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분노
조나단 리브스만 감독, 리암 니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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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rath of the Titans, 2012

  감독 - 조나단 리브스만

  출연 - 샘 워싱턴, 랄프 파인즈, 리암 니슨, 로자먼드 파이크



  얼마 전에 올린 ‘타이탄’의 속편이다. 영화는 제우스의 아들 자랑으로 시작한다. 자기 아들이 크라켄을 물리쳐서 인간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괴물을 보내놓고, 아들이 물리쳤다고 뿌듯한 감정을 섞어 말하는 걸 보면서 기가 찼다. 아들 바보가 따로 없다.


  지난 편의 영웅 페르세우스는 부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어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제우스가 찾아온다. 인간들이 신에게 기도하지 않으면 신은 힘을 잃고, 모든 것이 신들이 등장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는 제우스는 말한다. 그렇게 되면 봉인시켜두었던 괴물들이 다 풀려나고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기에, 신들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그는 아들을 설득한다.


  한편 자신을 속여 지하 세계를 다스리게 한 제우스에게 여전히 화가 나있는 하데스는 함정을 판다. 제우스의 아들인 아레스를 꼬여서 아버지를 배신하게 만든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쓰러지자 세상에는 온갖 이변이 속출한다. 그동안 신의 힘으로 억눌려있던 괴물들이 출몰하여, 인간을 공격한다. 제우스를 구하고 크로노스가 봉인에서 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을 또 한 번 구하기 위해 페르세우스는 지난번에 구해줬던 안드로메다 여왕과 포세이돈의 인간 아들과 팀을 이룬다. 파티원이 다 모였으면 레어 아이템 장착은 기본! 이제 인류의 운명이 걸린 대 전쟁이 시작된다.


  역시 CG는 뛰어난 영화였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이제, 머리가 두 개 달린 새라든지 사이클롭스나 미노타우르스같은 상상 속의 괴물들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또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대형 신전이라든지 크로노스가 갇혀있는 지하 미로는 진짜 실감나게 구현했다. 와, 진짜 멋졌다. 대박!


  하지만 역시 스토리나 그 진행은 부실했다. 인간들이 더 이상 믿어주지 않아서 힘을 잃은 신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인간 세계에 뿌린 반인반신의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어쩌면 이제는 사라져버린 신화시대를 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신이란 인간의 믿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은유적인 표현일지도 모르고.


  하여간 전반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왜?’라는 물음이 계속 나왔다.


  왜 아레스가 갑자기 반인반신 동생 페르세우스에게 질투를 느껴 아버지 제우스를 배신했는지 정확하게 나오지도 않는다. 그 질투심이 영화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의 중심인데,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제우스가 대놓고 편애하는 장면도 없었는데 말이다. 어차피 신에게 아버지의 정이란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 가족 관계를 그렇게 중시하는 놈이 형수인 아프로디테와 왜 불륜을 저질렀을까?


  아, 하긴 그 집안이 원래 아버지 뒤통수를 치는 게 전통이긴 하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뒤통수를,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뒤통수를 쳤다. 그러니 아레스가 제우수를 배신하는 건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는 성스러운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왜 다른 신들은 등장하지 않는 걸까? 제우스가 사라지면 언제나 뒤를 쫓는 헤라는 왜 이번에 나타나지 않은 걸까? 설마 바람만 피던 남편이 처참하게 당하는 꼴을 고소하다고 보고 있던 걸까? 왜 신이라면서 결국엔 육탄전을 벌이는 거지? 능력은 어따 갖다 버리고? 페르세우스 아들은 언제 저기에 있었지? 누가 불렀지?


  그리고 영화 내내 원기옥을 모으던 크로노스는……. 왜 나왔을까? 최종보스가 분명한데 왜?


  1편과 마찬가지로 화면만 멋진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크로노스는 화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뜨거운 열로 가득한 그는 지하 깊은 곳에 갇혀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화산에서는 연기와 불길이 튀어나온다. 지상으로 나온 그의 손과 발이 닿는 곳은 파괴되고 녹아버린다. 그러면 크로노스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자연에 대항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이겨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 자연도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그린 영화인가보다. 하지만 그것을 이룬 것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반신반인이었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모 시장님의…….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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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니스의 비밀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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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Secret of Chimneys, 1925

  작가 - 아가사 크리스티



  이번 편은 배틀 총경이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조연으로 묵묵히 뒤에서 증거를 모으고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살펴보고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가 아는 사실을 독자가 모를 때도 있다. 대신 앤터니 케이드라는 청년이 등장해서 모든 사건 현장을 들쑤시고 다닌다.


  동부유럽 헤르초슬로바키아라는 작은 왕국의 귀족이 사망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자서전 원고를 한 남자에게 전해주면서, 출판사로 갖다달라고 부탁을 한다. 친구 대신 원고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앤터니 케이드. 하지만 그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원고를 내놓으라고 협박을 한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원고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사건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뜻밖에도 그곳에는 선왕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왕실의 보석과 후계자로 지목된 왕자의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 강도와 사라진 또 하나의 왕자, 아름답고 총명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지적이면서 아름다운 여인과 사라진 유일한 후계자 그리고 유쾌하고 호기심 많은 건장한 청년. 이 조합이면 한 편의 로맨스가 나오는 건 당연지사. 거기다 위험한 상황에서 맺어진 인연이라면 더더욱 운명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추리 소설이지만 거의 매 편마다 커플을 만들어내는 크리스티라면 이런 좋은 소재를 놓칠 리가 없다. 그러니까 둘이 커플 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이 책은 추리가 주인 추리 소설이기에, 로맨스 소설의 정석대로 밀당이 나오고 서로 오해하고 그런 과정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막판에 둘이 좋아하는 걸 보면, 얘들이 언제 이런 정도의 감정을 가졌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하라는 사건 수사는 안 하고 연애질만 했나보다.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책을 보면 용의자는 금방 추릴 수 있다. 음, 초반에 너무 쉽게 혐의가 풀리는 사람을 의심하면 된다고 힌트를 살짝 던져본다. 그래도 뜯어보면 의심 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슨 비밀들이 그리도 많은지. 서로 숨기고 의심하고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자기가 가진 굴이 발각 날까 두려워하는 다람쥐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다람쥐는 귀엽기라도 하지,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었다.


  결말 부분에서 앤터니 케이드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은 반칙이라고 하고 싶다. 물론 그 전에 힌트를 어마어마하게 던져주긴 했지만 말이다.


  아쉬운 부분. 첫 장을 열자마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 명의 땀으로 목욕한 듯한 남자들의 얼굴’. 그런데 처음 읽을 때는 의미가 확실히 와 닿지 않는다. 남자들이 각각 세 명이 흘릴 정도의 땀을 얼굴에 흘렸다는 건지……. 뒤의 문장까지 읽으면 남자 세 명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땀으로 목욕한 듯한 세 명의 남자들 얼굴’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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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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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onside'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 de'cadence (1734년)

  부제 -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저자 - 샤를 드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라니! 예전에 학교 다닐 적에 책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났다. 그 당시는 그냥 무조건 외울 대상의 하나로, 책에 적힌 하나의 단어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가 나에게 다가와 ‘어서와, 내 책은 처음이지?’하면서 말을 건네는 순간 그는 의미 있는 이름이 되었다. 그냥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예전에 살아 숨 쉬었던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그가 저술한 것으로, 로마가 어떻게 세력을 확장하고 번영을 누렸으며 어떤 식으로 몰락해갔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부제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로마의 번영이 몰락의 시초라고 주장한다.


  특이한 관점이다. 대개 한 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것을 보면 번영 후부터 몰락의 원인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그 나라가 융성할 때부터를 시초로 본다.


  하긴 무척이나 잘 살던 시기가 지나가면 쇠퇴기가 온다. 그건 어느 나라건 비슷했다. 대제라 불리는 왕이 영토를 넓히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의 후계자들이 다툼을 벌이면서 나라를 조각내고 결국은 망한다. 음, 그렇다면 국가의 몰락 시기를 번영 때로 잡은 몽테스키외의 관점이 더 타당할지 모르겠다.


  로마가 세력을 넓히는 과정을 읽으면서, 참으로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저렇게 상대를 속이고 자의적으로 조약을 해석하며 뒤통수를 치는 걸까? 그런데 다른 나라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로마에게 점령당하는 나라들을 보니, 참 어수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도 모르는 건가? 아니, 이런 상황에서는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로마의 정치가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신뢰라 신용 같은 건 애초에 없던 모양이다. 오직 그들에게 있는 것은 자기 나라의 부국강병뿐!


  로마가 서서히 망해가는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문득 생각나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역사를 왜곡시키는 걸로 모자라, 어떤 부분은 잊으라고 어린 세대를 교육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그 나라가 로마처럼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도 아니다. 하아, 그 나라가 어찌될지 걱정된다. 이민을 떠나지 않는 이상,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곳이니 말이다.


  로마 민중은 이제 더 이상 국사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대다수는 해방 노예이거나 직업도 없이 국고를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하여, 느끼는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무능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치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처럼 애통해하면서 나약한 자신들의 처지를 비통해했다. -p.206

  우리가 평민이라 부르는 로마 민중은 가장 악랄한 황제들조차 증오하지 않았다. 민중은 권력을 잃고 난 뒤 더 이상 전쟁에 몰두할 일도 없어졌고, 결국 그 어떤 민족보다 비열한 처지로 추락해버렸다. (중략) 그들은 각종 시합과 구경거리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줄 호민관도, 또 정무관을 선출할 일도 없어지자 이런 쓸데없는 오락거리만이 중요해졌고, 나태함 속에서 기호만 날로 높아졌다. -p.212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다. 로마라는 글자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몇몇 상황을 현대적으로 고치면……. 문득 삼십여 년 전부터 유행한 3S 정책이 생각난다.


  그나저나 콘스탄티노플의 민중이 두 개의 당파로 나뉘어져 싸웠다는 대목에서는 웃어버렸다. 청색당과 녹색당으로 나뉜 이유가 어느 배우를 더 좋아하는가에서 비롯되었다니! 그 결과 제국의 모든 도시가 두 파로 나뉘어 경쟁했고, 유스티니아누스가 청색당을 지지해서 편애하는 바람에 갈등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동로마의 분열이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아니,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하지만 지금도 가끔 벌어진다. 전 국민이 열성적으로 하진 않지만, 아이돌 팬들끼리는 싸우긴 한다. 음, 그런 거였구나.


  돌고 돌아오는 것은 부메랑이나 패션만이 아니다. 역사도 그러하다. 부메랑은 잘못 받으면 던진 사람 손만 아프고, 패션은 따르지 않아도 개성이니까 넘길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를 잘못 다루면 미래가 사라지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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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상처 떠나보내기 - 행복을 부르는 좋은 엄마의 조건
재스민 리 코리 지음, 김세영 옮김 / 소울메이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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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Emotionally Absent Mother (2010년)

  부제 - 행복을 부르는 좋은 엄마의 조건

  저자 - 재스민 리 코리



  제목만 봤을 때는, 상처받은 엄마를 자식들이 도와주는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엄마의 상처니까, 당연히 상처받은 사람은 엄마가 아닐까? 그런데 조금 읽다가 ‘설마 이거 엄마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의 얘기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읽고 확신했다. 이 책은 엄마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해가는 치유의 과정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엄마의 상처’가 아니라,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두 개의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어느 카페의 댓글에서 본 것인데, ‘운전도 면허가 필요하듯이 부모도 면허를 줘야 할 거 같아요.’라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가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인데, ‘너도 나중에 결혼해서 너 같은 자식 낳아보면 알 거다.’였다.


  부모가 되려면 자격증을 줘야한다는 말이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부모, 특히 엄마가 어린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아이는 스스로 혼자 크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그들의 행동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롤 모델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허우적대면서 우울해하고 아이를 과보호하거나 반대로 방치한다면, 아이들은 적절하고 올바른 역할을 익힐 수가 없을 것이다.


  책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적혀있다. 무관심해서 아이를 방치하거나, 신경질적으로 아기를 대하거나, 너무 과보호를 한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가 나온다. 애정결핍을 느낀다거나,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기도 하고, 욕구 불만으로 화난 상태로 자란다고 적혀있다. 또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성격이 될 수도 있다고도 한다. 물론 엄마와의 관계도 좋지 않고 말이다.


  이건 엄마가 자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빚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가 되거나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이를 기르려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받은 사람만 부모가 돼야 한다는 말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은 부모가 제대로 아이를 기르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정부에서 강제로 입양을 시키는 제도가 있나보다. 무관심에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친부모보다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양부모가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긴 가장 상처를 크게 주는 관계는 친구도 지인도 아닌,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타인은 아주 개념이 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서 나를 대한다. 나를 마구 대하는 사람들은 인연을 끊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가족은 그럴 수가 없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구보다 가깝다는 이유로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제일 오래 흔적을 남기고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며 엄마와 화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다 그런 게 아니라, 일부가 그렇고 또 나머지는 화해는커녕 더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고 적혀있다.


  화해를 하는 경우는, 아마 그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너 같은 자식 낳아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음, 그러면 자식을 낳지 않으면 절대로 엄마와 화해를 할 수 없는 걸까?


  어쩌면 엄마와 화해를 한다는 건 엄마를 이해한다는 말도 되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엄마와 얘기를 좀 더 자주 많이 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왜 엄마는 나에게 이러는 걸까라고 불만이 있었다. 분가한 오빠와 동생만 언제나 챙기고, 같이 사는 난 뒷전인 거 같았다. 거기다 자라면서 사랑한다는 말이나 포옹을 받은 기억도 없다. 그런데 손자들에게는 아주 지겹도록 해주신다. 심지어 뽀뽀까지! 샘나게. 아, 조카에게 시샘하는 고모라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엄마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난 또 성격이 다르니까 원하는 것도 반응하는 것도 달랐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를 대하는 게 편해졌다.


  음, 이 책은 그렇다고 엄마가 아이에게 전적으로 매달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엄마에겐 엄마의 삶이 있다. 그걸 희생하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기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라는 말이다. 엄마라고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희생할 이유는 없다. 만약 그러라고 하면, 그건 엄마의 인생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부모자식간의 관계에서 사랑은 쏙 빠지고 의무감만 남는 건 그리 좋다고 여겨지지 않으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취급받은 대로 자신을 대하는 경향이 있다. -p.317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돌보면 스스로에게 “나는 너에게 관심이 많아. 너는 소중하거든.”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p.318


  그런데 아빠의 존재감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아빠에 대한 건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성장에 아빠가 주는 영향은 없다는 건가? 궁금해졌다. 설마 2권으로 ‘아빠의 상처 떠나보내기’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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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찍다 - 여행하는 사진가 케이채의 사진과 이야기
케이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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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 - 여행하는 사진가 케이채의 사진과 이야기

  저자 - 케이채

  사진 - 케이채



  저자의 이름을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외국인인가? 하지만 표지를 넘기고 나타난 저자 약력을 보고는 웃어버렸다. K. Chae. 아, 그런 의미였구나.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담겨있다. 그 사진을 찍을 때 상황은 어땠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찍은 후에는 어떤 느낌과 감동을 받았는지 등등. 별다른 미사여구나 수식어 없이,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그게 또 괜찮은 조합이었다. 하긴 멋진 경치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말을 걸면 분명 귀찮을 것이다. 게다가 금방 끝나는 얘기가 아니라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진다면……. 음, 그래서 설명이 간략하게 붙어있거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한 다음에 사진을 보여주는 편집을 취한 것이 구나라고 나름 생각했다.




  몇몇 사진들은 ‘와!’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기도 하고, ‘혹시 그림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감이 멋진 작품들도 있었다. 특히 책 표지로도 쓰인 사진은 처음에는 간혹 인터넷에 올라오는 실사 같은 그림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또한 사진을 먼저 찍기 시작한 사람으로 앞으로 찍으려는 사람에게 당부하는 글도 중간에 들어있다. 렌즈를 비싼 것으로 쓴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지 미리 구상하고, 그 화면을 잡기 위해 철저한 사전답사와 끈기 있게 기다려야한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하긴 한석봉 어머니도 불을 끄고도 떡을 고르게 써실 정도로 달인이셨다. 꼭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달인이 되려면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그것을 이루려면 어떤 방법을 택해야할지 판단해야할 것이다. 의욕과 노력 그리고 끈기는 필수이고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진은 두 페이지에 걸쳐서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면 결정적인 포인트, 그러니까 저자가 사진에서 말하고 싶은 중요 부분이 접히는 바람에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특히 ‘라파엘 트레호 복싱장에서’ 찍은 사진은 저자의 설명을 보고 소년이 어디 있냐고 한참 찾다가, 설마 하는 느낌에 책을 쫙 펴니 그제야 보였다. 그런 부분은 아주 많이 아쉬웠다.


처음엔 소년이 어디있는지 한참 헤멨다.



  오타 발견! 212페이지. 두 번째 문단 네 번째 줄. ‘동얀인이라니!’는 ‘동양인이라니!’가 맞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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