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 絶望讀書――苦惱の時期、私を救った本, 2016

  부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저자 - 가시라기 히로키







  조선 시대 때 우리 조상들은 부모가 사망하면 무덤 근처에서 3년 동안 상을 치렀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을 치르기 위해 관직에서 사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게 잠시 벼슬길에서 떠나있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진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어떤 사람은 3년 내내 슬퍼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금방 비통함에서 벗어났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3년을 채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4년에 배 한 척이 바다로 가라앉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망자 중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그 부모들이 어째서 배가 가라앉았는지, 왜 구조를 하지 않았는지 정부에 진실을 말해달라고 시위를 하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제까지 자식이 죽은 슬픔에 잠겨서 이럴 것이냐고, 이제 그만 털고 그만둬야하는 게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는 위로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아냥거리는 어조였다.



  부모와 자식을 비교하는 것에 이견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위 두 가지 경우를 보면 예전에는 비통함을 달랠 시간을 넉넉히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3년으로도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 ‘절망 독서’를 읽으면서 문득 위의 두 가지 경우가 떠올랐다. 저자는 대학에 다니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던 중 난치병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투병 생활을 겪으면서, 저자는 절망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그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책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그가 읽은 책들은 아기자기하게 밝고 희망찬 내용이 아니라, 음울하고 비탄에 젖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종류들이었다.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이 생각났다. 난 우울한데 주위에서는 좋다고 떠들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쟤들은 뭐가 그리 좋을까, 난 왜 이 모양일까’라면서 더 우울해질 때가 있다. 심지어 난 이런 불운한 운명을 타고 난 걸까라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저자가 절망에 빠졌을 때, 우울한 책을 읽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아주 그냥 슬픔과 우울의 바다에 푹 빠져서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을 때까지 슬퍼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책의 반 정도 되는 분량동안, 왜 절망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더 암울한 작품을 접해야하는지 얘기했다. 사람마다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디어를 원할 때는 나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의 조언이 무척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절망에 빠지거나 우울해할 때는 그런 사람의 위로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제 그만’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직’일 수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충분히 슬퍼하고 비탄에 빠질 시간을 줘야한다고 얘기한다. 내 상식과 기준으로 남의 슬픔을 마음대로 끝내라고 오지랖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건 위로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위에서 얘기한 어린 학생들의 부모에게 사람들이 가한 것이 위로가 아니라 비아냥과 조롱이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자신이 보기 싫다고 남의 감정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책의 띠지에 적힌 것처럼 폭력이다. 요즘 포털 사이트나 SNS를 보면 그런 짓을 하면서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예전에는 3년이라는 넉넉한 기간 동안 슬퍼할 수 있게 배려해줬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을 읽는 건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울한 분위기의 책을 피해왔다. 내가 우울하고 슬픈데, 굳이 그런 내용의 작품까지 읽어야하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절망에 빠진 나는 ‘다른 나’라는 생각으로 외면해왔던 것 같다.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차분히 응시해봐야겠다.



  저자가 소개한 책을 보니,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를 제외하고는 일본 작품이 많았다. 흐음, 일본 사람이니까 당연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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