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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부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저자 - 이우성
그림 - 미우
한글은 참 신기하다. 어떻게 띄어쓰기를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 시집의 제목 역시 그렇다. '로맨틱 한시'라고 적혀있지만, 로맨틱한
시라고 잘못 읽어버리면 조금은 다른 시집이 되어버린다. 로맨틱한 시를 모아놓은 것은 맞지만,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모두 한국 고전 한시들이다.
지금까지 조상들은 거의 임금이나 부모 또는 자신의 이상향에 대한 시만 지었고, 가끔 여류 문인들만이 남녀 간의 사랑을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헐? 여기에 실린 시들을 보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비록 한자를 잘 몰라서 한글로 해석된 것을 봐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간질이는
시들이 많았다.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달달한 내용이 다 있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마음이 절절하고 아픈 내용도 있었다.
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헤어지는 일곱 단계에 맞춰서 분류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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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사랑 初戀之情』에서는 처음 만난 상대에 대한 설레임과 숨길 수 없는 두근거림을 담은 시들이 실렸다. 밝은 달밤에 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잠을 이룰 수 없는, 혼자 몰래 상대의 이름을 써보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뒤이은 『사랑의 기쁨 歡喜之愛』에서는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연인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서로의 민낯을 보아도 행복하고, 사랑이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이 나타나있다. 특히 '그대의 뺨에 나의 향기 남아'를 읽는 순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 귀여운 소녀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물론 일상생활 불가능한 나는 '도대체 얘들이 밤에 뭘 했기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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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변심 歡喜之愛』은 상대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느낀 불안감과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기세를 몰아 『그대를
원하고 원망해요 願恁怨恁』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에 대한 원망이 듬뿍 담겨 있는 시들로만 엮였다. 하지만 원망해도 욕은 하지 않았다.
조상님들, 고상하시다. 나 같으면 온갖 욕에 저주를 퍼부었을 텐데……. 기껏 한다는 저주가 다음 생에 당신과 내가 바뀌어 태어나 지금 내가 겪는
아픔을 느끼게 해보고 싶다 정도였다. 아, 너무 우아하잖아.
그 우아함은 『이별 후에도 사랑은 끝나지 않아 離別後愛』를 지나 『사랑의 슬픔 悲哀之戀』과 『사랑을 추억하다 追憶之愛』를 거치면서 완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떠나버린 임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은 이별의 슬픔을 승화시켜 자신이 살아갈
양분으로 만들었다. 우아하고 고상한 이별 과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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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한 편이 소개된 다음에, 그 시를 쓴 저자나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 이 시집을 기획한 시인의 개인적인 감상과 추억, 그리고
한시의 분위기와 적절하게 어울리는 그림까지 곁들여져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자와 별로 친하지 않아서 나중에 시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도, 그
분위기는 남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끔 배경에 그려진 삽화와 글자색이 맞지 않아서 시를 읽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좀 아쉬웠다. 검은색과 노란색이 보색관계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전혀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글자가 너무 작아서가 아니었을까? 다 좋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좀
아쉬웠다.
아! 제일 어이없는 시를 고르자면, '사랑의 기쁨'에 실린 임제의 것을 뽑겠다. 불륜을 하고도 시 하나 잘 써서 살아남았다니…….
불륜이라기보다는 원나잇인 것 같은데, 그것도 사랑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육체의 기쁨이 더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