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녹색 바람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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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過ぎ行く風はみどり色

   작가 - 구라치 준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선배 시리즈라고 하니 어쩐지 긴 생머리의 눈이 큰 소녀가 수줍은 얼굴로, 시니컬하게 생긴 안경 낀 남학생에게 ‘선배…….’라며 말을 거는 장면이 연상 되겠지만! 불행히도 여기에는 긴 생머리의 수줍은 얼굴을 한 소녀나 안경 낀 소년은 등장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학원탐정물도 아니다. 대신 너무도 발랄한 여고생이 등장할 뿐이다.



  호조 가문의 가주인 ‘효마’는 오래 전에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영매를 불러들인다. 그런 그를 못마땅해 한 딸은 초심리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을 불러들이고, 두 세력은 충돌을 일으킨다. 결국 모두가 다 참관하는 강령회를 열기로 결정한 날, 효마가 살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사망한 시간에, 집을 드나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강령술을 통해 죽은 효마의 혼을 부르겠다던 영매마저 강령회 도중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모든 사람이 용의자이지만, 모두가 다 알리바이가 있는 상황! 도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두 사람을 살해했을까? 효마의 손자인 ‘세이치’는 알고 지내는 대학 선배 ‘네코마루’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책은 500쪽이 넘는 꽤 두툼한 두께였는데, 의외로 한 번 손에 잡으니 놓을 수 가 없었다. 영혼을 믿는 영매와 과학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는 연구원의 대결이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영매가 중간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대결은 맥없이 끝났지만 말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가운데 집안에는 불길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으니, 무승부라고 해야 하는 걸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사촌인 ‘세이치’와 ‘사에코’ 두 사람이다. 세이치는 집안을 이으라는 할아버지와 싸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다가 10년 만에 본가로 돌아온다. 공교롭게도 그가 돌아온 날 할아버지가 살해당해,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사에코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자신은 장애를 얻는다. 할아버지인 효마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데, 이번 사건 전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사에코 부분은 거의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한 내용이었고, 세이치 부분은 사건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거의 후반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이건 반칙이잖아!’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낌새가 없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힌트라니, 이건 좀 너무했다. 그 때문에 내 추측은 몽땅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히잉, 너무해! 앞부분에 암시가 있었는데 내가 놓친 걸까? 결정적인 그 힌트를 바탕으로 한 사건의 진상은 무척이나 정교했다. 그걸 착안해낸 범인도 놀라웠고, 그걸 밝혀낸 네코마루도 굉장했다. 솔직히 선배 시리즈라는 걸 몰랐다면, 주인공이 세이치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네코마루의 활약은 적었다. 첫 등장은 뭐랄까, 그냥 오지랖 넓고 장난끼 많은 아는 사람 정도?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는 아주 화려하게 모든 것을 장악하며 존재감을 내뿜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수만큼 지켜야 하는 가치나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 역시 다양하다. 그래서 법과 도덕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지키고 존중해야 할 가치와 경계선은 존재하니 말이다. 적어도 이건 서로 존중하고 지켜주자는 약속 같은 것이다. 범죄는 그걸 지키지 못해서 일어나는 법이다. 내 가치가 중요하면, 타인의 가치 역시 존중해야 한다. 이 책은 그걸 넘어서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 했기에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지키려고 했고, 누군가는 어기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 살인은 슬프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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