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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상처 ㅣ 스토리콜렉터 1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11월
평점 :
원제 - Tiefe Wunden, 2009
작가 - 넬레 노이하우스
어제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었는데, 우연히 책 얘기가 나왔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든지 ‘스티븐 킹’에 이어서 독일이나 북유럽 작가들 책이 좀 잔인하다는 얘기를 하다가 ‘넬레 노이하우스’가 나왔다. 그 때 내가 뭐라고 말했냐면, ‘그 작가 책을 읽으면 인간은 진짜 나빠.’라고 했다. 물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인간은 원래 나쁜 면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흐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다른 작가들보다 더 심하게 인간의 바닥까지 드러내는, 외면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부분까지 보여주는, 그래서 더 추악하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 어떨 때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악을 건드리는 그런 미묘한 느낌? 그래서 다른 작가들의 책은 다 읽고 나서 범인을 잡았다고 흐뭇해하지만, 이 작가의 책은 어쩐지 그렇지가 않다. 흐뭇하지만 씁쓸하고 우울함마저 느낄 때가 있다.
호러 범죄 스릴러 공포 작품을 접하다보면, 정신이상 내지는 뭔가에 집착해서 또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쾌감을 좋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착하는 대상은 돈이나 권력, 명예 그리고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은 겨우 세 권 읽었지만, 그런 단순한 동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돈이나 순간적인 욱하는 심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는 없었다. 마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천년동안 물속에서 똬리를 틀고 기다리듯이, 오랜 시간동안 숙성을 거친 증오와 원한, 원망, 질투, 탐욕 같은 것이 용암처럼 꿈틀대면서 동시에 빙하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사건이 벌어진다.
그 때문에 초반에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날 때는, 이게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감을 잡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물 밑에 가라앉은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계속 형사들의 뒤를 따라다니고, 간혹 형사들은 모르는 인물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추측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커다란 그림이 구체화가 되면, 범인의 정체를 알 수 있다.
한 노인이 나치의 처형 방식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으로, 미 대통령의 고문도 맡았던 꽤나 거물급 인사였다. 그런데 그의 사체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비밀이 드러난다. 그에게서 나치 친위대의 문신이 발견된 것이다. 유대인인 그에게 왜 그런 문신이 새겨져있던 걸까? 그리고 연이어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견된다. 역시 노인인데, 놀랍게도 그의 집 지하실에는 나치를 숭배하는 온갖 자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죽은 두 노인의 연결점으로 재벌이자 명문가를 다스리는 노부인이 등장하는데…….
이 책의 사건은 현재에 일어났지만, 그 원인은 2차 세계대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의 증오와 원한, 질투가 몇 십 년 동안 억눌려왔다가 빵 터진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조차 서로 의심하고 음모를 꾸미고 배신하고 말았다. 아, 읽으면서 사람들 간의 신뢰나 정이 얼마나 얄팍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피로 맺어진 가족이지만 서류상으로만 가족 같은 관계라니, 안타깝기만 하다. 하긴 그러니 이런 사건이 일어났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패스하겠다. 간단히 말하면, 여자의 질투와 남자의 권력욕 그리고 인간의 생존에 대한 갈망이 합쳐지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미국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일의 성에 대한 인식은 나에겐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