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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워크
에릭 우스텐버그 감독, 트래비스 판 윙클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원제 - Bloodwork, 2011
감독 - 에릭 워스텐버그
출연 - 트래비스 반 윙클, 트리시아 헬퍼, 에릭 로버츠, 미르시아 먼로
대개는 애인님이 날 만나러 서울로 오지만, 내가 애인님을 만나러 갈 때가 있다. 분당선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간혹 병원에서 임상실험대상자를 모집하는 광고판을 보게 된다. 그걸 보면서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다양한 질병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위험하지 않을까? 부작용은 생기지 않나? 저러다 더 증세가 심각해지면 어떡하지? 보상은 받나?’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방학을 맞아 용돈벌이를 하고자 제약회사의 신약 실험에 참가한 두 친구, ‘그렉’과 ‘롭’.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함께 연구소에서 격리된 상태에서 지내게 된다. 둘은 밥도 주고, 재워주고, 옷도 주고, 게다가 2주에 3천 달러라는 조건에 만족한다. 하지만 약을 투약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그렉은 불안해한다. 급기야 실험대상자들 모두가 서서히 폭력적으로 되어 가는데…….
욕심 많은 제약회사에서 금지된 실험을 한다거나, 존재하면 안 되는 약물을 만들다가 부작용이 생기는 설정은 은근히 많다. 그걸 배경으로 괴생명체가 만들어진다거나 약을 도둑맞다 되찾아오는 등등의 흐름으로 이야기는 달라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런 것보다 실험의 부작용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강행하는 냉정한 회사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괜찮았다. 서서히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이를 지켜보는 연구원들의 갈등도 좋았다. 특히 실험대상자들이 보는 망상이 너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진짜 있을 수 있는 일들이어서 더 실감나기도 했다. 게다가 그 환각이 처음부터 강렬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사이좋게 지내던 이들이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여 공격하는 태도의 변화가 상당히 극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 그러니까 괴생명체가 만들어지는 작품인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2002’이나 ‘데블스 플레이그라운드 Devil's Playground, 2010 ’같은 걸 보면, 솔직히 신약개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좀비나 괴물이 된 존재들과 주인공이 어떻게 맞서 싸워 살아남는지, 어떤 액션을 보여주는지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보다, 오직 임상 실험의 부작용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혹시 이 때문에 신약 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만 더해지는 건 아닐까 우려가 조금 되기도 했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임상실험 모집 글을 보고 내 머리에 당장 떠오르는 건 ‘좋은 약이 나오면 좋겠네.’라는 것보다 ‘실험하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어떡하지?’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음,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비행기도 못타고, 지하철이나 버스도 탈 수 없고……. 그런 걸 일일이 다 따지고 있으면, 진짜 일상생활 가능하냐는 질문이 나올 지도 모른다. 음, 어쩌면 삶은 계란이 아니라 리셋이나 저장 기능이 없는 생존게임일지도 모르겠다. 게임이라고 하기엔 좀 무게감이 다르지만, 하여간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짧고 굵게 살 것인지 아니면 가늘고 길게 살 것인지 잘 생각해서 선택해야겠다.
그나저나 이런 영화에서는 언제나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언제나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이건 중요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