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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산장 살인 사건 ㅣ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평점 :
원제 - 假面山莊殺人事件,
1995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이 책은 안타깝게도 띠지에서부터 스포일러를 하고 있다. '이런 반전은 없었다. 절대로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이중 삼중의 트릭'이라니!
그러니까 '독자 네가 지금 범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작가인 내가 그렇게 생각하라고 던져놓은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지. 사실 네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예상을 하고 난 다른 대안을 만들어뒀다는 말씀. 그런데 지금 이 대목을 읽고 아까 생각한 범인과 사건의 진상이 아니다싶어서
바꾼다면, 그것 역시 내가 만들어둔 덫으로 빠지고 있다는 의미지. 난 네가 그렇게 여기도록 살짝 힌트를 바꾸어놓았거든.'이라는 작가의 생각을
대놓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반전이란,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와, 뒤통수 제대로다!'하면서 놀라워해야 제 맛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띠지에서 뒤통수 칠 거니까 준비하고 있으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아쉽다. 삼중 트릭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교통사고로 죽은 도모미. 그로부터 석 달 후, 도모미의 부친인 노부히코는 별장으로 아는 사람을 초대한다. 도모미의 부모인
노부히코 부부와 오빠, 사촌 여동생, 비서 등등의 지인과 도모미의 약혼자인 다카유키까지 모두 아홉명이 모인다. 도모미의 죽음 이후라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긴장감이 그들 주위를 맴돈다. 그런데 그 날, 경찰에 쫓기던 두 명의 은행 강도가 별장에 침입해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다.
다음날 도모미의 사촌인 유키에가 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도대체 유키에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또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려는 시도를
번번이 무산시키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도모미는 진짜로 사고로 죽은 것인가?
강도 사건도 처리해야하고 도모미의 죽음에 얽힌 비밀도 밝혀야 하고 동시에 유키에를 죽인 범인까지 찾아야 한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기'가 아니라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어야 강도와 어떻게 해보겠는데, 누가 등 뒤에서 칼을
들고 있는지 모르니 뭘 해볼 수가 없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다 알리바이가 있고, 달리 보면 모두가 다 용의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이 바뀌는지. 하긴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짓을
했겠지.
그런데 살의를 가졌는지의 여부를 밝히려고 했다는 말은 좀 이상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짓은 단순히 살의를 가진 것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
살의를 가지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다. 비록 그가 한 짓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아니지만,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상한 건 또 있다. 살의 여부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했다면, 다른 사람은 왜 그냥 내버려두는 걸까? 살의를 가진 사람을 A라고 하고,
다른 사람을 B라고 하자. B가 A에게 다가오지만 않았으면,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숨겼다면, A는 살의를 품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살의만으로
A를 단죄하려했다면, 유혹하려했다는 것만으로도 B를 공범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B는 A에게 왜 그랬냐고 묻는다. A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아니 이 요망한 것이!
아, 이런 성격의 사람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여지를 남겨주고, 정작 그 사람들이 자기에게 대쉬하면 자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발뺌하는 사람. 그런데 이 책에서는 살의를 가진 A는 처벌하고, 유혹하려했던 B는 그냥 넘어간다. 아, 물론 B가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A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A가 자뻑이 심한 성격이라, 조금만 자신에게 잘해주면 다 자길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유형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단순 살의 여부로 A를 단죄하려는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그 행동에 옮긴 것을 이유로 처벌하라고! 유혹을 받는
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운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나쁜 거잖아. 단순 살의만으로 처벌하지 말라고! 누구 마음은 좋은
마음이고, 누구 마음은 나쁜 마음인가?
트릭이라든지 사건의 진행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마무리가 어쩐지 개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