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주의 인물
수잔 최 지음, 박현주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원제 - A Person of Interest

  작가 - 수잔 최




  요주의 인물. 이 단어를 접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우선 어떤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실질적 증거가 없어서 감시만 하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아니면 아주 중요하지만 생각하는 것이 남달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일 수도 있다. 하여간 정부에서 요주의인물이라고 발표하면, 그건 곧 심증은 100%지만 물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 만약에 내 옆집에 사는 사람이 그런 요주의인물이라고 방송과 신문에서 떠들면? 무서울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가던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나 행동이 많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설마 옆집 산다는 이유로 피해를 보는 건 아닐까? 괜히 설날 때 예의상 떡국 나눠먹은 거나 추석 때 식혜 한 그릇 준 걸로 괜히 친하다고 오해받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걱정도 할 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하루아침에 폭탄 테러 사건의 요주의 인물로 떠오른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번의 결혼을 실패하고 하나있는 딸과도 소원한 관계인,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다른 교수들이나 학생들과 교류도 별로 없는, 그렇다고 사교성이 있어서 이웃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닌, 노년에 접어든 리가 주인공이다. 그의 옆 연구실에 배달된 소포 폭탄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는 예전에 절교한 친구의 편지를 받는다. 그의 아내를 사랑했고, 결국은 그녀와 결혼한 죄책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친구 게이더. 리는 그가 폭파범이라 확신한다.


  FBI 요원에게 게이더에게서 온 편지를 거짓으로 대답했던 리는 그 때문에 도리어 곤경에 빠진다. 그와 얽힌 과거가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는데, 그게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테러 사건의 요주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평온했던 생활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미리 말하지만, 이 책은 리가 누명을 벗겠다고 폭탄 테러범을 찾는 액션 스릴러 물이 아니다. 사고에서 살아남으면서, 오래전에 결별한 친구를 떠올리면서 리의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과 자책과 살벌한 현실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고해성사와 같은 책이다.


  게이더의 아내인 아일린과 사랑에 빠졌고,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에 그녀를 외면했고, 결국 그녀와 결혼을 했지만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첫 번째 결혼생활.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좌우하고 싶었던 딸 에스더의 어린 시절. 과거를 회상하면서 리는 그제야 자신이 보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는 평생을 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제대로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자신은 이방인이기에, 미국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휘둘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연구를 계속했고,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에게서 그는 비록 외모는 동양적이지만, 미국인이라는 동질감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노력은 미디어의 방송 한 번으로 한순간에 허사가 되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손을 잡아줄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문만으로 자신을 외면하는 동료 교수와 대학 직원을 보면서, 자신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이웃을 보면서, 그는 그제야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폭발 사고로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다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현실을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게 했다. 그제야 그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외면했던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보지 못했던 생의 다른 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음, 그렇지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메마른 나무숲을 보는 것 같았다. 불을 붙이면 확 타오를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이미 타고 재만 남은 그런 숲 같았다.


  문장이나 표현 등이 그런 느낌을 준다. 특히 주인공인 리를 묘사하는 부분은 마치 너무 딱딱해서 잘못 만지면 손이 긁힐 것 같은 나무껍질을 가진, 하늘을 향해 곧게 뻗었지만 나뭇가지는 별로 없는 마른 나무 같았다. 더 다가가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거기에 아일린의 불안하고 금방 바스라질 것 같은 불타고 남은 종잇조각 같은 심리묘사 부분은 읽는 내내 편하지 않았다. 또한 게이더는 가시가 잔뜩 난 말라비틀어진 선인장 같았다. 편안하게 감싸안아주는 잎이 크고 넉넉한, 물기를 머금은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리의 친구 파사노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초록 잎을 갖고 있었지만, 그리 풍성하지는 않았다. 그런 나무들이 만났으니 불이 붙어 다 타버릴까 조마조마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책은 액션 스릴러 물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폭탄 테러범을 찾으려는 과정이 나오긴 하지만, 주 요리가 아니었다. 그건 주 요리를 빛내주기 위해 곁들인 부수적인 요리였다. 스릴러가 아닌, 노년에 접어든 한 남자가 자신을 옭죄던 과거에서 벗어나는 심리적 변화를 보여주는 심리 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600쪽 정도 되는 분량이었는데,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세 번에 나눠서 읽었는데, 중간에 책갈피를 꽂아두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12쪽 10번째 줄 ‘나이 든 교수들이 그러하듯이 퍼니 앉아 있었다.’에서 ‘퍼니’가 아니라 ‘편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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