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殘穢, 2012
작가 - 오노 후유미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으면, 상상이 구체화가 되면서 그 느낌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를 먼저 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영화가 너무 재미없으면, 원작을 읽고 싶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잔예’는 영화를 보고나서, 꼭 원작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지름신이 오기도 전에 질러버렸다.
주인공인 ‘나’는 소설가로 예전 작품 후기에 독자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알려달라고 쓴 적이 있다. 그 때 ‘쿠보’라는 기자가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이 이번에 이사 온 집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닐 것이라 답을 보냈지만, 몇 달 후에 다시 편지가 온다. 그 내용을 읽은 나는 그 집에 뭔가 있다는 확신에, 쿠보와 함께 전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후 틈틈이 이어진 그들의 조사는 무려 6년이나 걸리고,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침내 알아낸 결론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엄청난 원한이 맺힌 것이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른 점도 있었다. 우선 쿠보가 대학생이 아니라 기자였고, 그들의 조사는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나 걸린 것이었다. 그 기원도 전쟁 이전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까지 올라가고, 관련된 사람들도 더 많았다. 그러니까 저주의 범위와 대상이 더 넓어지고 많아진 것이다.
더러움이 묻은 집에서 살았던 사람은 그 저주에 걸리고 만다는 설정이 영화 ‘주온’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작가도 그걸 의식했는지, 작품 내에서 그 얘기를 꺼낸다. 그런데 비교해보면, 이 책에 나오는 저주가 더 절망적이다. 주온에서는 ‘가야코’와 ‘토시오’가 살해당한 그 집만 가지 않으면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더러움이 남아있는 집에 갔던 사람이 저주로 자살하게 되면, 그 사람의 집에 새로운 저주의 근원지가 된다고 한다. 이른바 이중 저주에 걸린 집이 된다는 얘기다.
소설에서는 맨 처음 문제가 있던 집을 헐고 그 위에 다른 집을 지었는데, 거기 이사 온 사람들이 이상하게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주 위에 또 저주가 쌓인 것이다. 그리고 또 집을 부수고 다른 집을 짓고, 그러면 또 자살하거나 이상한 일을 겪는 사람이 생기고, 그래서 아무도 안 살려고 하면 다시 부수고 새로운 집을 짓고……. 이런 식으로 저주가 계속 돌고 돌게 된다. 그 뿐인가? 그 집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간 사람이 만약에 저주 때문에 죽으면, 그 집이 새로운 중심지가 된다. 이렇게 가다보면, 아무런 더러움이 없는 땅이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 생긴다. 잘못하면 일본 전체가 저주에 걸린 땅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비슷한 얘기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집터’라든지 ‘조상의 묏자리’를 중요시했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으면, 터가 나쁘거나 조상의 묘를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옆 나라니까 비슷한 게 있나보다.
소설이지만, 어떻게 보면 탐구 보고서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각 시대별로 조사한 내용이나 인터뷰한 사람의 얘기를 적어서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진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어느 동네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어졌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을 때 읽다가 너무 오싹해서,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선풍기에서 나는 소리도 어쩐지 심상치 않게 들렸다. 선풍기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오노 후유미’다. 이 더위에 선풍기를 끄게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