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성난사람들 - [초특가판]
시드니 루멧 감독, 헨리 폰다 출연 / 피터팬픽쳐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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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12 Angry Men , 1957

  감독 - 시드니 루멧

  출연 - 헨리 폰다, 리 J. 콥, 에드 비글리, E.G. 마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일급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는 한 소년이 있다. 이제 그의 운명은 12명의 배심원에게 달려있다. 평결을 내리기 위해 회의에 들어간 배심원들은 모든 것이 명백한 사건이라며 소년의 유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이 더운 여름날에 빨리 표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단 한 사람(헨리 폰다)만 빼고. 그는 목격자의 증언이나 검사가 내놓은 증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좀 더 토론을 해보자고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5분 만에 결정하는 건 너무 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재판을 보면서 이상했던 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상영 시간 내내 거의 한 장소, 그러니까 배심원 실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처음과 마지막 부분의 법원 전경, 그리고 그들이 가는 화장실을 빼고는 좁은 방 하나가 배경의 전부이다. 당연히 배우들의 움직임도 그리 크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하거나, 창가에 서서 바깥을 보기도 하고, 증인의 움직임을 재연해보고, 성질을 내며 책상에 걸터앉는 게 다이다.

 

  그런데 영화가 지루하지 않다.

 

  어릴 적에 텔레비전에서 처음 봤을 때는 어려서 그런지 보다가 졸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니,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헨리 폰다가 자신의 품고 있던 합리적인 의심을 하나둘씩 얘기할수록, 다른 11명의 반응이 참으로 다양하고 흥미로웠다. 소년이 사는 빈민가를 들먹이며 그런 곳에서 자란 아이는 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 줏대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이 싫어서 다른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 등등 어쩌면 이렇게 특징을 잘 잡아냈는지 놀랄 정도이다. 그와 동시에 목격자 증언의 허점을 찾아내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도대체 변호사는 뭐하고 있던 거야! 아무리 의욕이 없다고 해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얼굴도 이름도 나오지 않은 변호사였지만,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만약에 헨리 폰다가 합리적인 의심을 품지 않았다면? 배심원장이 처음부터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했다면? 그랬다면 소년은 아버지를 죽인 일급 살인죄로 사형을 당했을 것이다.

 

  50년도 전의 영화지만, 저런 일이 지금도 수없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오싹했다. 아니, 일어날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일어나고 있다. 편견이나 첫인상 때문에 상대에 대해 오해를 하고, 사람 자체가 아닌 주위 환경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남의 일이라고 방관하듯이 구경만 한다든가,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할까봐 은폐하려는 일이 너무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헨리 폰다가 맡은 배역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에서 그가 반대 의견을 홀로 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원망했다. 집에 가야하는데, 야구 경기 보러 가야하는데 왜 발목을 잡냐며 뭐라고 했다. 영화에서는 11명만 상대하면 되지만, 현실에서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헨리 폰다에게는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겼지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의로운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걸지도…….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참 꼼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토론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옷은 단정했다. 아무래도 배심원으로 오는 것이니 잘 차려입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고 설상가상으로 선풍기까지 고장 나면서, 사람들은 겨드랑이는 물론이고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거나 주르륵 흘러내리는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에게 화를 낸다. 감독은 땀의 양과 복장 상태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장 난 줄 알았던 선풍기가 작동을 시작하고 밖에서는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결론을 내린다.

 

  논리적인 토론이란 바로 이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였다. 또한 사람이란 얼마나 남의 말에 좌우되기 쉬운 동물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다 보고나서도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 그들은 왜 넥타이는 안 풀었던 걸까? 더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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