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Annabelle, 2014
감독 - 존 R. 레오네티
출연 -애나벨 월리스, 워드 호튼, 알프레 우다드, 에릭 라딘
언젠가도 말했지만 애인님과 내가 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고 하면, 각자 표 끊어서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을 뜻한다. 이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쪽이 먼저 영화가 시작하기에, 끝나자마자 애인님에게 스포일러를 문자로 보내 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쪽이 끝나기 전에 애인님
쪽에서 영화가 시작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불발이 되었다. 진짜 아까웠다.
하지만 상암 CGV님이 어쩐 일로 하루에 두 번이나 이 영화를 상영해주시니, 집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영화 '오큘러스 Oculus,2013' 때는 무려 한 시간이나 걸리는 다른 구로 가야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CGV님.
이 영화의 감독은 제임스 완의 전작들, 예를 들면 '데드 사일런스 Dead Silence, 2007',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Insidious: Chapter 2, 2013'에서 촬영을 담당했다. 그런 인연으로 이 작품 '애나벨'의 감독을 맡았나보다. 그 전에 '나비
효과 2 The Butterfly Effect 2, 2006'라든지 '모탈 컴뱃 2 Mortal Kombat: Annihilation,
1997'도 감독했다고 한다. 아,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영화는 '컨저링 The Conjuring , 2013'에 등장해서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한 인형 애나벨의 탄생과 활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컨저링' 시작 부분에 워렌 부부가 귀신들린 인형에 대해 얘기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워렌 부부에게 애나벨을 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 전 주인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의사인 존과 인형 수집과 옷 만들기가 취미인 미아 부부. 임신한 미아를 위해 존은 그녀가 찾아 헤매던 인형을 하나 구입한다. 세트를 완성했다고
좋아하던 미아.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중년 부부가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딸 애나벨과 그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급기야 그
둘은 존과 미아 부부를 공격한다. 미아는 칼에 찔리고, 옆집 딸은 존이 선물한 인형을 안고 자살한다. 그녀의 피가 인형에게 흘러 들어가고, 그
날 이후 존과 미아 부부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꺼림칙한 기분에 인형을 버리고 이사했지만, 놀랍게도 이삿짐 속에서 다시 발견된다.
그리고 인형의 몸에 깃든 악령은 부부의 아가 레아를 노리는데…….
영화는 음, 강약 조절이 약간 실패한 기분이었다. 배경 설명을 너무 자세히 하느라, 초반은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죽은 애나벨의
피가 인형 눈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앞으로 뭔가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감을 품게 했다. 이후 모든 장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남편이 팝콘을 오븐
위에 올려놓으면 불이 저절로 켜지면서 타버릴 것이라 상상을 하고, 문이 열려있으면 저절로 닫힐 거라는 추측을 하며 혼자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인형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계속 그런 생각을 해서, 나중에는 아무 죄도 없는 인형을
나쁘게 보는 건 아닐까하는 미안함마저 들었다. 인형이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악마를 불러오려했던 인간이 나쁜
거였으니까.
영화는 궁금함만 잔뜩 남겨두고 끝이 났다. 매일 쿵쾅거리던 위층엔 누가 살고 있는지, 레아가 사고당할 것을 예측한 그림을 그린 것이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위층 꼬마가 그린 것 같은데, 그러면 그 아이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걸 보고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1973'에서 악마가 어린 리건을 공략할 때, 위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
현상일까?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게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제일 황당했던 부분은, 후반부에 나오는 신부님의 대사였다. 인형이 사라졌다는 얘기에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다음 주인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한다. 아니, 신부님! 신부님 관할 교구 내에서만 아무 일이 안 생기면 끝나는 건가요? 악마 들린 인형이라면서요? 신부님도 공격받아서 병원
신세까지 졌잖아요! 걱정 안 되시나요? 다른 교구에라도 비상 연락망 돌려서 대비를 해야죠! 악마가 인형의 몸을 빌려 나오는 거라면서요! 악마요,
악마!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가는 악마! 긴장 안 해요? 왜 그렇게 해맑아요? 걱정하는 표정이라도 지어야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빈티지에 레어 아이템이라고 해도, 그 인형처럼 흉측하게 생긴 것을 선물로 구입한다는 게 특이했다. 원래 인형은
귀엽고 폭신폭신 안아주고 싶게 생겼는데, 영화의 인형은 구입하는 사람의 취향을 의심할 정도로 무섭게 생겼다.
왼쪽이 영화에서의 인형, 오른쪽이 실제 애나벨 인형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너무도 귀여운 아가 레아였다.
그나저나 내 옆에 앉아서 두 번이나 전화 받던 아줌마, 영화 재미없다고 그랬죠? 계속 팝콘 먹고, 전화 받고, 나갔다 오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당연히 재미가 없죠. 진짜 짜증이 나서 욕하고 싶은 거 참았어요. 영화 봐야하니까요. 아줌마 같은 사람은 차라리 극장 안 가는 게 도와주는 거
같아요. 왜 내가 첨보는 아줌마 전화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