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 손아람

 

 

 

 

 

  이 책은 1990년대 후반, 이른바 군사 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시작된 이후, 특히 해방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집권한 이후를 다루고 있다.

 

  그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학생 운동이나 시위가 예전처럼 호응을 얻지 못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그랬다. 아마 공공의 적이었던 군사 정권이 이미 물러났는데 또 뭐 할 것이 있겠냐는 분위기가 흘렀던 것 같다. 거기에 IMF 위기가 닥치면서, 나라가 당장 망할 것 같은데 무슨 시위냐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시위를 위한 시위를 한다는 얘기도 들은 기억이 난다. 독재 정권이 사라졌으니 우리의 적은 북한이고, 그들이 따르는 사상을 따르는 것 같은 학생들의 구호는 허황되고 불온한 것으로 여겨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학 내에서 운동권이라 불리는 학생들이다. 아마 그들이 지금의 정의당이나 민노당 내지는 얼마 전에 헌재 판결로 해체된 통합진보당을 구성하는 사람들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 열정적으로 이상을 좇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단편적인 사건들의 나열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 평등을 주장하고 농활에서 남자들에게 요리를 시키던 미쥬는 외국인 남편을 위해 인도 요리를 배우는 경제학자가 되었다. 시위에 앞장서다 경찰에 잡혀갔던 대석은 검사가 되었다. 생방송 발언을 새치기하고 술값을 미루던 윤구는 국회의원 경선표를 조작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변해버렸을까? 그 대답은 뜻밖에도 시위 학생들을 잡아 취조하던 경찰의 입에서 나온다.

 

  “세상을 바꾸려고 젊음을 다 쏟아 부었는데, 뒤늦게 세상이 바뀌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차라리 세상이 되어버리는 거야. 아주 철저하게 세상이 되어 낭비한 젊음을 보상받는 거지,” -p.407

 

  아……. 그렇구나. 그래서 과거 학생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이 그 누구보다 집권당의 입에 맞는 소리를 해대고 있고,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정권에 빌붙어 의원직을 하고 있는 거구나. 그들은 지금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청춘을 보상받으려는 것이구나.

 

  사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무슨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시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또는 자기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이성이 그 모임에 들어가 있어서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남학생들은, 그 여학생과 틀어지면 결국은 조직을 떠나버렸으니 말이다. 그건 여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문득 그건 그들이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서울대생이었다. 대학 간판만으로도 웬만한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 게다가 어떤 학생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고, 또 다른 학생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사실 주인공도 그리 좋은 학점을 받지 않았고 시위 경력도 있지만,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서울대생이 아니었다면, 소위 말하는 지잡대 출신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들은 그냥 호기심에 기웃거렸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정치나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개화시키겠다는, 일종의 우월감으로 발을 디뎠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을 느낀 것은, 농활에서 일어난 성희롱 발언 사건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모 유력 일간지에 과거 노인네들이 꼬꼬마들에게 ‘고추 좀 보자!’라고 말하던 시절이 그립다는 칼럼이 버젓이 실리는데……. 그러다가 문 경사의 말대로, 자신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포기하는 것이다.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동화되어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흑역사로 파묻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하던 권력자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따라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왜 예전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요즘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조금은 깨우칠 수 있었다. 결론은 보상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바랐던 이상을 지키고 있는 진우는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임에 가입한 계기부터 달랐다. 여자를 따라 온 것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서 들어왔다. 그래서 그는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나보다. 그곳에서 남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거부한 사람은 진우뿐이었으니 말이다.

 

  대우 자동차 시위 이후, 태의는 진우를, 대석은 태의를, 전학협 간부는 대석을, 이런 식으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을 경찰 손아귀에 밀어 넣고 자기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모두 다 그랬으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 고리를 끊은 것은 진우였다. 그 때문에 그는 징역형을 살아야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사람은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영부영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이란 자기가 믿는 사람이나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