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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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長い長い殺人, 1992

  작가 - 미야베 미유키







  열 한 개의 이야기가 모여서 하나의 사건을 이루는, 연작 형식의 소설이다. 이야기는 열 한 개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는 모두 열 개다. 음? 사람이 아니라 존재라고 하고 열 명이 아니라 열 개라 써놓은 것을 보고, 드디어 이 사람이 맞춤법은 물론이거니와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적는 것이 맞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지갑’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열 한 개인데 왜 지갑은 열 개냐면, 한 지갑이 두 번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과 마무리를 맡고 있으니, 지갑계의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



  한 남자가 사망한다. 처음에는 사고사일까 했지만, 곧 살인 사건일 가능성이 대두된다. 이후, 관련된 사람들의 지갑이 각자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서술한다. 『형사의 지갑』은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공갈꾼의 지갑』은 그 사건이 확실히 살인이라는 증거를, 『소년의 지갑』은 새로운 희생자의 등장을, 『탐정의 지갑』은 새로운 희생자와 처음의 희생자의 관계를, 『목격자의 지갑』은 점점 오리무중으로 흘러가는 사건을, 『죽은 이의 지갑』은 새로운 가능성의 제기를, 『옛 친구의 지갑』은 범인의 심리를, 『증인의 지갑』은 갑작스런 반전을, 『부하의 지갑』은 새로운 증거를, 『범인의 지갑』은 사건의 마무리를, 그리고 『다시, 형사의 지갑』은 사건의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갑이라는 것이 원래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이기에, 보는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듣는 것에서도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었다. 느낀 것이야 뭐 주인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사건의 대략적인 전개와 형사와 탐정의 초조함, 소년의 근심이 잘 느껴졌다. 거기다 범인의 지갑을 통해서는 범인의 심리까지 제대로 전달되었다. 지갑이 상당히 관찰력이 좋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모양이다.



  보험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희생자로 삼는, 무척이나 비정한 범죄이다. 대부분의 보험금 수령자가 자식이나 배우자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타인을 해치는 것도 악질이지만, 자신의 혈육을 돈 때문에 해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악질이다. 이 책의 범인은, 돈 때문에 배우자를 제거했다. 사실 돈 때문에 상대를 골랐으니, 애정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진짜 최악의 인간들이다. 상대는 진심이었는데!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지만, 그러고 싶을까? 돈이 없어서 굶는 것도 아니고, 빚쟁이에 쫓기는 것도 아니면서! 책을 읽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을 다룬 책으로는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黑い家, 1997’이 있다. 그 책의 범인은 차갑고 음울하며 생계가 어려운,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범인은 여유 있고 타인보다 자기들이 뛰어나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이코패스 느낌이었다. 똑같이 일반인과는 다른 심성을 가졌는데, 하나는 음침하고 다른 하나는 밝은 느낌? 솔직히 우울하고 음침하면 사람들이 은근슬쩍 피하게 되는데, 밝고 자신만만하고 대인관계가 좋으면 사람들이 은연중에 믿게 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런 위험한 사람들을 지갑의 시점으로 바라본 것이 독특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거리를 갖고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탐정이나 형사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어쩐지 감정 이입이 돼서 무척이나 부들부들거렸을 것이다. 지갑을 서술자로 선정한 것은 작가의 훌륭한 선택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지갑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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