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he
Seven Dials Mystery, 1929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앞서 ‘침니스의 비밀 The Secret of
Chimneys, 1925’에서 배경이 되었던 저택 침니스가 또 다시 등장한다. 그래서 겹치기 출연을 하는 인물도 있다. 예를 들면, 배틀
총경과 외무성 직원인 빌 에버슬레이, 저택의 소유주인 캐터햄 경과 그의 딸인 레이디 아일린이 그렇다. 참고로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아일린
브랜트, 애칭으로는 번들이라 불리는 여인이다.
쿠트 부부는 잠시 빌린 침니스 저택에 젊은이들을 초대한다. 그런데 손님 중에 제리라는 청년이
자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특이한 점은 친구들이 매번 늦잠을 자는 그를 놀려주려고 자명종 8개를 갖다 놓았는데, 시체가 발견된 다음에는
7개만 있었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저택으로 돌아온 번들은 설상가상으로 길에서 제리의 친구인 로니가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무슨 이유로 정부에서
일하는 두 명의 젊은 청년이 연달아 죽는 걸까? 번들은 로니가 마지막 남긴 말 ‘세븐 다이얼스’에 얽힌 비밀을 풀기로 결심한다. 무엇보다 자기
집안의 저택에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또’ 생겼기에, 그녀는 더욱 더 열성적으로 나선다.
영국 정부에 비밀리에 숨어들어 적국에 기밀을 빼돌리는 스파이가 누구인지, 세븐 다이얼스라는 조직의
목적은 무엇인지, 번들은 죽은 두 사람의 친구인 지미와 제리의 여동생인 로레인과 함께 적의 본거지로 숨어든다.
지난 이야기에서 받은 번들에 대한 느낌은 머리 좋고 분석력과 관찰력이 뛰어나지만, 약간 나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거침없는 활동력까지 보여줘서, 처음에는 낯설기까지 했다. 몰래 클럽 비밀 장소에 숨어들어 벽장
속에서 조직의 회의를 엿듣는 모습에서, ‘번들이 이런 성격이었던가? 지난 4년 동안 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는 의문과 궁금증이 들
정도였다.
배틀 총경은 역시 이번에도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기 위해 신중하게
행동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 사람 은근히 인맥이 넓다. 게다가 체격 건장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잘 짓는다니, 누구나 척 보면 경찰이나
군인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포와로나 마스 마플과는 또 다른, 상대를 방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유형이랄까? 다른 두 탐정처럼 말주변이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아! 그렇다. 내가 증인이나 피해자와 관련이 있다면, 그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반대로
범죄와 관련이 있다면, 그가 지그시 보는 것만으로 겁이 날지도 모르겠다.
이번 이야기에서 제일 재미있던 캐릭터는 아무래도 빌 에버슬레이일 것이다. 지난 ‘침니스의
비밀’에서는 짝사랑하던 버지니아 레블을 앤터니에게 빼앗기는 역할이었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당하게 번들과 장래를 약속하게 된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때를 놓치면 X된다는 교훈을 얻은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성격이 좀 변했다. 아니, 어쩌면 지난번에 내가 관심을 덜 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가 달달하다 못해 느끼한 대사를 반 페이지나 읊을 줄 누가 알았을까?
크리스티의 작품답게 사랑과 음모가 판을 치는 이야기였다. 또한 시대 배경에 걸맞게 볼셰비키라든지
러시아 혁명 등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시대 순으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독일도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때는 러시아의
변화가 더 관심사였나 보다.
유쾌한 첩보물이었다. 사람은 둘씩이나 죽어나가고, 괴한이 몰래 숨어들어와 총도 쏘고, 기절도
하고, 엿듣기도 하고, 격투도 벌이지만, 발랄했다.
93쪽에 생선과 칩을 먹겠다는 문장이 있는데, 그냥 ‘피시 앤 칩스’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도 우리의 불고기, 김치를 그냥 불고기, 김치라고 하니까. 이미 고유 명사화된 음식은 그냥 적는 게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