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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ㅣ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 赫眼, 2009
작가 - 미쓰다 신조
읽고 나서 엄마랑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미쓰다 신조’의 단편 모음집이다. 여덟 개의 창작 이야기와 어디선가 들었다는 네 개의 이야기가 ‘괴담 기담 사제’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런데 창작 이야기 중에 작가가 등장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 많아서, 다 실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붉은 눈』은 초등학교 때 전학 온 소녀에 관련된 이야기다. 두 눈동자의 색이 약간 다른, 예쁜 외모에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를 갖고 있던 ‘마도 다카리’. 어느 날 주인공은 결석한 그녀에게 급식으로 나온 빵과 숙제를 갖다 주라는 담임의 부탁을 수락한다. 친구 ‘요네쿠라’와 함께 간 주인공은 마도의 집에서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리고 며칠 후 요네쿠라가 이상한 소리를 하다가 죽어버리는데……. 어쩐지 스티븐 킹의 ‘Salem's Lot’ 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단편이었다.
『괴기 사진 작가』는 제목 그대로 묘한 분위기의 기괴한 사진을 찍는 작가에 관련된 주인공의 경험담이다. 잡지 편집부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우연히 괴기 사진을 찍는다는 ‘모쿠노’라는 사진작가에 대해 알게 된다. 그의 집을 찾아가는 주인공에게 동네 노인은 불길한 얘기를 알려준다. 께름칙한 기분으로 작가의 집을 찾아간 주인공은 그곳에서 작가의 여동생을 만나는데…….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ほんとにあった怖い話’라는 일본 공포 드라마 시리즈가 있는데, 거기에 나오면 딱 어울릴 내용이었다.
『괴담 기담ㆍ사제 1 옛집의 저주』는 7대손까지 저주를 받은 한 집안의 이야기다. 분량은 네 쪽 정도지만, 생각해보니 참 무서운 내용이었다.
『내려다보는 집』은 벼랑 위에 세워진, 아무도 안사는 것이 분명한 집에 대한 내용이었다. 초등학생인 주인공은 어쩐지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을 느낀다. 그래서 친구들이 폐가 탐험을 해보자는 제의에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는데……. 그냥 장난끼 넘치는 집주인이 아이들을 골탕 먹이려고 했다고 생각하면 별로 무섭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으음. 폐가건 흉가건 남의 집에 함부로 가는 건 좋지 않다.
『괴담 기담ㆍ사제 2 원인』은 안 좋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남자의 이야기다. 두 쪽 분량인데, 진짜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한밤중의 전화』는 두 사람의 전화 대화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다. 새벽 두 시, 갑자기 주인공은 전화를 받는다. 상대는 뜬금없이 오 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며, 과거 기억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주인공이 몰랐던 뒷이야기까지 전해준다. 얘기를 들으면서 주인공은 잊고 있었던 오싹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동시에 전화를 건 사람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갖는데……. 지문이나 설명 하나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졌는데, 주인공에 감정이입해서 읽다보면 등골이 오싹하다. 새벽에 오는 전화는 받지 말자!
『재나방 남자의 공포』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다. 이 작가, 가끔 자기 자신을 화자로 등장시킨다. 창작이 아니라 실제 경험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헐, 그러면 인생이 호러! 작가가 온천에 가서 늦은 밤에 야외 목욕을 즐기려다가 만난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 남자가 오래 전에 겪은 아동 연쇄 살인사건을 듣고, 작가가 나름대로 추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분위기의 흐름이 좋았다. 초반에 으스스하던 분위기가 중간에 살인사건 얘기로 잠깐 가라앉는 것 같았는데, 후반에 다시 극대화가 되는 연결이 좋았다.
『괴담 기담ㆍ사제 3 애견의 죽음』. 이건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뒷골목의 상가』의 기본 화자는 또 작가 자신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릴 적에 겪은 일을 원고로 적어뒀는데, 그가 죽은 후 이야기로 써도 된다고 작가가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거의 야반도주하다시피 이사한 허름한 뒷골목.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년에게는 평상시의 골목이 아닌 다른 골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다이애건 엘리’의 호러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다만 그곳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상가 골목이지만, 여기에 나오는 골목은 조용하고 사람대신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게 다르다. 아, 분위기 묘사가 진짜 멋지다. 훌륭하다. 아니, 죽여준다. 내 어휘 실력이 딸려서 안타까울 뿐이다.
『괴담 기담ㆍ사제 4 찻집 손님』은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저주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맞거울의 지옥』 역시 작가 자신이 누군가에게 들은 ‘거울 지옥’에 대한 이야기다. 삼면거울이 있는 경대 사이에 자신의 얼굴이 끝없이 나타나는 매력에 빠진 한 소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십 몇 번째 거울 속에 자기가 아닌 다른 얼굴이 나타난 걸 발견했다. 그에 놀라 한참동안 거울을 멀리했지만, 우연히 맞거울을 보게 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그 얼굴이 아주 빠른 속도로 거울 속을 건너뛰어 다가오는데…….
『죽음이 으뜸이다 ; 사상학 탐정』은 작가의 다른 시리즈인 ‘사상학 탐정’이 나오는 단편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태양인 태음인 같은 ‘四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죽을 조짐을 나타내는 ‘死相’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야기가 『붉은 눈』과 연결된다. 그 초등학교를 나온 소년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된 후의 사건이라고 할까?
책을 읽을 때는 집에 어머니도 계셨고 등에 벽을 대고 있어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냥 이야기가 오싹 하다는 정도? 하지만 리뷰를 쓰는 지금, 집에는 나 혼자여서 그런지, 자꾸만 느낌이 이상하다. 등이 휑한 것은 방문을 열어둬서 그렇다 쳐도,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안 돌아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궁금하고, 또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빨리 돌면 뭔가 보일까 무서워 아주 천천히 돌아보고 있다.
으음, 리뷰 쓰다가 오싹한 건 또 오랜만이다. 내가 읽은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일본의 풍습을 다룬 게 많아서 별로 와 닿지 않았지만, 이 책은 현대가 배경이라 느낌이 색달랐다. 더 쓰고 싶지만 여기까지. 자꾸 돌아봐서 안 되겠다. 하아. 이 맛에 미쓰다 신조를 못 끊는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