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제 - Malice, 2015
감독 - 김용운
출연 - 홍수아, 임성언, 양명헌, 김하유
영화 시작하고 십분도 지나지 않아, 느낌이 왔다. 그리고 삼십분이 지나자 전체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 하아……. 기운이 온다, 기운이 와. 가끔, 아주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참을 수 없는 빡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땀 흘려 만든 결과물에 비속어를 남발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게 돼버린다. 이 영화, 그런 류의 작품이었다.
‘임성언’은 남편과 유치원생인 딸 ‘서아’와 함께 사는 맞벌이 부부다. 서아를 돌봐주던 이모가 일이 생겨 한 달간 자리를 비우게 되고, 그녀는 어린 딸을 맡길 곳이 없어 곤란해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여고 동창인 ‘홍수아’를 만나게 된다. 결혼 이후 연락이 끊겼던 친구라 임성언은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그녀는 자신이 수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친구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홍수아는 겉으로는 부자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지만, ‘조사장’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같이 살며 살림도 하고 비서일도 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임성언의 남편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임성언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이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급기야 홍수아는 모든 것을 차지할 계획을 꾸미는데…….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고 한다. 오랜 친구였던 동창이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부럽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그녀의 두 아이까지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실제로는 다시 만나고 약 2년 동안 알고 지내왔다고 했는데, 영화에서는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관계로 나온다.
그 때문일까? 약 한 달 사이에 모든 일이 일어나야했기에, 영화는 빠른 속도로 사건이 진행된다. 너무 빨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깨닫지 못 할 정도였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든지,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일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그 예로 한 남자가 있었다. 홍수아의 부탁으로 임성언을 염탐하고 심지어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운 이모까지 미행하던 남자였다. 그가 누구이고 홍수아와 어떤 관계이며 왜 그녀를 돕는지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이름도 없다! 그런데 중반 이후 그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계속 나왔다면 홍수아가 저지른 다른 범죄들의 뒤처리가 무척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꼬투리가 잡히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야 했다.
그리고 임성언의 이모가 맡은 역할도 애매하다. 왜 갑자기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워야했는지 제대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 아파서 입원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협박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것도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전화 한 통 받더니 한 달 동안 어딜 가겠다고 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는지,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조사장.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꽤 괜찮은 오피스텔에서 살면서 약혼녀도 있고, 동시에 홍수아를 비서로 두면서 살림도 맡기고 성희롱은 물론 강간에 가까운 성관계도 가진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 나 좋아하잖아?”이다. 홍수아가 우리 관계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둘 사이에 뭔가 있기는 한가보다. 아니면 그녀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라곤 8명 정도밖에 안 되는 영화였다. 홍수아, 임성언, 그녀의 남편, 그녀의 딸, 그녀의 이모, 남자, 조사장 그리고 조사장의 약혼녀. 그런데 그 중에 세 명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이 엑스트라급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니면 아예 네 사람, 이모, 남자, 조사장과 약혼녀를 빼버리고 두 여자의 관계에 대해 밀도 있게 다뤄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연 배우 중 한 명의 연기를 보니, 그게 좀 힘들 수도 있겠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