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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어 주는 신기한 이야기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박성준 외 옮김 / 레디셋고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원제 -
Just So Stories, 1902
작가 -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제목은 ‘아빠가 읽어주는’이지만 ‘고모가 읽어주면 안 될 게 뭐가 있어?’라는 생각으로 고른 책이다. 제목 그대로 참으로 신기한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예전에 읽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Baron Munchausen, 1785’보다 규모 면으로는 훨씬 대단했다.
음, 옛날 사람들은 뻥도 창조적으로 잘 쳤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린 아이들에게 아빠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 있었던, 여러 가지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낙타의 혹은 왜 생겼는지, 캥거루는 왜 그렇게
껑충껑충 뛰는지, 알파벳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등등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동화가 그림과 함께 들어있었다. 특이하게도 총 12개의 이야기를 네
명의 아빠가 세 개씩 맡아서 번역을 했다. 아, 그래서 아빠가 읽어주는 이야기인가보다. 그래서 이야기가 세 개 끝날 때마다, 그것을 번역한
사람의 간단한 소감이라든지 이 책에 대한 생각이 들어있다.
그런데 읽다가 ‘어?’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코끼리의 코는 왜 길어졌을까?’라는 글인데, 예전에 어디선가 읽고 막내조카에게 잠자기 전에
들려줬던 이야기였다. 매일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에 고모와 자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동화를 대여섯 개 이야기해주고 동요 열곡을
불러주는 걸 두 번은 반복해야 자곤 했다. 그 때, 이 이야기도 꽤 재미있게 들었다. 악어가 아기 코끼리 코를 물었다는 대목에서 ‘앙!’하면서
조카 코를 물겠다고 하면, 자기 코를 움켜쥐고 자긴 사람이라고 발버둥을 치곤했다.
책을 읽던 막내 조카도 그 기억이 났는지, ‘고모, 이 이야기!’하면서 아는 척을 했다. 그러면서 ‘고모는 옛날에 이 책을 읽었구나.’라면서
놀라워한다. ‘물론이지, 고모는 책을 많이 읽었어.’라고 말하자, ‘대단해.’라면서 감탄한다. 아, 이렇게 아는 척을 하면 안 되는데…….
이러면 고모를 모르는 게 없는 사람으로 알 텐데……. 그건 나중에 닥치면 생각하자.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어쩜 이런 뻥을 진지하고 나름의 논리를 갖춰서 칠 수 있을까?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파시 교도의 케이크를 빼앗아 먹은 대가로 가려움증에 걸려서 가죽이 쭈글쭈글해진 코뿔소의 얘기는 ‘삥뜯지 말자’는 큰 교훈을 줬다. 덩치만 믿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큰 코 당한다는 내용이었다. 환경에 맞게 자신의 피부색과 가죽무늬를 바꾼 에티오피아 사람과 표범의 이야기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예전에는 인간과 맹수가 힘을 합쳐 사냥을 했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왜 작가는 굳이 콕 집어서 에티오피아
사람이라고 했을까? 어쩌면 흑인이라는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쓰지 않기 위함일까? 이미 백 년 전에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가 있었다니,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고양이는 어떻게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을까?’라는 제목인데, 왜 남자와 개가 고양이의 마지막 말에
꼬투리를 잡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여전히 혼자 다니는 야생 고양이이고, 나에겐 어디나 다 비슷하답니다.”라는 말이 그렇게 빈정상할
대답일까? 그 말만 안 했으면 자기들도 고양이를 좋아했을 텐데, 그 말 때문에 괴롭힌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그 둘은 고양이를 동굴에
들여놓기 싫었기에 괜히 트집을 잡아 괴롭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동물이 주된 소재이지만, 인간 중심의 시각을 갖고 있다. 하긴 인간이 적었으니 당연한 말이겠다.
상상력에 놀라고, 전개에 놀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