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마저도 코니 윌리스 걸작선 2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원제 - The Best of Connie Willis, 2013

   작가 - 코니 윌리스






  작가 소개를 보면 ‘SF계의 수다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처음 그 단어를 봤을 때, 의아했다. 원래 소설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열심히 얘기하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작가들은 다 수다쟁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를 읽는 순간, 왜 그녀를 저렇게 부르는지 한 번에 이해가 갔다. 그 때의 심정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친구에게 얘기하는 투로 말해보자면 ‘내가 어떤 모임에 나갔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이 웃기게도 각자 할 말을 하고 있어. 누구는 종교 얘기, 누구는 철학 얘기, 누구는 일상생활 얘기 같은 거. 그런데 잘 들어보니까 그 말들이 또 연결이 돼. 각자 얘기하는데 대화가 이어지는 거야. 제일 황당한 게 뭔지 알아? 나중에는 또 그게 다 통합돼서 결론이 내려져. 아, 그렇구나하고 수긍이 되더라니까.’ 이런 식의 느낌이라고 할까?



  모두 다섯 개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은 코니 윌리스 걸작선 두 번째 책이다. 원래 시리즈는 첫 번째부터 읽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도서관에 두 번째 이야기만 남아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중단편이니 상관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특이하게 각각의 이야기 뒤에는 작가의 후기가 들어있다. 본편도 재미있었지만, 후기도 흥미로웠다.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 All Seated on the ground, 2008』는 어느 날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다. 대개 우리가 본 작품들 속의 외계인은 지구에 오자마자 둘 중의 한 가지 행동을 한다. 공격을 하거나 손을 내밀거나. 그런데 이 이야기의 외계인들은 그런 예상을 깨고, 지구인들을 마땅찮은 눈으로 째려보기만 한다. 도대체 왜! 이 외계인들은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노려보기만 하는 걸까? 그런데 갑자기 이들이 철푸덕 바닥에 앉아버린다. 왜? 그 때 들려온 캐럴 송과 관련이 있는 건가? 지구인들은 혼란에 빠진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는지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그러면서 또 상당히 코믹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캐럴 송이 그렇게 잔인한 줄 누가 알았을까? 머리 속으로 E.T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그 큰 눈으로 째려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어쩐지 끔찍했다. 음, 그러면 E.T 말고 에이리언이나 프레데터가 째려본다고 생각할까? 상상해보니 그건 그것대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연애질하는 주인공!



  『여왕마저도 Even the Queen, 1993』는 생리가 사라진 미래가 배경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생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 주인공의 둘째 딸이 그 모임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하자, 집안의 여자들이 모두 모여서 얘기를 한다. 그들이 경험했던 생리가 어땠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아, 너무도 적나라한 생리에 대한 표현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생리통과 리지 보든이나 대처를 연결시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그냥 막 터져나왔다. 후기에 작가가 적은, 남자도 생리를 했다면 생리진통제를 발명한 사람은 노벨상을 받았을 거라는 대화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마블아치에 부는 바람 The winds of marble arch, 2000』는 잔잔한 이야기다. 어느 날, 런던에 학회 참석차 온 부부가 겪는 이상하나 경험을 그리고 있다. 런던 지하철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냄새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쩐지 특이하다. 후반부에 가서는 어쩐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가 생각났다.



  『영혼은 자신의 사회를 선택한다 The soul selects her own society, 1997』은 몇 장 안 되는 짧은 분량인데, 읽으면서 ‘으아!’했다.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관심이 없던 내 자신을 반성한다. 그녀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마지막 위네바고 The last of the Winnebagos, 1989』는 멀지 않은 미래에, ‘개’가 멸종된 이후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길에서 우연히 차에 치어 죽은 자칼을 발견하고, 그 사건 때문에 어린 시절 자신이 기르던 개와의 마지막 추억에 잠기게 된다. 하지만 동물 애호 협회에서는 혹시 그가 사고를 낸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데…….



  개가 사라진 세상이라는 설정에 좀 놀랐다. 하긴 요즘 닭이나 돼지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 다른 동물들이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닭이나 소, 돼지들이 병에 걸려 살처분되는 이유는 아마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주거 환경과 제대로 된 방역 처리 부재 때문일 것이다. 개나 고양이도 비슷하지 않을까? 집에서 기를 때는 귀여워하지만, 버릴 때는 가차없는 게 인간이니까. 길고양이가 길개가 위생적이고 깨끗한 주거 환경에서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을 이용할 리는 없잖아? 멸종된 개와 마지막 차종 위네바고. 이 두 가지를 연결해 작가는 우리 일상에서 사라진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음, 그러고 보니 요즘 꼬꼬마 아이들은 전화기가 사각형 모양이라고만 알아서, 예전에 나온 송수화기가 달린 전화를 보면 그게 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세대 간의 단절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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