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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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Hesses Frauen

  부제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저자 - 베르벨 레츠

 

 

 

 

  미리 말해두지만, 헤세의 작품은 어린 시절 어린이 버전으로 접한 게 다이다. 완역본이나 청소년 내지 성인 버전은 읽어본 적이 없다. 어린이 버전으로 읽었을 때 무척이나 지루하다는 느낌이 남아있어서, 커서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리도 두 번째로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난 이혼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불륜이라든가 책임과 의무를 갖지 않는 결혼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못한다.

 

  애인님이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냐고 묻기에, 헤세의 전기라면서 이렇게 대답해줬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픈 유약한 청년이 자기 좋다고 나대는 여자랑 결혼을 했어. 그녀가 생활력이 아주 강해서, 자기가 글만 쓰고 있어도 문제없을 거 같았거든. 그러면서 섹스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는지 아들만 셋을 낳았지. 그리고는 글 쓴다는 핑계로 가정을 돌보지 않고 싸돌아다닌 거야. 부인은 아이들 키우고 집안 관리하는데, 자기는 여러 사람 만나고 좋다는 곳으로 여행을 다닌 거지. 일종의 방치 플레이를 한 거야. 그래서 부인이 신경쇠약에 걸려서 상담도 받고 그러니까, 옳다구나 하고는 부인이 정신병에 걸렸다고 이혼하자고 한 거야.

 

  사실 그 당시 부인보다 더 어리고 돈 많은 집안 딸내미가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결혼을 하면 어쩐지 얽매이는 것 같아서, 부하 여직원과 사귀는 유부남 상사들이 하는 것처럼 질질 관계를 끌었어. 부인과 이혼만 하면 너랑 살 거야라면서 단물만 빼먹는 짓을 한 거지. 하지만 여자애 아빠가 길길이 날뛰니까, 궁시렁대면서 첫 번째 부인하고 겨우겨우 이혼하고 그 애랑 재혼을 했어.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얘한테 관심이 팍 식은 거야. 여자애도 자기가 생각하던 남자의 이미지와 좀 다르니까 실망도 하고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결국 또 이혼했어. 그리고 이 남자는 마지막으로, 어릴 때부터 자기 팬클럽 회장이었던 빠순이하고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지. 그런데 이 팬클럽 회장이 말이야, 앞의 두 여자하고는 좀 달랐어. 그 남자의 여성 편력을 다 보았기 때문에, 자기가 통제하려고 했었지. 남자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싸우기 지쳐서, 좋을 대로 하라고 했고. 웃기는 건, 이 남자가 세 번째 부인과 살면서 첫 번째 부인과 화해를 했다는 거지. 그제야 그녀가 얼마나 좋은 여자였는지 깨달은 거야. 그리고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들과 그 가족들, 며느리와 손자손녀와도 자주 왕래를 했대.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노벨상도 받고 유명세를 누리다가 늙어 죽었어.”

 

  그러자 잠시 침묵을 하던 애인님이 말했다. “그 책, 설마 헤세의 안티가 적은 거 아니야?” 순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원제의 Frauen은 부인이 아니라, 여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헤세의 여인들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 세 명의 부인 말고도 그와 교감을 가졌던 여자들은 훨씬 더 많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헤세의 친구로만 남은 것이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여자들은, 그리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친구일 때는 어느 정도 예의와 거리를 두고 있어서 몰랐지만, 막상 살을 맞대고 살아보니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세 명의 부인에게 결혼은 영혼과 육체의 완전한 합일로 함께 가는 것이었겠지만, 헤세에게 결혼은 피할 수 없는 어떤 상황으로부터의 도피이자 집안일을 대신 돌봐주는 경제적 조력자를 얻는 것과 비슷했다. 또는 자신에게 돌진해오는 여자를 막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일수도 있다.

 

  그러니 부인들은 옆에 자기 남편이 있어도, 그가 자기 남자라고 여겨지지 않았고 방치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부인들보다는 친구들과 더 자주 여행을 다녔다. 부부지만 각자 생활을 한 것이다. 자연스레 여자는 자신이 그의 부인인지 아니면 그의 집사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어머니를 원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건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고,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두며 언제나 갈아입을 깨끗한 옷과 단정한 집 그리고 먹을 것을 준비해놓는 어머니. 그렇기에 세 번째 부인인 니논이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하자 헤세가 불임 수술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는 건 중대한 범죄이니까. 그 대목에서 니논이 무척이나 불쌍하게 여겨졌고, 헤세에게는 알고 있는 모든 욕을 다 해댔다.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헤세는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했던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자꾸 들었다. 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성별이 남자인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 단어가 종종 눈에 들어왔다. 절대로 내 눈에 음란마귀 스캐너가 장착되어서 더 잘 찾은 건 아니다.

 

  결혼보다는 썸과 연애 단계에서의 밀당을 더 좋아한 남자,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건 아니었던 남자. 여자보다는 남자들과 더 친밀하게 지냈던 남자. 젊은 시절에는 정신과 의사의 처방이 없이는 살 수 없었던 남자. 바로 헤르만 헤세였다. 부제에서는 순수함을 열망했다고 하는데, 글쎄? 하는 짓을 보면, 자기중심 적에다가 자기주장만 있고 책임이나 의무는 지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 꼭 어린애 같기는 했다. 그리고 순수하다기보다는 부인들의 등골을 쏙 빼먹은 것 같은데…….

 

  하지만 언제나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하는 법. 다른 작가가 쓴 책에서는 또 다르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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