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제 - I Saw the Devil, 2010
감독 - 김지운
출연 - 이병헌, 최민식, 전국환, 천호진
우와, 잔인해…….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저런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본 외국 고어 영화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화면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아! 11월의 파워문화 블로그 주제는 ‘스릴러’이다. 그런데 첫 타자로 너무 강한 걸 고른 것 같다. 주말 내내 영화의 몇몇 충격적인 장면들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약혼녀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연인의 복수를 다짐한 이병헌은 국정원 직원이라는 신분을 활용하여 용의자들을 처단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을 찾아낸다. 바로 학원차를 운전하는 최민식. 외딴 곳에서 차가 고장 나거나 늦은 시간에 혼자 있는 여자들을 납치 감금 고문 살해 시체 유기를 하는 연쇄 살인범이었다. 그런데 이병헌은 최민식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갖고 놀듯이, 최민식을 잡아서 폭행하고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물론 그때마다 폭행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해진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 최민식은 마지막 반격을 시도하는데…….
최민식이 여자들을 납치해 죽이는 장면도 잔인했고, 점점 더 잔인해져가는 이병헌의 폭행 장면도 무시무시했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최민식이 여자를 잡고 강간을 시도하려는 찰나에 이병헌이 쳐들어와서 줘 패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그게 몇 번 반복되자, 나중에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 지 예상이 가면서 저절로 긴장하고 주먹을 꽉 쥐게 만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병헌의 복수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 게임의 폭력성을 시험하기 위해 PC방의 전원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최민식이 최고의 절정을 맛보려는 순간 방해하는 게 참……. 당하는 최민식이야 엄청 화나고 억울하고 짜증나고 속이 터져 죽을 기분이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하는 여자들은 무슨 죄인지 모르겠다. 비록 목숨은 건지지만 트라우마는 엄청날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피해를 입혀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병헌의 목적이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죄를 짓기 전에 잡아야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최고로 잔인한 복수를 하는 것이라면 적절한 방법일 수는 있었다.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그만하고 심부름 다녀오라고 하면 입이 튀어나오고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된다? 엄마는 왜 내가 꼭 게임만 하면 부르냐고 화를 내다가 등짝 스매싱 당하고 방문 쾅 닫고 들어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최민식 같은 경우에는 등짝 스매싱이 아니라 완전 팔다리가 부러지고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일까지 당했으니, 약이 바짝 오를 만하다.
그게 비극이었다. 결국 최민식은 최후의 반격을 꾀했고, 그 때문에 이병헌은 치명타를 입는다.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너무 갖고 놀았다. 적당히 놀다가 처리했어야 했는데, 방심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특히 이 영화의 쥐는 교활했고 잔인했다.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제목을 바꿔야한다는 것이었다. ‘악마가 되었다.’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심연을 바라보면 그 심연도 나를 바라본다.’라는 말이 있다. 최민식이라는 악을 처리하려다가 이병헌 자신도 그 악과 비슷한 짓을 저지르게 되었다. 복수물은 통쾌한 맛에 보는 것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통쾌하다기보다는 마음이 답답하고 시원한 것이 마시고 싶어졌다.
최민식의 연기는 참 대단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장면에서는 진짜로 잘리는 줄 알았다. 진짜 살아있다는 게 뭔지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이병헌은 아직까지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광해’에서 좋았다는 데 아직 그건 보지를 못해서……. 이번 영화에서도 감정을 숨기고 무표정하게 복수하는 역할이었는데, 의외로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음, 감정 표현을 잘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던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역할을 하니 제격인 모양이다.
영화의 별점은 시간이 너무 길어서 좋게 줄 수가 없었다. 인간적으로 두 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 내내 고문당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