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톡 -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3
공지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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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공지희





  중학교 3학년인 달림은 식당을 하는 엄마와 고등학생인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비록 우등생인 언니와 자신을 차별하는 것 같은 엄마지만, 달림은 가족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는 지평과 베프인 미루와 함께 그녀는 그럭저럭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미루가 울먹이며 임신했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나름 평화로웠던 생활은 끝이 난다. 한 학년 위인 종하 선배와 사귀던 그녀는 기념일 날 사랑을 증명하라는 그의 요구에 잠자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신 소식을 들은 종하의 반응은 차가웠다. 같이 좋아서 한 것이고, 여자 책임이라는 식으로 회피한 것이다. 조언을 구할 어른도 없는 두 친구, 아니 지평까지 세 친구는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인지 머리를 모은다.


  한편 달림은 아주 우연히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를 만난다. 그런데 이 아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사는 곳이라며 안내한 곳은 동굴이고, 여러 꼬마들과 함께 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을 돌보는 것은 노인 한사람뿐이다. 달림은 바쁘다. 미루의 문제도 같이 고민하고, 꼬마의 엄마도 같이 찾아봐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림은 언니의 일기장을 발견하는데…….


  아,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10대의 임신과 낙태라는 문제는 무척이나 민감한 사안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는 분위기이다. 그 때문에 대책도 없고 예방도 없다. 주위에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은 혼자 끙끙대다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아 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 접근해서 아이들이 현실에서 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넣었다. 바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존재였다.


  저 하늘 어딘가에는 낙태되어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모여 사는 별이 있다. 노랑모자와 다른 아이들은 그곳으로 가기 전에 잠시 지구에 머무르고 있었다. 작가는 그 아이들의 존재를 통해 달림의 입을 빌어 태아도 하나의 인격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달림은 미루에게 낙태를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자신이 본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또한 작가는 근처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입을 빌어, 직접 낙태 수술을 해야 하는 사람의 괴로움과 자책감을 말해준다. 비록 엄마 뱃속에 있지만, 엄연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태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라고 얘기한다.


  낙태는 살인이 맞다. 뱃속에 있어도 생명은 생명이니까. 그래서 작가는 태아도 하나의 어엿한 인간이라는 얘기를 전달하고자, 이런저런 설정을 넣어두었다.


  하지만 어쩐지 난 그게 답답했다.


  결국 이 책에서 낙태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미루의 몫이었다. 사랑을 증명하라며 성관계를 요구한 종호는 딱 한 장면 등장하고 사라진다. 돈을 모으려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서술이 한 줄 나오긴 하는데, 이후 존재감이 없다. 어째서? 왜? 단지 '오빠는 날 사랑하지 않은 거 같아'라는 미루의 대사 하나로 그의 책임감과 존재가 없어질 수 있는 걸까?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자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여자아이 탓이라는 걸까? 낙태를 해서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든지, 아이를 낳아 어린 미혼모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거나 아니면 아이를 입양시키고 역시 자책하며 살아야하는 건 여자아이의 몫이라는 것이다. 왜? 사랑을 증명하라는 오빠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한 죄가 있으니까. 어쩐지 종호의 대사인 '여자가 알아서 조심했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내가 느끼기에는, 모든 것을 여자아이의 책임으로 돌리는 듯 한 분위기다. 그래, '오빠 믿지'라는 개소리를 믿은 순진함이 죄다. 어린 나이에 남자친구를 사귄 게 죄고, 손을 잡고 뽀뽀를 허용하고 사랑을 증명하라는 오빠 말에 'X까'라고 대꾸하지 못한 게 죄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이 책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태어나지 못한 어린 보풀들을 통해서 태아도 하나의 생명을 갖고 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알게 된 미루와 종호 그리고 달림을 통해서 사랑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느끼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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