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저자 - 이다혜







  이 작품은 기자인 저자가 지금까지 읽은 책이나 본 영화 그리고 살면서 겪었던 일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그러면 그냥 감상문 모음 내지 에세이일까? 그런데 책을 찬찬히 읽어보니, 어쩐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작품을 보는 다른 시각을 알게 해줬다고 해야 할까? 아니, 예전에 이런저런 작품을 접하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이상한 감정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알려줬다고 할까?



  그래, 그랬다. 예전에 부모님이 사다주신 고전 명작을 읽으면서 ‘왜?’라는 의문이 생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주인공은 다 남자야? 왜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려면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납치되거나 살해당해야 해? 그런 의문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봐도 계속해서 들었다. 왜 맨날 대장은 남자야? 여자애는 왜 맨날 분홍색 옷만 입어야 해? 하지만 그런 의문은 원래 그런 거라는 말에 싹이 채 자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그 시대에는 원래 그랬고, 그래야 스토리 진행이 되는 거였고, 원래 분홍색은 여자색이고, 주위를 봐도 회사 사장이나 대통령 같은 건 다 남자가 하는 거니까 당연히 대장은 남자가 하는 거였다.



  원래 그런 거였다. 그런 의문을 갖는 내가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문을 품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 그 이후 원래 그런 거라는 말에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저자는 계속해서 왜라고 의문을 품어왔지만 말이다.



  ‘왜’라는 말은 중요하다. 왜라는 의문을 갖기 때문에 생각을 해보고, 나만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이견을 존중하면서 발전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원래 그렇다’는 말은 의문을 품지 말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원래 그런 거야. 예전부터 원래 그래왔으니까, 아무 것도 바꾸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다. 원래 주인공은 남자이고, 그를 각성시키는 제일 좋은 설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처참하게 굴리는 거야.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하거나, 여자가 처참하게 당할수록 남자 주인공의 분노는 커지고 정당화되며 그의 순정은 빛을 발하지. 여자는 딱 그런 존재야. 그 이상은 넘보면 안 돼. 원래 그래왔으니까. 옛날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예전부터 드라마나 책을 읽으면서 뭔가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저자의 말처럼, 독자는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작품을 대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대다수는 남자였다. 따라서 난 여자이지만, 남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교육되어왔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꺼림칙하게 여겼던 지점이었다. 원인을 알고 나니 속이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답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접한 여러 작품들이 떠오르면서, 무심코 넘겼던 여러 지점들이 생각났다.



  이 책은 내가 잊고 있었던 ‘왜’라는 질문을 일깨워주었다. 아마 앞으로 작품을 볼 때마다 혼란스러워질 것 같다. ‘왜?’라는 의문이 드는 것과 동시에 예전처럼 받아들이는 일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아마 ‘왜’보다는 ‘원래 그런 거구나’라면서 넘어가는 일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몇 십년동안 갖고 있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 그걸 몰랐던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마 조금씩 조금씩 ‘원래 그런 거야’보다 ‘왜’라는 질문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예전에 시들었던 싹이 튼튼하게 자라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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