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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평점 :
원제 - 麒麟の翼, 2011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가가 형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 이야기.
갈릴레오 시리즈와 달리, 이 시리즈는 가족이라든지 인간 사이의 도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가가 형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보면 가가 형사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잠들어있는 양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느 날 밤, 한 중년의 남자가 가슴에 칼이 찔린 채 발견된다. 그리고 근처에서 수상한 거동을 한 청년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에 빠진다. 칼에 찔렸던 남자는 ‘다케아키’로 한 부품회사의 중역이었고, 청년은 몇 달 전에 그 회사에서 산재 보상도 못 받고 쫓겨난 ‘야시마’였다. 경찰에서는 회사에서 쫓겨난 앙갚음으로 야시마가 다케아키를 공격했다고 생각했지만, 가가 형사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음을 느낀다. 사고가 난 현장은 지하도인데, 다케아키는 왜 한참을 걸어와 다리 중앙에 있는 기린 조각상 아래에서 발견되었을까? 야시마의 임신한 애인 ‘가오리’는 그가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고 주장하고, 다케아키의 남겨진 가족은 엉겁결에 아빠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장례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건의 양상이 바뀌게 되는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가가 형사는 예전에 ‘붉은 손가락, 赤い指, 2009’에서 팀을 이뤘던 사촌동생 ‘마쓰미야’와 다시 한 번 뭉친다. 게다가 이번에는 가가 아버지의 3주기 기일까지 겹쳐서, 어쩐지 ‘붉은 손가락’의 속편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때는 아버지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때가 배경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저번 책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면, 이번 책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자식이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가길 바라지 않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부모의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자식은, 그제야 부모의 마음을 깨닫고 후회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옛말에도 있듯이, 모든 것은 이미 끝난 뒤였다. 문득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으음, 아까 엄마한테 투덜댔는데 죄송하다.
이 책에서는 또한 ‘어른의 책임과 올바른 가르침’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누군가에게서 배울 때,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워야하는가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다. 시작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중간이나 마무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작가는 그 중요성을 두 남자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었다. 처음이 올발랐다면, 그들은 아마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기에, 두 여자는 남편을 잃었고 세 아이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 중에 한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알려준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무척이나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어설픈 지식을 뽐내거나 비양심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게 그 순간은 편하고 이득이라 여길지 몰라도, 언젠가는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좋게 돌아올 리는 없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가가 형사는 주요 발표는 사촌 동생인 마쓰미야에게 시키고, 자신은 열심히 거리를 돌아다녔다. 의심이 가는 가게와 절에 들러 얘기를 나누고, 증거를 수집하고, CCTV를 확인하고, 불확실하거나 틀린 증거는 제거하고 확실한 것만 남겼다. 이런 식으로 수사하는 탐정이 누가 있더라……. 아! 소설 ‘점과 선 点と線, 1958’이랑 ‘통 The Cask, 1920’에서 나오는 형사와 탐정이 그랬다. 아마 끈질긴 탐문이 형사의 기본인가보다.
주인공이지만 관찰자 같은 느낌을 주기에, 가가 형사 시리즈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그의 생각이나 감정이 별로 드러나지 않기에, 읽으면서 직접 느끼고 추론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쩐지 독자에게 많은 것을 시키는 책 같다. 그래도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