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악: 슬픈 살인의 기록
프랑크 칼푼, 엘리야 우드 외 / 브레이브브라더스 컨텐츠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Maniac , 2012

  감독 - 프랭크 칼폰

  출연 - 일라이저 우드, 노라 아르네제데, 아메리카 올리보, 메건 더피

 

 

 

  가끔 영화를 보다보면 안타까운 배우들이 있다. 영화에서 맡은 배역이 관객들에게 준 인상이 너무 깊어서 다른 작품에서 제대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배우들이 그런 류이다. 물론 안소니 홉킨스처럼 그 역할을 더 발전시켜서 성공적으로 명성을 이어간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연기 내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배우들은 그 배역에 묻혀서,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본명보다는 그 캐릭터의 이름이 더 익숙하다. 예를 들면, ‘나 홀로 집에’에서 케빈역을 맡았던 맥컬리 컬킨이나 ‘해리 포터’의 해리였던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있다. 이번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인 일라이저 우드도 마찬가지였다.

 

  변신을 꾀한다고 수염을 기르고 몸집을 불렸으며 정신분열이 의심되는 연쇄 살인마로 나왔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순진한 눈망울을 가진 귀여운 프로도였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골룸에게 먹혔네.’ 내지는 ‘샘이 없어서 저러는 걸 거야.’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 제목이 ‘슬픈 살인의 기록’이라는데, 뭐가 슬프다는 건지 모르겠다. 희생된 여자들과 그 가족에게는 슬픈 사건이겠지만,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영화가 거의 주인공인 살인자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의 입장에서 슬픈 살인 어쩌고 하는 것 같다.

 

  문제는 전혀 슬프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왜 그렇게 살인을 하고 다니는지 이유는 영화에서 나온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회상이나 환각을 통해 추측가능하게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살인을 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몸을 마구 굴렸던 엄마 때문에, 여자에 대한 환멸과 공포를 느끼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이 그를 살인으로 몰고 갔다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여성의 머리 가죽을 산채로 벗겨내 자신이 만드는 마네킹에 씌워 환상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다른 범죄 수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뤘던 유형이다. 그래서 저럴 수가 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질문이 나왔다.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가 다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물론 살인자 중에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좀 많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에게 동정표를 주려면, 좀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동정할 수 있는 계기를 줘야했다. 단지 엄마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섹스 하는 걸 봤다고 해서 살인자가 된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마치 동성애자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고 동성애자가 될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아쉬웠다.

 

  좀 더 미친놈으로 만들거나, 과거에 엄청난 사건이 있어서 애가 정상으로 자랄 수 없었다고 해야 했다. 확실하게 다중인격으로 보여주거나, 환각과 현실을 좀 더 뭉뚱그려서 나타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설프고 어정쩡하게 약간 정상인 그와 맛 간 그를 번갈아 보여주느라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들었다.

 

  산 채로 여자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내는 장면은, 좀 많이 잔인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