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제 - The
Silenced, 2015
감독 - 이해영
출연 - 박보영, 엄지원, 박소담, 공예지
1938년, 외딴 곳에 병약한 소녀들이 모인 요양원 비스무레한 기숙학교가 하나 있다. 차가 없으면 들어올 수 없는, 주위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소녀들은 학교에서 주는 약을 먹고, 건강식을 섭취하고,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우수학생으로 뽑힌 두 사람은
일본으로 유학까지 보내주기에,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소녀들은 은근히 경쟁심까지 갖고 있었다.
그곳에 한 소녀가 전학을 온다. 주란, 일본 이름으로는 스즈코. 기침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하고 뛰기조차 힘들었던 그녀는 다른 소녀들의 외면을
받는다. 그녀를 돌봐주는 것은 급장인 연덕, 가즈에뿐이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갑자기 사라진다. 교장은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주란은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소녀가 사라지기 직전에, 고통에 괴로워하며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후에도 주란은 우연히 소녀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급기야
건강을 완벽하게 되찾은 주란이 우수학생으로 뽑히자, 다른 소녀들의 시기와 질투는 극에 달한다. 그리고 연덕과 주란은 주란에게서도 이상한 증상이
보이자, 의문을 품고 파헤치려고 하는데…….
병약한 소녀들, 끼니때마다 먹는 약과 주사, 체력을 회복하다 못해 초능력에 가까운 괴력을 발휘하는 소녀 그리고 193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면, 학교나 약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너무 많은 힌트를 준 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첫 번째 소녀가
발작을 하면서 쓰러지는 장면에서부터 설마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의심은 기괴한 모습으로 신음하는 다른 소녀를 보는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목적이라든지 학교의 위치가 명확히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좀 놀랐다. 특히 겨우 도망쳤다고 생각한 소녀들이 느꼈을 절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이름과 자유를 빼앗긴 소녀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비밀 장소에서 서로를 한국 이름으로 부르며 보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학교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그 모든 것들을 참아낼 수 있었다. 매번 먹어야 하는 약도, 아프지만 맞아야 하는 주사도, 원하지 않는 일본
이름과 무서운 선생과 냉정하면서 차가운 교장도 다 그런 기대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들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이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름다우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심지어 살해당한 선생의 모습마저도 얼핏 보면 예쁘고 낭만적이었다.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확실히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교장과 진짜 저렇게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해빠진 애가 있을까라는 의심이 드는 주인공
주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비현실적일 정도로 예쁜 배경은 이게 영화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어쩌면 그래서 현실감이 덜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후반부에서 주란이 약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성공 때문인지 폭주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그 전까지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흐름을 보면 그렇게 변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걸 위해 그녀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일 테니까.
그런데 왜 아쉬운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 전까지는 스릴러 영화였는데, 후반부에는 액션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끝까지 스릴러를 유지하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