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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 너무 많다 ㅣ 귀족 탐정 피터 윔지 2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평점 :
원제 - Clouds of Witness, 192
작가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윔지 경이 등장하는 두 번째 이야기다. 지친 심신을 쉬게 하려고 여행을 떠난 피터에게 놀란 소식이 전해진다. 그의 형인 덴버 공작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는 여동생 메리의 약혼자인 캐스카트! 영국으로 돌아온 피터는 충실한 조수이자 하인인 번터와 함께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사건이 있던 날 밤에 무엇을 했는지 절대로 말하지 않는 덴버 공작 때문에 모든 상황은 불리하게만 돌아간다. 과연 캐스카트를 죽인 것은 덴버 공작인가? 그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마을 주민인 그림소프는 왜 그렇게 부인을 의심하는 걸까? 메리는 왜 아무도 만나려하지 않는 걸까? 그 날 밤 덴버 공작은 누굴 만난 걸까? 죽은 캐스카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급기야 피터는 누군가의 습격까지 받는데…….
전편과 달리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이나 풍부한 이야기였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등장하는 사람마다 숨겨둔 사연들이 하나둘씩은 꼭 있었다. 하지만 비밀이란 차곡차곡 쌓아갈수록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뭔가가 덧붙여져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그랬다. 각자 숨기고 싶은 것들을 꽁꽁 싸매는 바람에, 사람들의 각색과 오해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내고 말았다.
어차피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덴버 공작이 진범이 아니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 주인공이 존경하는 사람이 범인이 되는 설정은 흔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진범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형이 살인 혐의를 받고 감옥에 있는데, 피터는 여전히 유쾌하고 수다스럽게 실마리를 추적한다. 형이 무죄라는 걸 확신하고 있기에 그럴 수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너무 발랄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만약 내가 경찰이었다면, 형을 죽이고 자기가 공작이 되기 위해 피터가 함정을 파놓은 건 아닐까하는 의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명확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조바심이 났다. 덴버 공작은 동생의 약혼자를 죽였다는 혐의보다 더 중요한 게 도대체 뭐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까? 무슨 국가 기밀이라도 되는 걸까? 게다가 그 날 밤에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것은 메리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녀의 옷에 피가 묻어있는 걸까? 그녀 역시 방에 틀어박혀서 아무와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일까?
하지만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진지하고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 파커는 어쩐지 메리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았다. 그걸 눈치 챈 피터는 자네라면 감지덕지지라고 말하면서 신랄한 어조로 동생을 깐다. 음, 이게 바로 그 ‘현실적인 오누이?’ 드라마나 만화, 소설에서나 볼 법한 서로를 아끼고 꿀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 서로 디스하고 까기 바쁜 그런 오누이 관계라는 건가?
피터 경의 단호한 여동생 평가를 보면 “나는 누구든 간에 내 여동생하고 왜 결혼하고 싶어 하는지 이유를 당최 모르겠지만~경찰관이면 감지덕지일걸.~걔는 남자 취향이 영 형편없지 않나. 그러니 자네처럼 정말 괜찮은 남자를 알아볼까 모르겠어.” -p.341 저 대목을 읽으면서 그만 웃어버렸다. 와, 동생이 들으면 진짜 기분 나쁘겠는 걸? 아마 피터는 여자에겐 관심도 없지 않냐고 쏘아붙일 것 같다. 하지만 3권 표지를 보니 그에게도 여자가 생기는 모양이다.
아, 크리스티 소설에서도 1920년대 작품에서 소비에트 클럽이니 사회주의 같은 것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다만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었는데, 여기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의 해결은 좀 싱거웠다. 그런 이유였다니, 허무하다고 해야 할까? 옛날 사람들은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사연에 집중하다보니 사건이 묻혀버렸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