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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원제 - 戦場のコックたち, 2015
작가 - 후카미도리 노와키
잡화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과 요리 실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할머니, 누나와 여동생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 사이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팀’.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 소식은 그뿐만 아니라 마을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팀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원 입대한다. 2년간의 훈련 뒤에, 그는 조리병으로 차출되어, ‘에드’, ‘디에고’, ‘라이너스’와 함께 1944년 노르망디로 향하는데…….
책은 개그 캐릭터도 없고 코믹한 내용이 잔뜩 들은 것도 아닌데, 술술 읽혔다. 비록 팀의 첫 전장이 노르망디 전투라 처음부터 죽은 사람들을 등장하지만, 처음은 그래도 약간은 가벼운 느낌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가 독일로 향해 진군하면 할수록 그가 겪는 사건들은 무겁고 무서워졌다. 유령이 나오거나 연쇄 살인마가 나와서 무서운 게 아니라,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전우들이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상황이 무서웠다. 한발자국만 옆으로 더 나갔으면 적의 사격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 오싹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팀을 비롯한 부대원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전쟁만 아니었으면, 인간과 사회를 믿고 삶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청년들이 상대를 증오하고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워하거나 타락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누구에게 그 책임을 떠맡겨야 할지 모르겠다. 책에 나온 인물의 말을 빌자면, 이 모든 일을 시작한 히틀러와 그 부하들? 아니면 저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독일군들? 그것도 아니면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 국민들?
이 책은 어쩌면 전쟁터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조리병들의 사건 일지라기보다는, 열아홉 살 된 소년이 전쟁터라는 참혹한 현장에서 성장하는 소설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가 맞닥뜨린 다섯 개의 사건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했는지 알고 나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들이었다. 가족과 마을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팀은 바깥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다양한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갖고 자란 여러 전우들과 대화를 하면서, 점점 변화한다. 때로는 고뇌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성장한다. 책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섯 개의 사건들은 미스터리 물답게 반전도 갖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은 진짜 그럴 줄 몰랐다. 앞에서 무심코 넘겼던 대사 하나가 그런 복선을 갖고 있었다니…….
그런데 이 책의 진정한 반전은 내용에 있는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다 읽고 작가가 1983년생인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와 동시에, 중간에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던 대목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미국인이 쓴 ‘그 시대에는 미국이나 독일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와 일본인이 쓴 ‘그 시대에는 미국이나 독일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같은 문장이지만, 어쩐지 느낌이 다르다. 또한 미국인이 적은 미군의 점령지에서의 여러 행위와 일본인이 적은 미군의 점령지에서의 똑같은 행위 역시 분위기가 다르게 다가온다. 이건 아마도 내가 일본과 미국은 다른 시선으로 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독일군을 몰아낸 미군을 환영했다가, 미군이 후퇴하는 바람에 돌아온 독일군에 의해 더 혹독한 처분을 받게 된 마을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군이 후퇴하자 독일에 부역했던 사람들을 자체적으로 처벌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한국은 어땠더라?
군대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봐도, 무척이나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나저나 분말달걀이 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