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체파리의 비법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원제 - Her Smoke Rose Up Forever, 2004

  작가 - 탑트리 주니어







  우선 이 책이 출판된 것은 2004년이지만, 수록된 작품들이 실제 발표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이다. 단편으로 소개되었던 것을 모아서 단편집 형식으로 낸 것이 2004년인 모양이다. 저 필명으로 처음 단편이 나왔을 때 모두가 다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여서 모두가 놀랐다고 한다. 남자글과 여자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좀 우스웠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인식이 여전한 걸 보면, 인간의 진화는 무척이나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책에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떤 것은 거의 200쪽에 달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10쪽이 조금 넘기도 했다. 하지만 긴 이야기건 짧은 이야기건 다 각각의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체체파리의 비법 THE SCREWELY SOLUTION, 1977'은 예전에 미국 드라마 ‘마스터즈 오브 호러 Masters of Horror, 2006’에서 영상화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으로 읽어보니 더 대단했다. 여자들을 학살하는 남자들을 피해 숨어사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경이라든지 놀라움이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우주의 존재가 보기에, 인간은 제거해야 할 해충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해충은 당연히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는 걸 감안해도, 남자에 의한 여자 학살이라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특히 여자가 주로 피해자가 되는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두 번째 이야기인 ‘접속된 소녀 THE GIRL WHO WAS PLUGGED IN, 1973’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몸과 정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 시대가 배경이다. 극도의 외모 지상주의와 자본주의, 미디어의 조작을 대놓고 비판하고 있다. 길거리 소녀가 아름다운 생체 로봇(또는 인형)의 정신체가 되어 원격조종을 하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로봇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열광한다. 그러니까 립싱크 가수는 입만 벙긋하고 뒤에서 다른 사람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외부에서 활동하는 것은 아름다운 소녀지만 사실 그녀는 먼 곳에 있는 별로 예쁘지 않은 여자애가 조종하는 것이다. 그 소녀를 모든 이의 우상으로 만들어 광고를 하고 이득을 얻는 조직이 등장하는데,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격조종은 불가능해도, 우리에겐 성형수술과 의느님이 계시니 말이다. 예쁘고 잘생기면 장땡이라는 말이 떠오고, 그게 잘 먹히는 요즘 풍조를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씁쓸했다.



  세 번째 단편인 ‘보이지 않는 여자들 THE WOMEN MEN DON'T SEE, 1973’은 뭐랄까…….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주장을 내세우거나 억누르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한쪽이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반항하지 않고 그냥 따르는 것이 평화일까? 물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좋은 세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양 쪽에 다 해당되는 얘기일까? 이 이야기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억눌려 살던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지구인이나 외계 생명체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같은 지구인이 더 말이 안 통하니 외계인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네 번째 이야기인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HOUSTON, HOUSTON, DO YOU READ?, 1976’은 우주 비행사들이 우연히 미래로 가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남자다움을 자랑스러워하는 ‘버나드’나 그러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로리머’를 통해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또한 여자들만 남은 미래 사회를 보여주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제일 짧은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THE LAST FLIGHT OF DR. AIN, 1969’는 지구를 위해 인간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과학자가 주인공이다. 이야기에 좀 더 살을 붙여, 그를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설정해서 그의 계획을 막으려는 집단을 등장시키면 첩보 스릴러 액션물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하면 완벽한 지구 종말물이 될 것이고.



  여섯 번째 이야기인 ‘덧없는 존재감 A MOMENTARY TASTE OF BEING, 1975’는 솔직히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 분량이 제일 긴데, 읽을 때는 인상적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와 닿지 않았다.



  마지막 이야기인 ‘비애곡 SLOW MUSIC, 1980’은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종말이지만, 지구 종말이 아니라 인간 종말의 세계이다. 인간이 사라진 후의 지구는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여자와 남자로 추정되는 두 소년소녀가 주인공이다. 그 둘은 과연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인류는 멸종하고 마는가? 결말을 읽으면서 허무하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오오, 이런 발상의 전환이!’라고 감탄하기도 했고, ‘이건 너무 암울하잖아…….’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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