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찰리 헌냄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원제 - Pacific Rim , 2013

  감독 -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 찰리 헌냄, 이드리스 엘바, 키쿠치 린코, 찰리 데이

 

 

  난 말로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도 그랬다. 애인님은 로봇물을 좋아해서, 그런 류의 영화가 나오면 거의 꼭 보는 편이다. 그런데 난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냥 애인님이 보자고 하면 같이 보곤 했다. 내 취향이 아니지만 너무도 좋아하는 애인님을 위해서 ‘괜찮네.’정도로 대답을 했었는데, 이 영화는 끝나자마자 내 입에서 ‘재미없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랬어?’라는 애인님의 실망스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대답이 이어졌다.

 

  아차, 실수했다. 내 주장대로 거의 매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호러 영화를 같이 봐주는 애인님인데, 난 아주 가끔 로봇 나오는 영화 그거 하나를 같이 못 봐주나. 게다가 감독도 그 사람이 너무도 좋아하는 델 토로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난 왜 이 영화가 별로였는지 조목조목 얘기해주기 시작했고, 애인님의 목소리는 더 기어들어갔다. 아, 나 또 실수했나보다.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에 거대 괴생명체가 나타난다. 인류는 힘을 모아 그 거대 생명체 카이주에 맞서 싸우기 위해 거대 로봇 예거를 만든다. 어떤 이유로 잠시 로봇 조종을 그만뒀던 주인공이 복귀하면서, 인간은 반격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바로 카이주의 의식과 연결하는 실험이 성공하면서, 그들이 왜 무엇 때문에 지구에 왔는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이 지구로 넘어오는 통로를 막기 위해, 모든 로봇 조종사들은 힘을 다하는데…….

 

  델 토로 감독의 다른 영화는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내용과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은 어디서 본 것 같고, 이 설정은 모 영화를 약간 바꾼 것 같고…….’ 계속 이런 생각만 들었다.

 

  카이주의 뇌와 인간의 의식을 연결하는 과학자의 실험을 보면서,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Independence Day, 1996’이 떠올랐다. 거기서는 컴퓨터로 해킹을 해서 우주선의 방어 시스템을 파괴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카이주의 뇌와 인간의 뇌를 연결해서 상대의 의식을 파고 들어가 정보를 캐냈다. 게다가 최후의 공격에 나서기 전 현역에서 물러나있던 최고 사령관이 참전하는 장면 역시,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비행기를 몰고 나갔던 부분이 연상되었다. 싸우기 전에 애국심, 인류애, 그리고 동료애에 대해 일장 연설하는 것도 비슷하고 말이다. 거기다 초반에 형이 죽는 장면은 작년에 보았던 ‘배틀쉽 Battleship, 2012’에서도 나왔었다. 하지만 배틀쉽보다는 몇 배 나았다. 거기다 마지막 장면! 하아, 약간의 변화만 주었지 ‘스타게이트 Stargate, 1994’와 비슷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호러 영화도 스토리 진행이 억지스럽고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왜 굳이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고, 별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려고 하고, 외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왜 꼭 기형을 가졌을까? 미친놈의 정신 상태를 정상인은 이해 못한다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 놈이 미쳐서 그렇다고 결론내리는 것도 이상하고…….

 

  이 영화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나 둘 다 스토리 때문에 본 건 아니었다. 이 작품은 CG로 만들어낸 거대 괴수와 거대 로봇의 화려하고 실감나는 전투 장면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썰고 베고 죽이고 도망가는 그 순간의 스릴과 흥분 때문에 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다 똑같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좋을 수는 없으니까, 공략 대상만 만족시키면 된다. 그런 의미로 이 영화는 꽤나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을 테니 말이다. 애인님은 델 토로 감독이 빨리 2편을 만들어주길 완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키쿠치 린코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시다 마나는 특유의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여전히 귀여웠다. 난 그 정도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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