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점성술 살인사건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占星術殺人事件,
1980
작가 - 시마다 소지
책을 중간까지 읽다가 깨달았다. 이 책의 작가와 미쓰다 신조를 헷갈렸다. 그의 작품 중에 '사상학 탐정'이라는 게 있다는 걸 얼핏 듣고는, 이
책의 제목과 혼동한 것이다. 점성술이나 사상학이나 뭐, 서양과 동양의 차이일 뿐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오해였다. 작가 이름도 혼동하고 책 제목도
잘못 알아서 덜컥 질러버린 책이지만, 다행히 좌절 포즈를 그리면서 '이 놈의 기억력이! 내 돈! 내 시간!'하고 절규할 정도는 아니었다.
1936년, 화가였던 '우메자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의 죽음도 기이하지만, 그의
유품에서 나온 수기가 더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점성술에 빠져있던 그가 자신의 여섯 딸을 희생시켜 완벽한 존재를 만들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죽어서 그런 끔찍한 일은 안 일어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결혼 후 분가해 살던 큰딸이 살해당하고, 남은
여섯 딸마저 하루아침에 실종되더니 전국에 걸쳐 절단된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우메자와의 수기에 적힌 방법 그대로 살해당한 채로! 이후
사람들은 이 비극적이면서 기괴한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고 했지만, 누구 하나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40년 후, 점성술사인 '미타라이'에게 한 여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수기를 내놓으며, 자신의 아버지가 함정에 빠져
우메자와의 여섯 딸 사건에 연관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미타라이와 그의 친구인
'이시오카'는 이렇게 4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사건에 접근하는데…….
위에는 여섯 딸이라고 적어뒀지만, 여섯 명이 다 화가의 친딸인 건 아니다. 재혼한 부인이 데리고 온 딸도 있고, 친딸도 있고, 조카딸도 있다.
하지만 친딸이건 아니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미친놈이다. 그것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누구는 머리를, 누구는 상반신을,
누구는 허리를, 누구는 다리를 잘라서 완벽한 존재를 만들겠다니! 어딘가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만 했을 뿐,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살해당했다. 생각만 했다면 뭐…….
진짜 미친놈은 그의 수기를 바탕으로 실행한 자이다. 얼마나 정체를 교묘히 숨겼는지, 40년 동안 놈의 머리카락 하나도 잡지 못했다. 읽으면서
오싹했던 부분은 살해당한 큰딸의 사체에서 정액이 나왔지만, 사건의 정황상 범인은 여자일수밖에 없다는 대목이었다. 큰딸을 죽인 사람이 아버지도,
다른 여섯 동생도 죽였다는데 그러면 범인이 여자라는 걸까? 하지만 여자라면 어떻게 혼자서 여섯 사람을 죽이고 사체를 운반하고 절단할 수
있었을까? 혹시 남자가 사람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거짓 증거를 심어둔 걸까?
책의 3분의 1은 수기로 되어있다. 우메자와의 수기, 경찰인 분지로의 수기 그리고 범인의 수기이다. 수기 부분의 글자체가 눈에 조금 부담을
주었다. 왜 그걸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눈에 부담을 주니 자연히 가독성이 떨어지고, 집중하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최악의 글자체였다.
나머지 3분의 2는 미타라이와 이시오카의 대화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두 사람의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구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타라이의 신랄한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 비판은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비판을 했지만, 미타라이와 이시오카 두 사람의 등장은 이미 셜록
홈즈와 왓슨과 비슷했다. 혼자서 열심히 수사하는 이시오카는 홈즈에게 매번 당하지만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왓슨이 절로 연상되었다. 나름 홈즈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왓슨의 그런 시도는 실패한다. 여기서 이시오카도 비슷하게 생각으로 조사하지만, 결국 미타라이의 추리를 듣고
억울해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독자에게 추리를 해보라는 도전장이 나오는데, 그건 엘러리 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던 방법이다. 작가가 '본격 미스터리'라고 자신의 작품을 말했다는데,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트릭과 논리는 엘러리 퀸의
장기였으니까.
사건의 트릭이 무척 낯익었다. 저렇게 사람을 부분적으로 자르는 수법을 어디서 보았더라? 아! 일본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 金田一少年の事件簿,
1992'! 만화를 보면서 트릭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나온 것을 차용한 모양이다. 김전일 시리즈의 작가는 할아버지 이름도 멋대로
사용하고 트릭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