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원제 - 殘り全部バケ-ション, 2012

  작가 - 이사카 고타로

 

 

 

 

  이름은 몇 번 본 작가이다. 영화 원작인 소설도 있었고, 호기심을 끄는 제목인 책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일본 작가는 그만’이라는 엉뚱한 생각 탓에 책을 들춰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인생에 일본 작가 한 명 더’라고 생각이 바뀔 거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총 다섯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각각 연결이 되어있으니까, 연작 소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부스지마’라는 암흑계의 거물 밑에서 일하는 ‘미조구치’와 ‘오카다’. 주로 남을 등쳐먹거나 협박해서 돈이나 다른 재산을 빼앗는 일을 한다. 그런 일에 염증을 느낀 오카다는 부스지마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랜덤으로 메일을 보내 친구하자는 말에 답이 오면 눈감아주겠다는 미조구치의 제안에 문자를 보낸 오카다. 뜻밖에도 부모의 이혼과 딸의 기숙사 생활로 해체하기 직전의 가족에게서 답이 온다. 오카다는 세 식구와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는데…….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은 미조구치와 오카다가 헤어지기 전의 일을 그리고 있다. 부스지마의 명으로 협박질을 하던 둘의 눈에 아버지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어린 소년이 들어온다. 오카다는 소년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곤도라는 사람을 끌어들여 기상천외한 작전을 펼친다.

 

 

  『불길한 횡재』는 오카다가 부스지마에 의해 제거된 이후, 미조구치와 새 파트너 오타가 맞닥뜨린 황당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의뢰를 받은 목표물인 여자를 납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의원 습격 사건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검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어럽쇼? 검문을 끝내고 현장을 벗어나 트렁크를 여니, 돈다발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언제 누가 왜 돈을 여기에 넣은 걸까? 납치된 인질까지 가세해 진상을 추리하는 세 사람. 뜻밖에도 사건은 의원 습격 사건과 불륜 치정 사건에까지 연결이 되는데…….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오카다가 흘리듯이 했던 말, ‘친구 아버지가 스파이였다.’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아버지를 스파이로 알았던, 오카다의 초등학교 친구였던 한 영화감독의 인터뷰 겸 회상이다. 여기서 오카다가 뜻밖에도 남을 잘 배려하지만 표현이 서툰 소년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은 교통사고 사기를 벌이다가 진짜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미조구치. 그런데 뜻밖에 그곳에 부스지마도 사고를 당해 입원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부스지마를 죽이려고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첩보가 입수된다. 새로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된 다카다는 부스지마의 심복으로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다. 다카다는 누가 왜 부스지마를 노리는지, 어떻게 그를 죽이려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마침내 범인을 알아낸 다카다. 하지만 거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등장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개성적이었다. 두목인 부스지마는 냉정하지만 카리스마가 철철 넘쳤고, 세 번째 이야기에서 납치당한 여자는 엉뚱하면서도 이성적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세 가족의 엄마는 속을 알 수 없지만 자상했고, 딸인 사키는 어리지만 영특하고 눈치가 빨랐다. 그런 개성들이 글에 생동감과 긴장감을 주고 동시에 집중하게 했다. 부스지마가 나오는 부분은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글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데, 으…….

 

  사람들을 협박하고 사기치고 온갖 나쁜 짓을 벌이지만, 결국 미조구치도 사람이었다. 정이 있고 다정다감하고 책임감도 있고. 처음에는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나중에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 시작은 오카다에 대한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조구치가 이 책의 주인공이지만, 숨겨진 주인공은 오카다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야기마다 그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마지막장까지 읽은 다음에야 제목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휴가처럼 유유자적하게 지내라는 게 아니었다. 평소에 하고 싶지만 못했던 일들을 휴가 때 하는 것처럼,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하라는 의미였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 없는 삶을 살 테니까 말이다.

 

  처음에 모든 이야기마다 다른 ‘나’라는 화자가 등장해서 누가 누군지 알아차리는데 조금 혼란스러웠다. 대개 이야기들은 주인공이 ‘나’라고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비해, 이 책은 각각의 이야기마다 화자가 달랐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는 사키와 오카다의 시점으로 왔다 갔다 해서, 누가 말하는 것인지 파악하느라 좀 힘들었다. 그래서 읽은 부분을 재차 넘겨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물론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방해받지 않고 진도가 술술 나갔다.

 

  책은 인물과 이야기만 톡톡 튀는 게 아니라, 대사마저 상큼하면서 취향저격이었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꽤 있었다.

 

  “과거만 돌아보고 있어봐야 의미 없어요. 차만 해도, 계속 백미러만 보고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사고가 난다고요. 진행방향을 똑바로 보고 운전해야지. 지나온 길은 이따금 확인해보는 정도가 딱 좋아요.”-p.40

 

  “멋대로 좋아하는 녀석들은 반대로 멋대로 화내고 멋대로 미워하기 마련이니까.”-p.179

 

  “그보다는 걸어서 집까지 찾아온 남자가 ‘네가 좋아!’하고 직접 말하는 편이 감동적일 텐데.”

  “상대에 따라 달라요, 분명.”나는 대답한다. 요즘 시대에 남자가 느닷없이 집까지 찾아오는 것은 감동보다 공포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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