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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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김유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여성을 살해한 후 장기를 훼손하는 끔찍한 사건이다. 희생자의 주변을 탐문하던 중,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지만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미 3년 전부터 행방불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이어진 또 다른 소녀의 살해사건…….

 

  한편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던 민성에게 두 남녀가 다가온다. 그 중 남자는 민성의 작품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며, 연쇄살인범을 쫓고 있다는 말을 남긴다. 다른 한 명은 여자로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달라며, 남자가 범인을 쫓는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던 민성이었지만, 그 범인이 자신과 관련이 있었다는 걸 알고 적극 나선다. 사실 그에게는 비밀이 하나있는데, 12년 전의 기억을 잃었다는 점이다.

 

  모든 단서는 12년 전에 있었던 ‘용호농장 화재사건’을 지목하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그 농장 관련자들의 가족이 왜 살해당하는지, 민성은 왜 기억을 잃었는지, 연쇄 살인의 지도에서 드러난 TWIN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실종된 소녀는 과연 살아있을 것인지.

 

  소설은 두 팀, 형사와 민성이 각각 사건을 쫓아가는 구성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그들은 초반과 중반에는 접점이 없다. 나름대로 사건을 추적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모든 사건의 시초였던 ‘용호농장’에서 만나게 된다. 그래서 독자는 두 팀이 찾은 단서를 가지고 나름대로 범인에 대해 추측하는 재미를 느낀다. 형사가 어떤 가설을 내놓으면 ‘잘 따라오는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그건 아니지, 이 사람아!’라면서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민성이 가끔 떠올리는 단편적인 기억과 형사가 고아원에서 찾아낸 단서를 조합해서 ‘이건 이럴 거야!’라고 추측해서 맞으면 좋아라하고 틀리면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반전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략 두 팀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호농장의 정체와 회장의 최후는 조금 놀라웠다.

 

  소설의 구성은 커다란 베틀로 가로세로 올이 어긋남 없이 촘촘히 짠 옷감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그런데 막판에 방심해서 마무리를 잘 못한 모양이다. 끝부분에 실이 얼기설기 느슨하게 엮이더니, 급기야 올이 풀려버렸다. 그게 아니라면 중간에 가로나 세로 중의 하나를 몇 번 건너뛰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완성했을 때 중간에 미묘하게 옷감의 줄이 어긋나있는 걸지도, 그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 가서 올이 하나 삐져나오거나 밀려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이런, 적고 보니 심각한 스포일러가 돼버렸다. 그래서 '접기'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하지 않는 분들은 패스!


접힌 부분 펼치기 ▼

 

  등장인물 중에서 형사들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의사인 원의 존재였다. 사실 그들은 원이라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원은 민성에게 최면을 걸어 기억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는 친구이자 의사이다. 민성은 나중에야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와 어릴 때 용호농장에서 자랐었다. 또한 민성의 기억 속에서는 원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김현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고, 그 형이 보기와 달리 잔혹했으며, 어릴 적에 김현이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모든 범죄행위의 뒤에는 형이 있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그의 정체가 누구일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은 모든 범행을 민성이 저질렀다고 판단했지만, 사실 원이 저질렀을 수도 있다. 


 난 원이 모든 사건의 배후라고 생각한다. 최면을 걸 정도였으니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야 간단하리라 생각한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옆에서 돌봐줬으니 말이다. 그러니 증거를 조작하는 것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경찰은 민성이 김현의 쌍둥이 형제일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그의 얼굴이 다르다는 것에도 별로 의심을 하지 않았다. 수술을 받았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어딘지 익숙한 얼굴의 의사를 병원에서 만났을 때도, 그냥 익숙하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런데 혹시 그 의사가 원이었다면? 형사들은 김현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통해서만 접했었다. 그 때문에 혹시 원이 김현과 닮았다고 해도 그림이나 사진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고만 여길 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수중에 민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형사들이 처음부터 민성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했다면, 원에 대해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용의자의 주변 인물을 샅샅이 조사하는 것이 수사의 기본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김현에 대해 초점을 맞췄고, 민성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피해자들이 용호농장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제야 그 사건의 생존자인 민성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민성이 나름 조사하던 자료를 보고, 그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후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긴박하게 흘러, 민성이 거의 의식을 잃었기에 형사들은 제대로 된 취조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민성을 김현의 형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원의 계획이었다면? 


  민성을 범인으로 보기엔 회수가 되지 않은 떡밥이 몇 개 있었고, 원을 범인으로 하기엔 좀 더 힌트를 명확히 줬어야 했다.


 

펼친 부분 접기 ▲


 책에서는 그런 힌트들에 대해 확실히 어떻다고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암시만 여기저기에 던져주었다. 그러니까 떡밥만 잔뜩 흩뿌려놓는 건 작가의 몫이고, 그걸 잘 모아서 거르고 조합하는 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만 혼자 이상하게 추리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범인은 형사들이 찾아낸 그 사람이 맞을 수도 있다. 그냥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몇 가지 문항들을 보면서 나 혼자 저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그래도 그런 부분까지 명쾌하게 밝혀지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음, 설마 그냥 작가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지 말고, 머리를 좀 쓰라는 배려이자 함정일까?


  그런데 이상한 부분! 왜 작가는 1929년을 ‘천구백이십구 년’으로 119를 ‘일일구’라고 썼을까? 대화부분에서 숫자가 나올 때는 일일이 한글로 쓰고, 그냥 서술부분에서는 숫자로 적었다. 사람이 숫자를 읽을 때와 쓸 때가 다르니까,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요즘은 그런 구별을 잘 안하는 편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그리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


  별점을 어떻게 줘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구성을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게 잘 짰고, 중간에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약간 호의적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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