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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 아웃케이스 없음
루버트 와이어트 감독, 앤디 서키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원제 -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감독 - 루퍼트 와이어트
출연 - 제임스 프랑코, 프리다 핀토, 앤디 서키스, 브라이언 콕스
‘윌’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신약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유인원 실험에서 효과가 좋은 약을 발견하여 인간에 대한 임상 실험을 허가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임신한 실험체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실험은 취소된다. 그는 그 실험체가 보호하려던 어린 새끼에게 ‘시저’라는 이름을 붙이고 몰래 집으로 데리고 와 실험을 계속한다. 그는 시저를 거의 가족처럼 돌봐주고, 시저 역시 그의 보호 아래 나날이 똑똑해진다. 하지만 윌의 아버지가 이웃과 시비가 붙자, 시저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결국 시저는 유인원 보호 시설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왜 자기 종족이 실험체가 되거나 인간의 유희거리로 살아야하는지 생각한다. 결국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문득 시저의 행동이 성경에 나오는 모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저는 유인원이지만 인간에게 거둬져, 거의 인간처럼 자랐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인이지만 이집트 공주에게 키워져 자신이 이집트 왕자라고 믿었다. 우연한 사고로 인해, 시저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종족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알게 된다. 모세 역시 우연히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며 자신의 종족이 대대로 노예로 살아가는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엄마 뱃속에서 투여 받은 신약의 영향으로 시저는 나날이 똑똑해졌고, 모세는 하느님에게서 능력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시저와 모세는 각각 자신의 종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끈다. 시저는 도시 인근에 있는 숲으로…….
특히 금문교를 지나가려는 시저 일행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의 대치 장면은 그런 생각을 더 확신하게 했다. 모세가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민족이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면, 시저는 금문교의 위아래 쪽으로 유인원들을 이동시켰다. 다리를 가를 수 없으니 일행의 방향을 양쪽으로 나눈 것이다.
영화는 그 유명한 고전 영화 ‘혹성 탈출 Planet of the apes’ 시리즈 중에서 네 번째 이야기인 ‘혹성 탈출 노예의 반란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 1972’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1편이 유인원들이 지배한 미래를 보여줬다면, 4편은 어떻게 유인원들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얘기했다.
지금까지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이 작품은 너무 좋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철부지 소년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신에 대해 고뇌하고 자아를 찾으면서 성장하는 흐름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처음에는 윌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삐지지만, 결국 인간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하기로 결심하는 시저의 변화가 잘 드러났다. 물론 그의 그런 결정이 인간들에게는 좋지 않겠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시저밖에 없다. 주인공이라는 윌을 연기한 배우는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남는 것은 시저의 분노한 표정, 윌에게 등을 돌리고 한숨을 쉴 때 보여줬던 그 온갖 감정을 다 담은 얼굴, 처음으로 말을 한 장면, 말을 타고 경찰들에게 저항하는 장면 등등. CG로 만들어낸 원숭이 주제에 그런 표정과 카리스마를 내뿜어도 되는 건가? 시저가 자기들을 괴롭히던 보호소 직원에게서 전기 충격기를 빼앗으며 ‘NO!’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전율마저 느낄 정도였다.
시저 얼굴에 김이 붙었네~ 잘생김. 시저가 짐을 들었구나~ 멋짐.
시저가 다른 유인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을 보니, 예전에 읽은 론 허버드의 소설 ‘배틀 필드 Battle-Field Earth'가 떠올랐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누가 먼저 그런 방법을 생각해냈는지 궁금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말포이’ 역을 맡았던 배우가 재미로 유인원들을 괴롭히는 직원으로 나왔는데, 진짜 등장만으로도 재수 없는 느낌을 팍팍 주었다. 왜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애들이 ‘입 닥쳐, 말포이.’를 외쳤는지 알 것 같았다.
영화는 인간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미래를 예고하면서 끝이 난다. 신약의 부작용으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전 ‘혹성탈출’의 세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아, 간만에 참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시저 역할을 했던 ‘앤디 서키스’는 이제 인간이 아닌 존재 전문 배우로 고정된 것 같다. 골룸에 유인원까지……. 하지만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은 못 알아본다는 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