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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
오오토모 케이시 감독, 아오키 무네타카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원제 - るろうに剣心
京都大火編, 2014
감독 - 오오토모 케이시
출연 - 사토 타케루, 타케이 에미, 아오키 무네타카, 아오이 유우
아편을 팔던 약장수를 처치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켄신'에게 정부 관리가 찾아온다. 그는 정부를 위협하는 무리의 수장인 '시시오'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시시오는 켄신의 후임으로 정부에서 시키는 암살 같은 일을 하던 자인데, 너무 위험해서 처리를 하려다 실패한 자라는
것이다. 겨우 살아난 시시오는 부하들을 모아 정부 전복을 꿈꾸고 있었다. 켄신은 시시오가 벌인 살육의 현장을 보고 마음을 굳힌다. 결국 그는
교토로 떠나지만, 시시오의 부하인 '소지로'와 대결을 벌이다 역날검이 부러지는데…….
1편과 달리 이번 편은 그냥 그랬다. 정부에서 시시오에게 한 짓을 보면, 복수를 계획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보살(?)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드무니까. 어차피 무력과 피로 세워진 정부인데, 테러로 무너지는 게 무슨 큰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Neon Genesis Evangelion, 1995'을 보면서 겨우 열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세계의 존망을 맡길 수밖에 없는 무력한 정부라면 무너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른들이 똥을 싸지르고
꼬꼬마아이들에게 치우라고 시키면서, 그것도 제대로 못 치운다고 죄책감을 불어넣고 윽박지르는 사회라면 뒤엎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이 괴물을 키워놓고,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다. 그래서 한 사람을 지목해서 네가 희생해서 괴물을 막아내라고
한다. 제때 괴물을 막지 못해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그건 괴물을 만들어낸 자기들이 아닌 막아내지 못한 그 사람의 탓이 되어버린다. 뭐 이런
개똥같은 헛소리를 해대는지 모르겠다. 착하게 살려니 호구로 보는 격이다. 아, 토사구팽 兎死狗烹은 사냥이 끝나면 쓸모없게 된 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만약에 시시오가 지방에서 마을들을 접수하면서 공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배를 했다면, 상황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하긴 그런 정치를 펼칠
성격이었으면, 정부에서 토사구팽할 리도 없었겠지.
영화는 결국 켄신이 얼마나 호구 같은지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암살자 노릇을 하면서 지은 죄를 갚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죄책감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기들의 뒤치다꺼리를 시키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한다. 결국 켄신은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락한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려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호구다. 그런 존재들은 켄신이나 시시오뿐만이 아니다. 예전에 정보기관에서 일하다가 버림받고 다른 일을
하는 집단도 등장한다. 필요할 때는 사탕발림으로 써먹다가, 나중에 필요 없어지니 입막음을 위해 제거 대상이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정부라는 것이 얼마나 줏대 없고 비겁한, 그러면서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 모리배들의 집합체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고위층에게
사람들은 정권을 잡기 위한 도구였고, '충 忠'이라든지 '신의 信義'라는 말은 도구를 낚기 위한 미끼였다. 자기들이 하는 모든 것, 심지어
배신하는 것까지 대의를 위한 것이고, 거기에 반항하는 사람은 반역도였다. 그들을 처리하는 것에 자기들의 손은 더럽히지 않는다. 이이제이
以夷制夷. 암살자는 암살자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실패하면 일처리를 맡긴 사람의 탓을 하면 된다. 이상하게 19세기 일본의 모습에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지금은 21세기인데 말이다.
시시오를 연기한 배우가 후지와라 타츠야라는데 붕대를 감고 있어서 못 알아봤다. 중간 회상 장면에서 켄신이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고 나오는데
꽤 예쁘게 잘 묶였다. 앞머리도 자연스럽고 부러웠다. 언제쯤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서 민폐 스타일 여주인공을 안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스타일이 유행인가? 그럼 나도 이제부터 애인님에게 민폐를 끼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