지음, 권아라 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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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저자 - 송정림




  포털 사이트의 사전에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말 뜻 그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가리키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지점을 의미한다고 나오고, 책에서는 그 중에서 특히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부제와 더불어 생각해보면,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보여줬던 여성들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저자는 마흔 무렵부터 이 책의 내용을 한 편씩 써내려갔다고 한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쯤의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그 시기를 넘겼을지, 그녀들의 인생과 시간을 훔쳐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행복한 중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접한 다른 여성들은 현실에서 살다간 사람도 있었고, 책이나 노래, 영화 또는 그림 속에서 살다간 존재도 있었다. 또는 순천 조계사처럼 저자가 느낀 묘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도 있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참 묘하다.


  그렇게 젊지도 않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 기혼자라면 아이들이 이제는 다 커서 품을 떠날 나이, 더불어 슬슬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때. 미혼자라면 이래저래 고민이 많을 때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도 들고, 주변의 친구들이 다 결혼을 해서 가끔은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기도 하고. 고민이 없는 나이가 있을 리 없겠지만, 노년을 생각해야하는 때이기에 마흔이라는 숫자는 불안정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여성들은 달랐다. 아니, 그녀들도 사실은 불안했으리라.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모든 것을 던졌다. 비록 결말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위기에 처한 상황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선택한 길에 망설이지 않았다. 불안함과 망설임마저 용기와 헌신으로 바꾸어버렸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불의에 맞서 싸웠다. 잊힌 여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마리 로랑생은 평생을 아폴리네르와의 사랑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펄 벅은 진정으로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과가 그들이 원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그들은 그것마저 기꺼이 감당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그 때문에 아파하고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릴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독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나보다. 고독을 친구 삼을 줄 알면, 연륜이 쌓여가도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담담한 어조로 충고하는지도 모르겠다. -p.238


  하지만 그들은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던 그 순간이, 그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라 칼라스와 에디트 피아프는 죽기 직전까지 노래할 수 있었고, 빌리 홀리데이는 그 슬픔마저 목소리에 담았다.


  꼭 젊을 때만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젊을 때가 제일 예뻐 보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자신만의 멋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름답다는 것이 꼭 외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링컨의 말했듯, 마흔 이후의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보여준다고 하니까.


  이 책은 그런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때 존재한다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삶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다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때라고.


  타인에게 내 인생을 맡기고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꿈이 아니라 환상이었습니다. -p.75


  순수란 거짓이 없다는 뜻이고 책임을 질 줄 안다는 뜻입니다. 순수는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순수는 더 가치 있습니다. -p.121


  이 책의 그림은 어딘지 글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화려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묘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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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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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저자 - 이주은




  벨 에포크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책을 대충 휘리릭 넘겨보니 외국 명화가 많이 들어있어서, ‘미술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벨 에포크란, ‘belle epoque, 좋은 시대’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대략 1차 세계 대전까지 파리의 평화로운 시대 그리고 그 문화를 회고하여 사용되는 단어라고 한다. 꼭 프랑스 파리만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문화를 가지면 다 해당하는 것 같다.


  그럼 이 책은 그 시대의 그림을 통해 문화를 설명하는 책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 시대의 그림 얘기를 하긴 한다. 동시에 그 당시 유행하던 화풍이나 유명인 얘기라든지 커다란 사건 그리고 문학작품도 다룬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저자는 거기에 현대를 덧붙인다.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과 현실, 이상을 백 년 전인 20세기 문화와 연결시킨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거의 열 번 넘게 바뀌었을 기간인데도, 두 시대의 연결은 자연스럽기만 하다.




  도리어 어떤 부분에서는 그 때가 더 화려하고 낭만적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처럼 치열하게 오로지 한가지만을 위해 무작정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세기말이 다가오면서 느꼈던 기대와 불안과 초조, 하지만 세기 초가 되어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삶, 이런 상반된 현실이 준 뭔지 모를 상실감과 허무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욕망까지. 두 시대는 다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닮아 있었다.


  저자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장과 그 시대의 화려하면서 감각적인 그림을 나란히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을이 떠올랐다. 신기한 일이다. 그림의 색감만 보면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화사한 봄인데, 쓸쓸한 분위기의 글과 함께 읽으니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을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시대를 추억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 똑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사람의 본성은 세대가 지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럼 인류는 그동안 내적이건 외적이건 진화가 아닌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는 걸까? 약간의 변화만 덧붙이고?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추측과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처음에는 옛 시대를 회상하는, 단순한 그림이 곁들어진 사적인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간단한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꽤 마음에 들었다. 요즘 나이 들면서 감수성이 메말랐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도 권해줘야겠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는 순수함이란, 하나를 포기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미덕이다. 아무 욕망에도 눈뜨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눈을 떴음에도 그것에 마음을 주지 않았기에 순수한 것이다. -p.51 소설 ‘순수의 시대’에 대한 얘기 중에서


  결국 진실과 기억 사이의 간극은 허구로 꾸며지게 된다. 허구는 공백이 아니라 경이로움이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들은 대부분이 진실이 아닌 허구의 영역 안에 있다. -p.62


  살다보면 기쁜 때도 있고 슬픔에 빠지는 때도 있지만, 그 순간들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살처럼 결코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그러다가 언젠가 어떻게든 모이고 합쳐져 하나의 삶을 이룬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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