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he
Labours of Hercules, 1947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집 중의 하나이다.
은퇴해서 호박을 기르기로 마음먹은 포와로는, 마음에 드는 사건 몇 개만 골라서 해결하고 마무리하기로 한다. 그래서 자기와 이름 철자가 똑같은
헤라클레스가 했던 12개의 모험을 본떠서 12개의 사건을 맡기로 한다. 그러니까 신화를 현대적, 물론 크리스티가 살았던 20세기의 맞춰서
재해석하고 있다.
『네메아의 사자』에서는 사자가 아닌, 발바리가 사건에 등장한다. 그런데 사건 해결보다, 포와로가 가끔 말하는 금발 비서와 결혼하기 위해 부인을
독살하려했던 비누 공장 사장이 누군지 제일 궁금했다.
『레르네의 히드라』는 잘라도 잘라도 사라지지 않는 히드라의 머리를 소문으로 비유했다. 병든 부인과 의사인 남편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는 약제사
아가씨. 이정도면 뭐 굴뚝을 때지 않아도 소문이 나는 건 시간문제다. 거기에 부인이 사망하면, 굴뚝은 활활 타다 못해 집까지 태워버릴
기세다
『아르카디아의 사슴』은 사슴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 순진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포와로는 여기서 두 사람을 맺어주는 중매쟁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는 커다란 덩치에 위험한 범죄자를 멧돼지에 대입시켰다. 오래된 친구인 경감의 부탁으로 스위스의 어느 산장에 가게 된
포와로. 그런데 그곳과 육지를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고장이 나고, 포와로를 비롯한 다른 손님들이 고립이 된다. 그곳에 악명 높은 범죄자와 그의
부하들이 숨어있다는 데, 과연 포와로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 중의 하나이다. 30년 동안 청소하지 않은 외양간을 강을 이용해 처리한 헤라클레스처럼,
포와로 역시 큰 거 한 방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 스캔들보다 섹스 스캔들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의 부정부패에 대한 처벌은 받지 않았다. 비록 은퇴를 했지만, 영향력은
남아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의 부정부패를 공개하려던 잡지사만 불쌍하게 되었다.
단지 그와 그가 속한 정당이 그나마 제일 정치력이 좋았고, 그에 대항하는 당은 위험한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반격을 할 기회도 못가진다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생각하게 했다. 상대방이 악당이기 때문에, 그를 무찌르기 위해서 우리 편의 심각한 부정은 눈감아줘야 한다는 뜻인데……. 거기다
집권당이 잡지사를 압박하기 위해 사용하려던 수단이 무척이나 익숙한 것들이어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속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미스 마플의 말이 떠올랐다.
『스팀팔로스의 새』는 청동 방울을 울려 새들을 쫓아낸 헤라클레스처럼, 전보를 펴서 협박범과 사기꾼을 잡아내는 포와로의 활약이 그려지고 있다.
해외여행을 갈 때, 외국어는 꼭 할 줄 알아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크레타 섬의 황소』는 다 읽고 나면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정신병이 유전되는 집안의 후계가 미쳤다고 의심받는 중에, 포와로가 개입한다. 청년은
미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인가? 결말이 슬펐다.
『디오메데스의 말』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신화의 말을 마약에 비유했다. 여자는 젊고 예뻐야 마약에 취해도 재활을 도와줄 누군가가 짠하고
등장한다는…….
『히폴리테의 띠』는 최근에 감상문을 올린 '비둘기 속의 고양이 Cat Among the Pigeons, 1959'를 연상시킨다. 명문 여학교에서
일어난 실종사건이라는 점과 포와로의 '무릎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여학생들의 사인공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포와로의 모습이 너무도
유쾌했다.
그런데 내가 독해력이 떨어진 것인지, 도대체 그림을 훔친 건 누구인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포와로는 이렇게 말한다. "위니가 진짜 이곳에 와서는 안 된다는 데 있었습니다. 당신은 진짜 위니와 안면이 있는 처지였으니 말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당신이라 불린 사람은 실종 도난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변장한 가짜가 중간에 도망쳤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
다음에 당신이라 불린 사람이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하지만 왜요? 뭣 때문에 제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겁니까?"
헐, 당신이라는 사람이 진범이라는 뜻? 그럼 포와로의 대사는 뭐지? 이해할 수 없다.
『게리온의 무리들』은 사이비 종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문제는 교주가 신도들을 죽여서 재산을 빼앗는다는 점이다. 포와로의 밀명을 받고 교단에
침입한 카너비 양의 용기가 대단하다.
『헤스페리스의 사과』는 오래 전에 도둑맞은 물건을 찾아달라는 의뢰에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다소 낭만적이었다. 중간에 나오는 포와로의
재치 있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아틀라스라는 이름의 남자가 포와로를 업고 힘들어하자,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지금 떠받치고 있는 건 지구 전체의
무게가 아니라고! 기껏해야 이 에르큘 포와로의 몸무게일 뿐일세!"
『케르베루스를 잡아라』에서 포와로는 우연히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반대편에서 베라 로사코프 백작 부인과 마주친다. 그녀가 '지옥'에서 만나자는 말을
해서 충격을 받지만, 사실 그곳은 그 당시 유행하는 나이트클럽이었다. 이윽고 그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거래를 눈치 채는데……. '빅 포
The Big Four, 1927'에서는 어렸던 백작부인의 아들이 벌써 결혼할 때가 되었다는 대사에서 시간이 참 잘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 책이 나오고 20년이나 흘렀으니…….
여전히 백작 부인은 호탕한 것이 여걸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올리버 부인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느끼는
것인데, 포와로에게 올리버 부인은 사고뭉치 여동생 느낌이고, 로사코프 백작 부인은 문제를 일으키긴 하지만 동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 초반에 포와로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고 충격 받는 장면에서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 마음, 나도 잘
이해한다. 처음 그 신화를 읽었을 때 나도 그랬으니까. 이건 뭐 미친놈에, 바람둥이에, 불륜은 기본으로 강간이나 하는 놈들이 무슨
신이람?
이 책에서 포와로는 은퇴하고 호박이나 기르겠다고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그가 호박을 기르던 동네에서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