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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4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평점 :
원제 - 厭魅の如き憑くもの, 2006년
작가 - 미쓰다 신조
전에 '산마처럼 비웃는 것'을 먼저 읽었다. 시리즈물은 처음 나온 것부터 봐야하는데, 어째서인지 그걸 먼저 접하게 되었다. 하여간 그 책이 꽤 괜찮아서 '도조 겐야' 시리즈를 모아놓기만 했는데, 이번에 그 첫 권을 드디어 읽었다.
도조 겐야는 이 책의 주인공인 민속학자이자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탐정이다. 방랑 환상소설가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방랑 환상 소설가 탐정이라고 하나 더 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를 보면서 떠오른 사람은 '긴다이치 코스케'이다. 이곳저곳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고, 그가 나타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살인 사건 그것도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게다가 독신이고 어쩐지 어수룩한 느낌도 주는 것 등등 비슷한 점이 많다. 생각해보니 서양에서도 뒤팽이 나온 다음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주는 파일로 밴스나 셜록 홈즈, 엘러리 퀸 등이 등장했었다. 아, 그런 거구나.
주인공의 직업이 무속 신앙 내지는 민속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 글의 분위기가 좀 오싹하다. 아무래도 민간 무속 신앙이라 하면 귀신과 연관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전에 읽은 '산마처럼 불길한 것'도 그랬지만, 이 책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아니면 책의 분위기 때문인지 오싹했다. 역시 겨울에 읽는 호러 미스터리 책은 표지만 잡아도 몸이 덜덜 떨린다. 오늘 기온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본 일본 귀신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면 공감각적인 효과가 더 좋다. 아, 오늘은 엄마랑 자야겠다.
외딴 마을에 있는 두 가문은 사이가 좋지 않다.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똑같지만, 세대를 거듭해 내려오며 흑과 백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고정된 두 집안의 신령 때문이다. 외지인을 적대시하고, 무녀를 꺼려하면서 동시에 경외하는 마을 사람들. 이런 가운데 예전부터 가끔씩 발생하는 아이들의 실종 사건과 신령을 받아들이는 의식 도중에 죽은 여자아이, 미쳐버리거나 병약한 역대 무녀들,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생령과 빙의, 밀실에 가까운 상황에서 허수아비차림으로 발견된 시체들, 그리고 이상한 기운을 느끼는 어린 무녀. 이 모든 것들이 겹치면서 기괴하고 묘한 느낌을 준다.
나도 모르게 뒤에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난 용감하니까 뒤를 돌아보지 않겠어! 이건 절대로 뭔가 보이면 더 무섭기 때문만은 아니야! 이건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책은 사건 관련자가 적은 여러 가지 기록물을 시간대별로 차례로 보여준다. 그래서 누구의 기록인지 주의 깊게 봐야한다. 안 그러면 다 '나'로 서술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게다가 대대로 쌍둥이가 태어나 무녀가 되는 집안의 여자 이름이 다 '사기리'여서, 지금 언급하는 사기리가 어떤 사기리인지 구별을 해야 한다. 책에서는 이름 옆에 점을 붙여 그 개수로 구별을 했다. 점이 여섯 개면 대를 이을 손녀 사기리, 네 개면 그녀의 엄마, 세 개면 의식 중에 미쳐버린 그녀의 이모, 그리고 점이 한 개면 최고연장자이자 현역 무녀인 할머니 사기리, 이런 식이다. 처음 접했을 때는 당황했는데, 읽다보면 익숙해진다.
거기다 무수히 많은 한자의 나열들! 아, 난 한자에 약하지만 일본어엔 더더욱 약하다. 중간에 마을과 가문의 이름을 어원으로 풀이하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이건 뭐란 말인가! 또한 참고하라고 실내 지도가 첨부되었는데, 좀 더 설명을 붙였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적어도 어느 방에서 사건이 발생했는지 별표라도 해줬으면 이해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사건의 해결은 음. 마을의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주지는 못했지만, 연쇄 살인에 대한 것은 풀어주었다. 하긴 민간 무속 신앙을 논리적 과학적으로 100% 풀 수는 없을 것이다. 미스터리로 남겨둬야 할 부분은 남겨두는 것도 미덕이니까.
혼란스럽고 아쉬운 부분들이 몇 군데 있었지만, 책의 흐름이나 분위기는 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이 시리즈의 남은 두 권도 빨리 읽어봐야겠다.