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鬼談百景, 2012
작가 - 오노 후유미
어떤 작가는 이미 여러 권을 읽어도 신간이 나오면 읽을까 말까 고민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단 한 권만 읽었지만 어쩐지 그 사람 소설은 믿고 읽을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작가인 ‘오노 후유미’는 나에게 후자의 경우이다. ‘시귀 屍鬼, 1998’를 읽은 이후, 그런 믿음이 생겼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작품이자 얼마 전에 읽은 ‘잔예 殘穢, 2012’와 세트이기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99개의 단편 괴담이 수록되어있다니, 두근두근 거렸다. 하지만 한 이야기 당 짧게는 반쪽, 길게는 서너 쪽에 해당하는 분량 때문인지, 책은 예상보다 얇았다. 그래서 좀 실망했다.
처음 몇 개의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는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그랬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스무 개를 넘어가고 서른 개쯤 될 때, 갑자기 오싹해졌다. 책을 덮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다음에 물을 마시고 환한 밖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다시 책을 펼쳤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처음에는 그냥 짧은 이야기를 읽는데 급급해서 무섭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생활 습관이나 문화가 좀 다른 부분도 있어서, 그리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나 학교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가 아는 동네와 학교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 책에서 적힌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아, 처음에 책이 얇다고 실망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얇은 게 이 책의 장점이었다. 만약 얼마 전에 읽은 ‘노조키메 のぞきめ, 2012’ 정도의 두께였다면, 아마 책을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시귀’에서 그렇게 당해놓고 그걸 까먹다니……. 하긴 그 책을 읽은 게 거의 십 년 전의 일이니까, 잊는 게 당연다고 우겨본다.
이제부터 비 오는 날, 골목을 걸을 때, 그리고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를 거 같다. 누가 우산 밑으로 날 보면 어떡하지? 옆에 누가 서 있는 데, 그 위로는 아무것도 없는 거면 어쩌지? 집에 올 때 골목에 누군가 서 있으면 어떡하지?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도 없는 거면 어쩌지?
그나저나 책을 다 읽고 오싹한 것은, 무려 99개나 되는 괴담을 적은 작가의 능력이었다. 비록 독자에게서 투고 받은 사연도 있다고 하지만, 장편으로 만들 수 있는 소재가 99개나 있다는 얘기다. 아, 이 중에서 몇 개는 ‘잔예’에 써먹으니까 빼야겠지. 그래도 90개가 넘는 소재가 있다니……. 어쩐지 기대가 되면서 또 다시 두근두근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