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Remembered Death, 1945년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어쩐지 이 책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 달의 크리스티 도서 리뷰를 이제야 올릴 수
있었다. 하아, 이건 뭐랄까 로맨스도 어중간하고 추리도 어중간하고 등장인물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그냥 전반적으로 어중간했다. 내가
사랑하는 포와로나 미스 마플이 나오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리스는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소녀다. 일 년 전 자살로 판정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언니
로즈메리 덕분에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일 년 전의 사건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그녀는 언니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한편 형부인 조지에게는 의문의 편지가 날아든다. 부인인 로즈메리는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조지는 증거를 모으고, 일 년 전과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범인을 밝혀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왜 별로였을까 생각해봤다. 우선 전개가 너무 전형적이다. 지금까지 크리스티 소설 중에서 탐정이
나오지 않고 평범한 남녀가 사건에 휘말리는 다른 책들의 흐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요주의 인물로 정체가 불분명한 남자가 나오지만,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저 남자는 원래 신분이 엄청 높거나 비밀 요원이 분명해. 그리고 그건 맞아떨어졌다. 그
부분에서 어쩐지 식상하다는 기분과 함께 허탈함마저 들었다. 어떻게 매번 이런 식인지. 범죄자가 주인공인 소설이 아니니까, 가족을 잃고 자기
목숨마저 잃을 뻔 했던 여주인공에게 뭔가 보상을 줘야하니까,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내려면 착한 사람들은 행복해야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한다고 해도 흐음. 1945년에 뒤통수치고 괴로워하는 선과 악의 경계가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내용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였을까?
물론 몇 가지 장점도 있긴 했다. 주요 등장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면서 로즈메리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면서 달라지는 사람들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은 마음에 들었다.
다만 너무 심리만 다루다보니까 너무 잔잔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다루다보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의아할 때가 있었다. 아, 물론 그건 나와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나 기타 등등
여러 가지가 다르니까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왜 아이리스가 그 남자에게 반했는지 모르겠다. 정체도 불분명하고
언니와 연인 관계였다고 알려진 남자인데 말이다. 아, 갑자기 여자들은 위험하고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 건가? 그럼 난
여자가 아니었나. 난 나쁜 남자나 위험한 사람은 싫던데.
책을 다 읽고 갑자기 내 성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크리스티,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